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는 관료를 추첨으로 뽑았다. 누구든 무작위로 돌아가며 관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선출 방식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란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관료도 언제든 일반인으로 돌아가야 하고 일반인도 언제든 관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스스로가 지배한다는 점에서 가장 순정에 가까운 민주주의였다.

지금의 정치체제는 순수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가 혼합된 형태로 봐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란 시민이 안건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결정을 내릴 엘리트를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요한 결정을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건 각 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엘리트들이다.

선거라는 공정한 절차 덕분에 명목적으로는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극소수의 엘리트만이 정치에 참여할 뿐이다. 소위 ‘정치인’이란 직업군은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기득권을 공고히 다진다.

그렇다고 엘리트를 해체하는 게 답이 될 수는 없다. 정치라는 고도의 가치 판단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추첨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면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자질 문제일 것이다. 전문성도 없고 경험도 없고 판단력도 없는 이에게 중대한 결정을 맡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를 부정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면, 중요해지는 건 ‘진짜’ 엘리트와 ‘가짜’ 엘리트를 가려내는 일이다. 일차적으로 그 작업을 하는 건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이다. 이곳처럼 양당제의 성격이 강한 사회에서는 메이저 정당의 공천 여부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종 승자는 유권자가 결정하지만 레이스의 주자를 세우는 건 정당의 몫인 것이다.

문제는 지역사회의 경우 함량미달의 가짜 엘리트가 많다는 점이다. 동네에서 시간 많고 돈 많고 감투 욕심 많은 사람이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게 지역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으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질들, 예를 들어 법률이나 행정실무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한 이들이 많다.

무관심 탓에 대부분 간과하지만, 지방의원도 적지 않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지자체의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을 감사하고 조례를 제정하기 때문이다. 기초의원이라 하더라도 동네에서는 나름의 권세가 있고 지역 공무원들에게도 상전노릇을 할 수 있다. 그래서 4년마다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선거에 나오는 것이다.

지역 정치인들의 수준 문제야 하루이틀 논란이 된 게 아니지만, 정치권에서 논의된 적은 없었다. 국회의원 같은 이들에게 지역 정치인들은 하수인인 동시에 지역구의 기반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중앙 정치인과 지역 정치인은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으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지역 정치인의 자질을 언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0선의 이준석이었으니까 이 논란을 화두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격시험의 시행 주체가 국가라면 여러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만, 정당은 어떤 방식으로 후보자를 낼 것인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주체다. 기성 정치인들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자격시험을 자당 후보자들의 경쟁력으로 어필하는 건 정당의 자유이자 권리이고, 결과로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자격시험이 소수의 당내 카르텔을 지키기 수단으로 남용되는 게 아닌 이상 크게 해가 될 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실력을 갖춘 정치 신인들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고, 양질의 정치인을 가려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천 자격시험을 엘리트주의로 호도하는 건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현 사회가 고대 그리스처럼 추첨민주주의로 회귀하지 않는 이상 엘리트주의가 해체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엘리트주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짜 엘리트가 많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