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향악단에 있었을때, 우리들의 연주를 봐주러 오는 음대 졸업생 형, 누나들이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했기에, 몇몇 형들과는 많이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한 형이 당시 어린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음대를 나와도 할게 없어. 나랑 친한 선배는 음대나오고 유럽 유학까지 다녀왔는데도 할게 없어서 동네에서 치킨집차렸어. 이따 저녁에 거기 가야해."

고등학교 때 우리 국어 선생님의 또다른 직업은 시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다. "원래 시인이라는 직업이 참 어려운 겁니다.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저와 같이 선생님이나 교수를 다른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시인들은 참 운이 좋은경우에요.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보다 글을 쓴 시간적 여유도 많은 편이니까요."

불과 몇일 전, 네이버 뉴스창 한가운데에 이런 기사 제목이 떴었다.
-신춘문예 등단자들, "글써서 밥벌이? 소설같은 이야기"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1418595684290.htm

대학 교양 강의로 '공연예술의 이해'란 강의를 들었을 때 교수가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연극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대학로에서도 대부분 공연 분야 종사자들의 월급이 100만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겪고 들은 이야기 말고도, 원래 예술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배고픈 분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문학 624호에서는 문학과 돈에 대한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특히 이번 특집 글에서는 시인들이 쓰고 있는 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성경에 가라사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였으니
2백억을 축재한 사람보다 1백9십9억을 축재한 사람 또한 그만큼 더 마음이 가난하였으므로
 천국은 그의 것이요
그보다 훨씬 적은 20억 원이니 30억 원이니 하는 규모로 축재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마음이 가난하였으므로
천국은 얻어놓은 당상이라
돈 이야기로 시라고 써놓고 있는
나는 어느 시대의 누구보다도 궁상맞은 시인이므로 천국은 얻어놓은 당상이라
(오규원, 「마음이 가난한 者」,『오규원 시전집』)

이 시처럼 돈을 예술적 순수함과 창조적인 문화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보고 이러한 돈을 애써 외면하고 거리를 두기 위해 벽을 쌓는 시인들도 있는 반면,


낮잠을 자고나서 들어보면/후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들은/치부책노릇을 하는 종이쪽/그러나 돈은 없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김수영,「후란넬 저고리」,『김수영 전집1』)
 
이 시에서 돈이 없는 무게를 친근하다고 여기며 그 무게 자체를 견디려 하는, 즉 돈이 없는 가난을 애써 피하고 막으려 하기 보다는 그 자체를 친근하게 느끼면서 그 것을 견디려 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 시인도 있다. 시인 서정주의 솔직한 시도 재미있다.

밤 새어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 가나니
한 수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서정주, 「찬술」,『서정주 시전집1』)

사람은 자기가 제일 하고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께서도 돈과 명예를 떠나서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학생이다. 아직 직업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그러나 앞서 말한 주윗 사람들의 경우와 이러한 시인들의 돈에 대한 고충을 당신들의 시를 통해 엿보면서, 사람이 어렵사리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직업을 가졌는데, 경제적인 메리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직업을 포기해야하고 그 직업을 유지해 나가는게 어려워질 때 과연 어떠한 느낌을 받는지 그 절망감의 정도가 얼마나 큰 건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나온지 몇 백년이 지나도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클래식 곡들이 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등 유명한 작곡가들에게서 만들어진 곡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면에는 그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음악에만 열중하며 명곡들을 작곡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당시의 귀족, 왕족 스폰서들이 있었다. 이러한 스폰서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운명','피가로의 결혼' 등 명곡들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문학도, 다른 예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인과 소설가들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과 관심만이 우리 문학이 좀더 질적, 양적으로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작품을 읽는 독자들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얼마전, 윈도우 비스타가 국내에서도 발매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전의 윈도우 시리즈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높은 시판 가격에 소비자들은 매우 당황하였고 여러 뉴스와 기사들은 비스타 가격의 적정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윈도우를 통해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으며 도대체 언제쯤이면 운영체제에 대한 윈도우의 독점이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새삼 궁금해졌다. 여튼 윈도우 비스타의 가격이 어떻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이 어떻든 윈도우 비스타는 발매되었다.
이러한 윈도우 비스타를 보니, 과거 윈도우 XP가 나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사람들 모두 한창 95나 98, 혹은 2000 등을 쓰고 있었을 때였는데 XP는 발매가 되었어도 처음에는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러 소프트웨어들이 XP 운영체제에서는 호환되지 않는 등 큰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는 XP를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는 매우 보기가 드물어졌다. 윈도우 비스타도 똑같을 것이다. 비록 지금이야 XP의 경우처럼 몇 가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기에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불과 몇 년 후이면 거의 모든 컴퓨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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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비스타를 운영체제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한참 전이 갑자기 생각난다. 당신 또래에 비해 비교적 컴퓨터를 많이 다뤘던 아빠는 처음 286 컴퓨터를 구입하셨다. 지금은 모습을 감춰버린 커다란 디스켓을 들고 다니시면서 주로 문서를 작성하는데 컴퓨터를 사용하셨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 컴퓨터를 장만하셨다. 처음으로 GB 대의 용량의 하드-2GB-를 쓰신 것이었는데, 이게 얼마나 큰 용량이냐며 한창 흥분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아빠는 업무상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디카를 일찍 구입하셔서 사진을 컴퓨터로 이용하시는 일이 잦았는데, 당시 디카로 찍은 사진 한장 한장을 포토샵에 불러들이는 일이란 상당히 긴 로딩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이러한 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아빠는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처음 나오게 된 펜티엄 컴퓨터를 구입하셨는데, 사진을 불러온다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경우의 아빠로써는 처음 경험하게 된 컴퓨터의 굉장한 속도에 놀라시고 즐거워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당시 아빠 옆에서 눈만 동그랗게 뜨던 꼬마아이가 다 커서 영상이 아니라 동영상을 편집하는데 컴퓨터 속도가 느리다며 투덜거리고 있다. 당시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과거 남자 아이들만 알던 컴퓨터가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 평가하는 한 가지 잣대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실행시켰을 때 첫 화면에서 로딩이란 영어 글자가 몇 번을 깜빡이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느냐에 따라 컴퓨터의 사양 수준이 결정되었다. 새로산 컴퓨터가 열 몇번 밖에 깜빡거리지 않는다며 자랑을 하던 6학년 때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 스타크래프트는 최저사양의 고전게임이 되고 말았다.
과거 전화선으로 띠띠딕 하는 소리를 내며 pc통신을 이용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채 10년이 넘었을까말까하는 지금 초고속 통신망이라 하여 1초에 몇메가의 용량을 전송하고 전송받는다.
정말 컴퓨터 하나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엄청난 변화 속도에 대해 놀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 추세라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몇 백 기가가 되는 HD급 고화질의 영상들을 지금 포토샵에서 사진을 가지고 놀듯 아무렇지도 않게 편집하며, 이러한 어마어마한 용량의 파일들을 몇 초만에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다운받을 수 있는 날이 올것이다. 물론 솔직히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예상일 수도 있겠지만, 100년 전 쥘베른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실감안나는 나만의 섣부른 미래의 모습들이 어느 순간 이미 현실의 한 부분으로 새삼 나를 놀라게 할 그런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01년 1월 14일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와의 경기.
무려 6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이날의 경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경기는 우리나라 대표팀에게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바로 새로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취임 후 첫 데뷔 경기.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은 파란색 상의에 하얀색 하의를 입고 경기에 임했고, 김도훈, 고종수 등의 선수들이 주축멤버를 이루었다. 결과는 2-3의 패배.
하지만 특별히 이날의 경기를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표팀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당시 언론들이 여기저기서 새 감독인 히딩크의 화려한 커리어를 떠들고 있었던 때라, '히딩크가 감독이 된 후 우리나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막연한 기대는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분명 달라져 있었다. 과거 이곳 저곳을 향하던 센터링을 바탕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보다 단순한 축구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짧은 패스 위주로 최종 수비라인에서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차근차근히 공격을 만들어나갔다. 비록 첫 경기였기에 그 수준이 완성적이지는 못했지만 이 때부터의 달라진 대표팀의 스타일을 첫걸음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그 어느 때보다도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대표팀 축구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후, 대표팀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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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길로 유턴했다. 히딩크 시절의 짜임새있고 유기적인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력은 금새 사라져버리고 이내 곧 단순하고 무식한 한국식 축구로 돌아와 있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경기의 주도권을 포기한채, 조재진이라는 장신 공격수를 이용하는 포스트 플레이에만 의존했으며,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열린 아시안컵에서도 세밀한 플레이가 사라진 채 결승 진출마저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조재진과 우성용이라는 장신의 공격수를 두 명이나 배치하는 극단적인 뻥축구를 구사하면서 다시한번 스타일을 구겼다.
 
지금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세밀한 패싱 게임과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선수들의 개인기이다. 수비수들끼리 횡으로 주고 받거나 미드필더들이 수비수들에게 백패스하는 지금의 우리 선수들이 하고 있는 패스는 엄밀히 말해 세밀한 패싱 게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세밀한 패싱 게임이란 빠르고 간결한 종적인 패싱이다. 어제도 해설위원이 몇 차례 지적한 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 선수가 공을 잡을 경우 그 주위의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부족하다. 수비수들 뒤의 패스를 받을 수 없는 '죽은 각도'에서 어슬렁거릴 뿐이다. 공을 잡고 있건 공을 잡고 있지 않건 공격시 모든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 맞춰나가는 패스, 패스, 패스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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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앤러쉬'로 대표되는 잉글랜드의 선 굵은 축구. 잉글랜드의 프리미어쉽 또한 다른 유럽 리그에 비해 롱 킥을 기반으로 한 다이나믹한 축구를 구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프리미어 리그의 빅4라고 할 수 있는 클럽들 중에서도 유독 잉글랜드식 축구만을 고집해왔던 감독이 있었으니,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알렉스 퍼거슨 경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스날, 첼시, 리버풀 등 다른 빅4 클럽 중에서도 유독 롱패스의 비중이 큰 클럽이다.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와 상관없이 수시로 자리를 로테이션하며 빠른 템포의 크로싱과 롱킥으로 상대의 수비를 흔드는 전략이다.
이와 반대되는 스타일을 가진 클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맞붙었던 세리에A의 AC밀란이다. AC밀란은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모두 세밀한 패스가 가능한 선수들을 포진시키며 롱킥과 크로스보다는 짧은 패스로 서서히 공격을 만들어나간다. 각 선수들은 가능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의 수비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이 둘의 싸움에서 승리는 AC밀란의 것이었다. 짧은 패스와 정교한 플레이를 즐겨하는 AC밀란의 선수들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중원을 내주었고 이는 곧 경기의 주도권 또한 줄곧 AC밀란이 잡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퍼기 경이 지금까지 자신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안데르손, 나니, 포제봉 등과 같은 브라질, 포르투갈의 개인기와 테크닉이 좋은 선수들을 잇달아 영입한 것도 AC밀란과의 패배를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