2001년 1월 14일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와의 경기.
무려 6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이날의 경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경기는 우리나라 대표팀에게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바로 새로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취임 후 첫 데뷔 경기.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은 파란색 상의에 하얀색 하의를 입고 경기에 임했고, 김도훈, 고종수 등의 선수들이 주축멤버를 이루었다. 결과는 2-3의 패배.
하지만 특별히 이날의 경기를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표팀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당시 언론들이 여기저기서 새 감독인 히딩크의 화려한 커리어를 떠들고 있었던 때라, '히딩크가 감독이 된 후 우리나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막연한 기대는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분명 달라져 있었다. 과거 이곳 저곳을 향하던 센터링을 바탕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보다 단순한 축구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짧은 패스 위주로 최종 수비라인에서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차근차근히 공격을 만들어나갔다. 비록 첫 경기였기에 그 수준이 완성적이지는 못했지만 이 때부터의 달라진 대표팀의 스타일을 첫걸음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그 어느 때보다도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대표팀 축구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후, 대표팀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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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길로 유턴했다. 히딩크 시절의 짜임새있고 유기적인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력은 금새 사라져버리고 이내 곧 단순하고 무식한 한국식 축구로 돌아와 있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경기의 주도권을 포기한채, 조재진이라는 장신 공격수를 이용하는 포스트 플레이에만 의존했으며,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열린 아시안컵에서도 세밀한 플레이가 사라진 채 결승 진출마저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조재진과 우성용이라는 장신의 공격수를 두 명이나 배치하는 극단적인 뻥축구를 구사하면서 다시한번 스타일을 구겼다.
 
지금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세밀한 패싱 게임과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선수들의 개인기이다. 수비수들끼리 횡으로 주고 받거나 미드필더들이 수비수들에게 백패스하는 지금의 우리 선수들이 하고 있는 패스는 엄밀히 말해 세밀한 패싱 게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세밀한 패싱 게임이란 빠르고 간결한 종적인 패싱이다. 어제도 해설위원이 몇 차례 지적한 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 선수가 공을 잡을 경우 그 주위의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부족하다. 수비수들 뒤의 패스를 받을 수 없는 '죽은 각도'에서 어슬렁거릴 뿐이다. 공을 잡고 있건 공을 잡고 있지 않건 공격시 모든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 맞춰나가는 패스, 패스, 패스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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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앤러쉬'로 대표되는 잉글랜드의 선 굵은 축구. 잉글랜드의 프리미어쉽 또한 다른 유럽 리그에 비해 롱 킥을 기반으로 한 다이나믹한 축구를 구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프리미어 리그의 빅4라고 할 수 있는 클럽들 중에서도 유독 잉글랜드식 축구만을 고집해왔던 감독이 있었으니,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알렉스 퍼거슨 경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스날, 첼시, 리버풀 등 다른 빅4 클럽 중에서도 유독 롱패스의 비중이 큰 클럽이다.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와 상관없이 수시로 자리를 로테이션하며 빠른 템포의 크로싱과 롱킥으로 상대의 수비를 흔드는 전략이다.
이와 반대되는 스타일을 가진 클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맞붙었던 세리에A의 AC밀란이다. AC밀란은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모두 세밀한 패스가 가능한 선수들을 포진시키며 롱킥과 크로스보다는 짧은 패스로 서서히 공격을 만들어나간다. 각 선수들은 가능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의 수비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이 둘의 싸움에서 승리는 AC밀란의 것이었다. 짧은 패스와 정교한 플레이를 즐겨하는 AC밀란의 선수들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중원을 내주었고 이는 곧 경기의 주도권 또한 줄곧 AC밀란이 잡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퍼기 경이 지금까지 자신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안데르손, 나니, 포제봉 등과 같은 브라질, 포르투갈의 개인기와 테크닉이 좋은 선수들을 잇달아 영입한 것도 AC밀란과의 패배를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