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교도 인도의 카스트만큼이나 강한 계급 문화를 갖고 있다. 계급제 하면 연상되는 나라는 인도지만, 오랜 세월 유교의 지배를 받아온 우리나라도 인도 못지 않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던 셈이다. 물론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이곳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봉건적 신분제나 사농공상의 구분이 배금주의나 직업의 귀천의식으로 대체됐을 뿐, 강한 계급 문화는 온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서열화와 상하구분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경향 때문이다.

처음에는 속도차인 줄 알았다. 대한항공 사건 같이 이따금 이 사회의 천박한 면면이 보이는 건 의식의 성숙한 정도가 물질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라 생각했다. 유럽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건 수백 년 전 일이지만, 이곳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를 이루었던 건 불과 삼십여 년 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짧은 기간에 물질적 풍요와 의식 수준의 균형을 바라는 건 욕심에 가까운 듯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 격차는 좁혀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단지 속도차가 아니었다. 훨씬 더 심각한 곳에 원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관습적인 의식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교적 계급의식이 이미 내면 깊은 곳에 뿌리박힌 탓이었다. (물론 더 나은 것에 대한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봉건적 질서 하에 있었다면 유교적 관념이 가장 잘 맞는 옷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생활양식은 봉건제가 아닌 현대 자본주의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옛옷을 벗고 지금에 맞는 옷을 찾아입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뻔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답은 하나다. 유교적 구습에서부터 벗어나는 것. 하지만 앞서 개신교에 관한 포스팅에서도 다뤘듯(유교를 몰아내기보단 오히려 유교화되었던 개신교처럼) 그것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으며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시간을 기다리는 일보다 백배 천배는 더 어렵고 지리한 일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