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직업정신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직업정신이란 회사 화장실 소변기 위에 붙어 있는 "지금 하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다면 프로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마추어다." 따위의 문구에서 말하는 프로의식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을 남긴 히딩크처럼 특정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갖고 있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같은 택시기사여도 승객이 멀미를 하든 말든 급제동과 급가속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승객이 편안하도록 배려하고 부드럽게 운전하는 사람도 있다. 또 같은 식당 주인이어도 나쁜 식재료로 대충 요리해서 파는 데 급급한 사람이 있는 반면 싱싱한 식재료로 정성들여 요리해서 음식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월급쟁이도 마찬가지다. 만사 귀찮은 듯이 아랫사람을 부리기만 하면서 일을 떠넘기고 때우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본인에게 떨어진 임무는 어떻게 해서든 완벽하게 완수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마르크스의 말대로 결과물과 소외되어 있으면서도 이런 태도를 갖는다는 점에서 자영업자보다는 월급쟁이의 직업정신이 더 고차원적인 것 같다).

이렇듯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마다의 직업정신은 제각각인데, 그 차이는 사람마다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직업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직업을 일종의 수단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직업이란 건 생계를 이어갈 수단 혹은 어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과정에 지나지 않다. 앞선 예처럼 난폭운전을 하는 택시기사에게 중요한 건 주행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일과시간 동안 단 돈 100원이라도 더 버는 것이 전부다. 승객이 느끼는 편안함이나 그에 뒤따르는 직업적인 자부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조금이라도 적은 노력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다. 자신의 직업 자체로 행복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이들에게 직업은 수단이 아니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소비를 하고 뭔가를 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단지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편안함을 느끼다가 기분 좋게 하차하는 승객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자신이 내놓은 음식을 남김없이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월급쟁이들에게는 손님의 반응 같은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완수한 일이 업무 프로세스의 한 부분에 기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갖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직업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멋있게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아마 그들 스스로가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또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하게 청소에 열중하는 미화원을 보며 어떤 감동을 느낀다. 그가 멋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멋있게 느껴지는 건 그가 어떤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멋있게 느껴지는 건 그가 행복한 사람(혹은 행복을 찾은 사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직업정신은 능력의 고하와는 상관이 없다. 직업정신은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능력을 가르칠 뿐 태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능력을 얼마나 극대화시켜서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갖도록 하느냐가 현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 위해 법대나 의대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 이 목표에 도달하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부분은 실패를 맛보고 본인이 생각하지 않았던 진로로 떠밀리게 되고 관성적으로 직업을 택할 뿐이다. 불행해지는 거다. 그렇다고 목표에 도달한 소수 또한 반드시 행복한 삶을 얻게 되는가, 그것도 확실치 않다. 결국 다수가 불행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건 능력이 아니라 태도다. 어차피 사회구조상 다수가 전문직 같은 선망직업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이 원하든 직업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 저마다의 위치와 자리에서 직업을 갖게 되기 마련인데, 지금의 교육은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목적은 옥석가리기가 되어선 안 된다. 교육에서 중요한 건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일이다. 어차피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을 갖지 못한다는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이상 현실에 임하는 실질적인 태도와 방식을 일러줄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미를 찾고 나름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