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꼬마였던 나에게 매년 8월 31일은 1년 중 가장 바쁜 하루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방학 때마다 어김없이 우리들을 조여왔던 탐구생활. 방학 전이면 학교에서 이 책을 나누어주었다. 몇일 있으면 방학이라는 들뜬 마음과 함께 항상 이 책을 받으면서 가졌던 다짐. 이번 방학 때는 정말 정말 정말로 매일 매일 조금씩 이 책을 완성해 나가리라. 다시는 저번 방학 때처럼 방학 마지막 날 몰아서 숙제를 해야했던 고생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어린 것이 하루종일 뭘 그렇게 할 일이 많았는지 도대체 뭘 하면서 지냈는지 여기저기 이리저리 이것저것 하다보니 금새 개학이 몇 일 안으로 다가오는 사이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탐구생활이 서서히 뇌리에 스치면서 스트레스로 밀려들어온다. 개학이 몇 주, 시간이 더 지나 몇 일 안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이건 또 무슨 배짱인지 머릿 속으로는 탐구생활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맴돌지만 막상 몸으로는 또다시 여기저기 이리저리 이것저것 열심히 놀고만 있다. 결국 개학을 이틀 정도 앞두고서야 정신이 바짝 들게 되고 허겁지겁 탐구생활을 메우기 시작한다. 탐구생활만 메우면 다행이랴, 방학 동안 꾸준히 썼어야 했던 일기도 분량을 메워야 한다. 이 때 쯤이면 온 가족이 이 탐구생활에 매달리게 된다. 아빠와 엄마는 연신 카메라로 찍은 생물 사진을 인화하기 바빴고 나는 그 사진을 탐구생활에 붙이고,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전 등을 찾아서 책 속의 빈 칸을 채우기 시작한다. 일기 쓸 때는 더 가관이다. 일기장 옆에 달력을 펼쳐놓고 애꿎은 엄마한테만 신경질을 낸다. 엄마! 몇일날 우리 뭐했지? 어디 갔었나?, 그리고 엄마 몇일에는 뭐한거 맞지? 온 가족의 기억력이 총동원되어 명백히 조작된 한달 여 간의 일기장이 하루만에 속전속결.

정말 순수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보니 우리 모두들 왜 그렇게 조금이라도 부족하지 않을까 안달하면서 방학 전날 밤을 세워가면서 갖가지 사진들과 포스트잇지로 두툼해진 탐구생활을 개학식 날 내려고 했을까. 날짜에 맞춰 내지 못해도, 혹은 아예 내지를 않아도 별다른 체벌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근데 왜 모두들 그렇게 난리였을까. 그 땐 8월 31일이 정말 괴로운 날이었다. 내일이 개학이라는 절망스로운 내일을 앞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탐구생활과 일기라는 방학숙제 또한 엄청난 압박이었다.


한테 물어보니, 요즘 초등학교에는 방학 탐구생활이 없어졌다고 한다. 서운한 일이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방학을 회상할 때 이 탐구생활 만한 추억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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