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라는 건 욕구다. 수많은 욕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독 성욕에만 관대한 것 같다. 다른 욕구들은 참을 수 있지만 성욕은 참기 힘들다는 위험하면서도 일반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성범죄를 인과의 논리로 보려 한다. 예를 들면 미니스커트 같은 여성의 수위 높은 노출이 성추행을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절도 같은 범죄에선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값비싼 물건을 소지하는 행위가 절도를 유발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절도범을 탓할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성욕에 대해서는 관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성욕보다는 물욕, 소유욕 같은 욕구들이 훨씬 위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TV에서 흡연씬 방영을 금지시킨 건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청소년은 간접 경험으로부터 영향 받기 쉬운, 아직 성인보다 불완전한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아동 포르노를 금지시킨다는 건 결국 성인 남성들을 청소년과 동급으로 보는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거기엔 성욕을 지닌 남성(역시 성욕의 경우에만 유효하다. 살인을 줄이기 위해 영화, 소설, TV 등 각종 드라마 속 살인을 제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듯이)을 청소년과 같이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고자 하는 인식이 근저에 깔려있다.

아청법은 이런 논리에 기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법이다. 성욕은 자제하기 힘든 욕구이며 성범죄에는 필연히 그것을 유발하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인식. 여성부가 성범죄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이 정치쇼에 목맨 여성 관료들의 탓이지 국내 페미니즘의 한계라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런 고민 없이) 아청법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많고 이를 둘러싼 논의도 대부분 표현의 경계를 설정하는 부분에서 그치고 있는 건 아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