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급여와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의 시민의식이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론 정치인들에 대한 안좋은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세금 몇 푼 아깝다고 의원들의 처우 수준을 낮추자는 건 전형적인 속물들의 논리다.

나는 국회의원 의석이 대폭 늘어나길 바란다. 의원 수가 많아져야 의원 개인의 영향력이 적어질 수 있으며 의원 한 명당 감사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 국회의원의 권력이 줄어들고 더욱 집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해지는 거다. 국회의원의 급여와 연금도 후하게 보장되길 바란다. 그들이 이뻐 보여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청렴도가 유지될 수 있어서다. 만약 연금이 없다면 적지 않은 선거비용 들여 당선된 의원들은 낙선 혹은 은퇴 후 신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이란 공적인 권력을 재산 축적이라든지 인사 알선 같은 사적인 용도로 남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어떤 법과 제도가 들어서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의원들에게 검은 돈이 흘러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의원들의 급여 수준이 낮아지고 연금이 폐지된다면 이런 유혹으로부터 더 취약해질 뿐이다. 당장의 세금 몇 푼 아끼려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할 수도 있다.

직업공무원제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사회가 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마저 시기할 정도로 양극화된 것인지, 공무원연금마저 과한 수준이라고 아우성이다. 호황기엔 철저히 내려다보다가 불황기엔 되레 질투하는 거다. 역시 전형적인 속물 근성이라고나 할까. 직업공무원제라는 게 왜 있고 공무원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는 듯 하다. 공무원의 연금과 신분보장이 그렇게 배아프다면 차라리 모든 공행정을 아웃소싱으로 쪼개어 일반 기업들에게 맡으라고 하지, 굳이 직업공무원이란 제도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나.

공무원은 민간 종사자들과 다르다. 법적으로 겸직 자체가 불가능하다. 업무 외엔 사익 추구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없다. 성과급이나 인센티브가 없는 건 당연. 급여도 짠 편이다. 경기 불황엔 가장 먼저 임금이 동결되지만 경기가 호황이라고 해서 혹은 정부가 재정흑자라 해서 보너스를 받는 일 따위는 없다. 정치적인 활동은 꿈도 못꾸고 가입 불가능한 단체들도 의외로 많다. 다른 직업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건 두 말할 나위없다. 그럼에도 양질의 인력들의 원활하게 수급되는 이유. 혹은 정부가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공무원들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이유. 공무원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중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모두 신분 보장과 연금제도라는 특성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인구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접근해야지 민간 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수리적인 비교에서부터 시작되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나 다른 사적 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같은 '연금'이란 용어를 쓰고 있을 뿐, 이것이 시행되게 된 역사나 배경, 취지,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그런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야 된다거나 통합해야 한다는 건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그것이 사적부문의 공공부문으로의 침투를 용이하게 만든다는 걸 정녕 모르고 하는 얘긴가, 이 근시안적인 속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