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이돌 음악은 거의 듣지 않았다. 팝이나 힙합 아니면 오래된 음악만 들었다.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주변에서 뉴진스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청바지라는 어감상 남자그룹이 생겼냐고 물었다가 가차 없이 놀림을 받았다. 일행 중 한 명은 실망했다고까지 했다. 눈빛이 진짜로 보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반성하는 차원에서 열심히 k팝을 들었다. 그런데 더 반성하게 됐다. 예전에는 음악을 들을 때 아이돌 음악을 스킵했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아이돌 음악이 아니면 스킵을 하고 있었다. 아이돌 음악이라고 하면 낯간지럽거나 유치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나란 인간 역시 편견의 동물이었다는 것을.

요즘 아이돌 음악은 팝 못지않게 세련된 느낌이다. 부드럽게 표현하면 잘 다듬어져 있는 느낌이고 신랄하게 말하면 돈의 힘이 느껴진다. 제조품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품에 차이가 있듯이 음악도 기획사나 투자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대중음악은 철저한 문화산업이 되었다. 이제 음악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자본이다.

한류 열풍 이후에 기획사가 노리는 건 해외시장이 되었다. 그만큼 투자도 많아졌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 실력과 감각을 갖춘 프로듀서들이 수준 높은 음악을 찍어내고 있는 거다.

90년대는 스펀지 같았던 시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최후의 보루였던 일본문화까지 개방되면서 온갖 해외 문화를 흡수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모든 장르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락, 컨트리 같은 백인 음악이든 힙합, 재즈 같은 흑인 음악이든 이곳 사람들은 인종이나 역사적 맥락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기존 장르를 변형시켜도 보고 섞어도 보면서 오로지 기호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마치 이 사회가 기초과학보다 응용과학에 두각을 보이는 것처럼, k팝도 하나의 장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오히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시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k팝의 인기는 90년대부터 왕성하게 축적되던 문화적 자산이 산업자본을 만나면서 꽃을 피운 덕분이다.

물론 안타까운 점도 많다. 돈 되는 장르만 주목받으면서 장르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인디장르는 여전히 배고프다. 예전보다 날것의 느낌이 덜한 점도 아쉽다. 실험적인 시도도 거의 사라졌다. 음악 작업이 개인의 창작보다 기업의 생산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과 파이가 자체가 커진 건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대중음악이 성장할수록 가장 큰 수혜자는 대중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듣는 귀가 즐거워진 건 반가운 일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대중음악을 등한시하고, k팝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스스로를 다시 반성한다. 한편으로는 취향마저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데, 다른 것에는 내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는 무력함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