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바라는 건 어떤 심리에서일까. 직업적인 안정성, 주변의 권유, 본인의 적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적인 건 하나다. 돈을 보고 그 직업을 바라는 이는 없다는 것. 그게 직업공무원제의 존재 이유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와 신분을 보장해줌에 따라 공행정을 집행하는 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를 담보하는 것.

반대로 조선시대 지방에서 수령을 보좌하던 육방들은 국가로부터 따로 녹을 받지 못했다. 일정한 급여가 없다보니 기회가 될 때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중앙에서 파견되어 지역 사정에 밝지 못했던 수령과 힘없는 지방민들 사이에서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다. 육방의 맏형격인 '이방 나으리'가 백성 수탈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도 이 때문. 이런 의미에서 덧붙여 말하자면 연금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국회의원의 연봉과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에의 토로일 뿐. 한 마디로 공무원에 대한 처우는 그 사회의 청결성을 대변해준다.

가장 아쉬운 건 여전히 행정부나 공무원을 자신의 졸개쯤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다. 연금 개혁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그저 상명하복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셈. 차라리 고령화나 인구학적 개념을 토대로 논의를 시작했다면 반발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애국심이나 희생을 강요했다. 논의의 키워드부터 잘못 설정된 거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협조를 구하며 구체적인 합의안을 논의하는 정상적인 과정은 생략되었다. 대신 청와대의 의중을 여당수장과 총리가 황급히 받들어모시는 모양새다. 앞서 있었던 분권형 개헌 이슈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러다보니 공무원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약삭 빠른 정치인들은 국민vs공무원 구도로 이슈를 몰아가며 반발을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공무원들을 마치 정부적자에도 나몰라라 하는 무뢰배 이미지로 만드는 거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바라는 건 큰 무엇이 아니다. 그저 본인이 적립하고 약속받은 연금액을 보전받길 바랄 뿐이다. 적자의 책임 또한 엄밀히 말해 공무원보다는 정치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정이란 건 법의 기술적이고 구체화된 집행일 뿐 그 법을 만들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건 정치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이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