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의 사무총장은 사실 얼굴마담에 불과한 자리나 다름없다. 선출 방식이 비공식적이고 관행적이라는 점 그리고 주로 중소국가에서 선출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반대로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굉장히 중요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였다면 치열하고 객관적인 선출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강대국 출신들이 그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 것이다(예를 들면 FIFA의 회장처럼). 어차피 중요한 의사결정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몫이고, 사무총장은 얼굴마담으로서 갖가지 행사나 현안을 챙기며 UN이란 기구의 대표성만 갖는 직책이다.

반기문이 생각했던 국가의 대통령이란 직책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대통령직을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마담 정도로 인식한 셈이다. 이곳에 가서 웃으면서 손 흔들어주고 또 저곳에 가서 미소를 지어주며 덕담 같은 입에 바른 말만 하는 그런 얼굴마담. 실제로 그가 보여준 행보도 이런 모습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단순히 얼굴마담으로 치부될 수 없는 직책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최고 결정권자다. 국가적인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첨예한 대립이 맞서는 가치 판단에 있어서도 본인만의 생각과 신념이 있고 그 책임에도 주저하지 않아야 하는 자리다.

사실 낯선 광경은 아니다. 박근혜가 몰락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대통령의 역할을 얼굴마담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본인의 얼굴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본인의 역할을 공화제의 대통령보다는 입헌군주제의 여왕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외모 치장에만 신경을 썼을 뿐 사람들이 바라는 대통령의 역할, 아주 기본적인 역할마저 소홀히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분노했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나름의 결론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다. 애초에 반기문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십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곳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우리 삶을 위협하는 각종 현안에 대해 무감각할 수밖에 없었다. 더 심각한 건 그것을 본인의 약점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가 보여준 행보는 각종 현안들에 대한 연구와 고민보다는 꽃동네나 묘소 참배 같은 보여주기식 코스프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