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여 년 전만해도 공격수는 말 그대로 공격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공격수는 골 넣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공격만 잘하는 공격수는 좋은 공격수로 평가받지 못한다. 공격 못지 않게 수비도 잘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더 많이 더 악착스럽게 뛰어야 한다. 축구 선수들의 능력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가지만 잘해서는 훌륭한 축구 선수라고 평가받지 못한다(물론 늘 그렇듯 메시나 호날두 같은 돌연변이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이는 공격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비수도 공격을 잘해야 한다. 공격의 시작이 되는 위치에서 능수능란하게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골키퍼도 마찬가지. 골키퍼가 슛만 잘 막으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요즘의 골키퍼는 공을 손으로 잡는 것보다 공을 발로 다루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문제는 이 상향평준화라는 게 축구장 안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사회라는 것도 점차 상향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한때는 글만 읽을 줄 알아도 식자 소리를 듣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학위에 어학시험인증에 자격증을 들이밀어도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능력의 여하를 떠나 외모 경쟁력을 위해 성형까지 권하고 있으니 말은 다한 셈. 경쟁이란 영역이 대체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그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현 시대의 인간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더 서글픈 건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낙오되지 않기 위해 더욱 고단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공이 없을 때도 쉬지 못하고 수비수의 공을 뺏기 위해 부단히 달리고 또 달리는 공격수의 가뿐 숨이 요즘따라 왜 그리 고달프게 보이는지.

  • Onsol 2014.03.30 19:23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저는 내일 변호사시험 합격자수 관련해서 열리는 과천 집회 참석하게 됐는데, 다들 참석하는 분위기라 그런지 저도 가기는 가지만 씁쓸하네요. 저는 학벌이 좋지 않고 그렇다고 돈이나 빽이 있는 것도 아니라, 앞으로 먹고살길이 걱정인데 뭐가 스스로를 위해 더 맞는 선택인지 판단도 잘 서지 않고...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왜 이렇게 공감가는지, 정말 제가 하고싶은 일 하나만 잘하고 싶은데 뭐 이렇게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은지 하하 ㄱ-;

    • 넛메그 2014.04.01 00:51 신고 # modify/delete

      사실 요지는 한 가지만 잘해선 안된다, 다재다능해야 한다 이런 건 아니었습니다만, 비유를 들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어차피 그게 그거지요. 마찬가지로 세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그나저나 성가신 일이 많으시겠습니다. 로스쿨이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이고 시기적으로 과도기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신경쓰실 일이 많으시겠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합격자수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여튼 좋은 쪽으로 결과가 나길 기원하겠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3.31 00:51 # modify/delete reply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정보가 다양해지면서 아마추어도 만만찮은 실력이나 식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서 모든 분야에서 한 가지 분야에 정통한 숙련 기술자가 몰락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보도사진도 아이폰으로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으로 충분하다며 미국 언론사가 사진기자를 모조리 해고한 일도 있었고, 한국 신문사들도 사진기자 안 뽑은지 오래 되었다고 하고... 전문직도 인터넷에서 다 찾아봤다며 매의 눈으로 보는 고객에게 시달리지만 소득은 더 떨어지고, 말주변이나 배경, 외모 등 다른 분야에서 장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다 필요해 보이는 현실이죠. 대입 수시모집 다양화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던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스펙을 화려하게 포장해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면접장에서 돋보일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입을 위해 중고등학생들이 신경써야 할 스펙도 점점 많아지고 말씀하신 대로 삶이 더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런 걸 다 갖추려고 피터지게 노력한다고 최소한의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 넛메그 2014.04.01 00:57 신고 # modify/delete

      도토리 키재기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요, 대나무 키재기? 여튼 그런 것 같아요. 다들 고만고만하니까 그 가운데 가려낼 사람을 찾기 위해 더 복잡하고 더 힘든 형식을 만들고 또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더 피곤해지고 더 각박해지고 말이죠. 말씀하신 대입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기소개서, 논술, 포트폴리오, 봉사활동, 과외활동 등 오히려 챙겨야 할 게 더 많아졌지요.

  • Blah.kr 2014.04.03 01:14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정말 무서울 정도입니다.
    제가 중학생 올라가서야 how are you, fine thanks 이런거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에는 유치원서부터 배우더군요...;;
    의학의 경우도 발전이 너무 빨라서, 10년전에 배웠던 공부량의 2-3배 이상을 공부해야한다고, 교수님께서 안스러워하시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대다수가 전문의 면허까지 따지요...
    가끔 몇년이라도 더 빨리 태어난게 너무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 넛메그 2014.04.03 07:43 신고 # modify/delete

      아 생각해보니 의학 같이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해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나올테니까요. 어렸을 적엔 내가 서기 3000년에 태어났으면 외워야 할 학자만 해도 몇천명이 되겠구나 싶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정말 엄살이었군요.ㅎㅎ

  • 발전된 사회에서 사는 건 참 피곤해요. 누리는 건 많지만, 그 만큼 해야 할 것도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