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코드는 시대적으로 간소화되어왔다. 어떤 옷을 입느냐는 과거엔 신분에 따라 정해져 있기도 했고 직업에 따라 정해져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TPO와 같이 상황에만 맞게 입으면 되는 분위기다. 요즘 출근길을 보면 '샐러리맨=정장차림'이란 공식도 많이 깨진 것 같다. 미팅이나 공식행사가 아니면 민간 기업들의 드레스코드도 한층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는 곳도 많다. 어떤 옷을 입느냐는 사실 모든 류의 매너가 그렇듯 스스로를 높여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힘을 행사하는 집단일수록 엄격한 드레스코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검찰이나 법원에서 공권력 행사 주체로서의 권위를 위해 주로 어두운 색 정장을 입거나 조폭들이 조직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검은 정장을 맞춰 입는 것처럼.

하지만 의회라는 곳은 좀 다르다. 의회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구가 아니다. 대국민보다는 대정부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화제에서 의회는 민의 대리자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회는 권위적일 필요가 없는 곳이다. 오히려 탈권위적이어야 한다. 자유롭고 개방적일수록 바람직하다. 그래야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인 토론과 민의수렴이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격식을 따지는 건 의원들이 신분에 따라 가발을 쓰고 회의에 참석하던(영국의 법관은 지금도 가발을 쓰고 판결을 한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절대 왕정의 공백을 귀족들의 의회로 대신하던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품격이나 권위를 우리의 국회에도 동일하게 적용시키려는 건 의회라는 제도의 역사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의회정치에 있어 자주 언급되어 온 건 대표성에 관한 문제점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존재하지만 정작 그것을 대변해야 하는 국회는 법조계처럼 일부 직업군의 중년 남성 담론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분단 현실로 인해 국회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해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초래했던 것이다. 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꼰대들에게 필요한 건 격식이 아니라 파격이다. 그래야만 국회가 사회의 다양성, 이질성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류호정의 원피스는 정의당의 말마따나 여느 여성의 출근차림에 불과했다. 핫팬츠나 레깅스도 아니었고, 20대 여성을 대변하는 의원으로서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수준의 차림이었다. 이번 논란은 사실 상황보다는 인물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 옷차림보다는 정의당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당사자가 류호정이 아니라 다른 의원이었다면 애초에 논란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류호정이 정의당 1번에 어울리는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거둘 수 없지만, 자의든 타의든 국회 내에서 이런 논의가 터져나오게 했다는 건 의미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도발적인 이슈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