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을 두고 자기관리가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질타가 있어 왔다. 주로 두 가지, 영어와 담배 때문이다. 미국에 넘어간 지도 이제 6년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통역사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영어실력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과 프로선수임에도 담배를 끊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담배는 충분히 비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선수가 담배를 멀리할 정도로 흡연은 기본적인 체력 관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실력을 문제 삼는 건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흡연는 선수로서의 자기관리에 속하는 게 분명하지만 과연 영어실력을 두고 자기관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성적이 증명하는 것처럼, 사실 영어실력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동료 선수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도 아니다. 간단한 영어와 특유의 장난스러움만으로도 동료들과의 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다. 코치들과의 호흡이나 미디어와의 인터뷰도 통역사를 대동하면 문제될 게 없다. 같은 메이저리그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이치로도 항상 통역사를 대동시켰지만 의사소통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었다.

김연경이 터키배구리그에 진출했을 때 그녀에게 터키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하자 영어실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그가 영어공부에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자기관리에 소홀하다며 질책했다. 왜 유독 류현진에게만 영어를 강조하는 걸까. 그건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영어에 대한 강박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영어는 수단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외국어는 수단일 뿐이다. 외국어를 어학이나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혹은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외국어 공부를 통해 자족감을 얻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외국어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가 없다. 아니, 목적일 필요가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든 여행이든 어떤 필요에 의해서 외국인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일 뿐, 우리가 영미 문화권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상으로 영어를 대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영어는 엘리트라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과도 같다. 하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다. 외국어능력을 한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저 특화된 기술로 받아들일 뿐이다. 외국어능력이 부족하면 아웃소싱해서 통역을 구하면 그만이다. 충분한 외국어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높은 자리일수록 중요한 자리일수록 의식적으로 아웃소싱을 한다(반대로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만). 하지만 한국은 반대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어떻게든 영어실력을 보여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한 국가의 원수가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의 말로 연설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방 직후나 근대화 시기에는 영어실력 자체가 곧 부와 권력이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자체도 워낙 드물었고, 산업적인 분업화나 무역 개방도 본격적으로 막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워낙 영어를 중요시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이제 지천에 깔려 있다. 이제는 영어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지금의 사회는 분업화나 아웃소싱을 통해 역할 자체를 워낙 정밀하게 나눠났기 때문에 모두가 영어를 잘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글로벌화가 중요하다지만 막상 주위를 보면 영어를 필요로 하는 직업은 의외로 적다. 예를 들어 외국계 기업을 다니면서도 영어를 사용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어에 대해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어가 곧 성공의 열쇠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시대는 지났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고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그렇고 지금처럼 영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렇고 봉준호의 ‘기생충’도 그렇고 모두 우리말로 쓰이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찬사를 받는 문제가 없었다. 본래의 내용물만 훌륭하다면 그것을 번역, 통역하는 문제는 부차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외국어, 영어실력 같은 게 우선될 필요가 없단 이야기다. 영어를 잘해야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니다. 차라리 영어교육에 쏟아 붓는 에너지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기본소양이나 교양을 가르치는 데 투입하는 것이 선진국 소리를 듣는 데 더 확실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