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승"에는 큰 스님과 동자승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나온다.

큰 스님: 도념아, 저 소나무 밑의 바위가 네 마음 속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느냐?
동자 스님: 예, 마음 밖에 있습니다.
큰 스님: 이 녀석 봐라, 거짓말을 하네.

다음 날,
큰 스님: 도념아, 저 소나무 밑의 바위가 네 마음 속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느냐?
동자 스님: 예, 마음 속에 있습니다.
큰 스님: 이 녀석 봐라, 거짓말을 하네.

데이비드 흄은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 오로지 안다고 믿을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객관적인 지식인지 아니면 흄이 말한 것처럼 믿음일 뿐이지는 철학사에서도 오랜 세월 계속된 논쟁이었다. 우리가 평소 진실이라고 혹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짜로 진실인지, 위의 동자승처럼 바위가 정말 마음 속에 있는지 마음 바깥에 있는지 가려내는 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인간 이성을 통해 무엇이든 알 수 있다던 대륙의 합리주의도 무너진지 오래이고, 서구의 가톨릭이나 동양의 유교처럼 절대적이었던 신념이나 가치도 해체된지 오래다. 대신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믿음이 정말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제가 갖고 있는 생각과 신념이 옳다는 전제 아래 삶을 살아가며, 혹은 이를 기준으로 삼아 서로 남을 비방한다. 정답이란 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 이러한 우리의 단면을 희화화한다. 아니, 조롱한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일 테다. 은행털이 조직에 가담했던 '오렌지'는 본래 경찰이었다. 소탕 작전을 위해 은행털이범으로 위장 잠입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끝무렵이 다가오면서 조직에 가담했던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경찰로 의심한다. 여러 가지 정황상 그가 스파이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직원 중 '화이트'는 끝까지 '오렌지'가 스파이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확신에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렌지'에 대한 연민 혹은 '오렌지'가 총에 맞고 자신에게 의지하던 모습 때문이었다. 결국 조직원들끼리 '오렌지'를 죽일 것이냐 살려둘 것이냐를 두고 싸우다가 서로 총을 발사하고, 즉사를 면한 '오렌지'와 그를 지켜줬던 '화이트'는 함께 손을 잡고 죽어간다. 그런데 그 때, '오렌지'의 한 마디. "I am a cop" 그리고 이어지는 '화이트'의 절규.

관객들은 영화의 처음부터 '오렌지'가 경찰이란 사실을 알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오렌지'가 경찰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몰랐던 것은 오로지 '화이트'뿐이었다. '오렌지'의 진실된 말들, 괜찮은 인간성에 의해 바보가 된 것도 오로지 '화이트'뿐이었다. '화이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절망스러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오렌지'는 절대 경찰이 아니라는 자신의 확신에 목숨까지 걸었건만 결국 그 확실했던 믿음이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어리석은 '화이트'를 비웃었겠지만, 동시에 관객 자신들 또한 이런 '화이트'의 절망으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감독 타란티노의 메시지다. 절대적인 대상은 없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도 사실 믿는 것일 뿐일 수 있다. 우리가 확신하는 대상도 사실은 그와 다를 수 있다. 그저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기준으로 세상 모든 것을 재단하는 우리도 언제 '화이트'처럼 큰 허망함을 겪어야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이 영화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뷔작이다. 지금은 명장의 반열에 오른 그이지만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타란티노는 평범한 비디오 가게 종업원이었다. 그는 '관객'의 눈으로 수많은 영화를 섭렵하면서 틈틈이 자신만의 첫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타란티노는 이 시나리오를 토대로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시나리오가 당시 유명 연기파 배우였던 하비 케이틀('화이트'역)에게 우연히 읽혀졌고, 하비 케이틀이 이 시나리오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되었고, 본인이 직접 출연도 하게 되었다. 하비 케이틀이 제작 지원을 하자 동료 연기파 배우들도 삼삼오오 타란티노의 시나리오에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질 뻔했던 타란티노의 첫 작품 '저수지의 개들'은 공식 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개성 넘치는 연출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물론 천재적인 데뷔작으로 인해 타란티노가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이야 시간을 거스르고 시간의 순서를 뒤바꾸는 시나리오 전개는 TV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기법이 되어버렸지만, '저수지의 개들'이 개봉할 90년대만 하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저수지의 개들'은 은행털이범들의 영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은행을 터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메인 시점은 은행을 털고 난 후의 시간이며 은행털이 갱이 조직되는 과거의 이야기가 산별적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시간은 하루 전으로, 한 시간 전으로, 한 달 전으로 제 마음대로 바뀌어버린다. 그제 어제 오늘로 이어지는 일원화된 나란한 시간 전개는 없다. 마치 이 영화를 다 본 관객이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 영화를 되새이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은 자동차 수동 기어의 움직임처럼 이쪽으로 들어갔다 저쪽으로 들어갔다를 반복한다. 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타란티노의 천재적인 기어 변속 덕분에 극의 흐름은 산만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건 물론이다. 덕분에 다른 갱스터 영화처럼 시끄러운 총격전이 펼쳐지거나 긴박한 추격전이 시작되지 않아도 영화는 내내 관객을 빨아들인다.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잔인하다. 은행털이범 중 한 명인 '블론드'가 사로잡은 경찰을 고문하는 장면은 잔인함의 극치를 달린다. 생으로 귀를 자르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려는 '블론드'는 오히려 만신창이가 된 경찰 앞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귀가 잘려나가는 것마냥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고문 장면에서 관객들은 하나 같이 고문을 당하는 자의 편에 선다. 이런 관객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이 영화는 '블론드'란 인물이 되어 관객을 계속 괴롭힌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킬빌'이나 '바스터스:거친 녀석들'에서는 주인공이 '나쁜 놈'에게 갚아주는 잔인한 행각에 어떤 관객들은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타란티노의 작품들처럼 '유혈이 낭자하다'란 표현이 어울리는 영화도 없다. 영화에 따라 그 순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피가 튀고 살이 뜯겨져 나간다. 잔인하다. 하지만 잔인함을 보여줌으로써 동시에 우리가 잔인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되묻는 것 같다. 어떤 때는 고통으로, 어떤 때는 쾌감으로, 어떤 때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우리에게 제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그 잔인함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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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화이트와 비슷할 것 같네요. 한번 믿으면 쭉~옳다고 믿는 단순함...ㅎ

  • 저 영화감독, 킬빌 만드신 분 맞나요?
    제가 영화를 잘 안봐서요 ㅋㅋㅋ
    다음에 이 영화 찾아보고,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처음들어보는 작품이지만
    왠지 줄거리만 읽었는데도 재밌을것같아요>ㅁ<!!!


    부제는 <화이트 바보만들기 대작전>인가요?ㅋㅋㅋ

  • 불탄 2010.01.23 10:58 신고 # modify/delete reply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느낌은 갖게 되었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 저도 이 영화에 대해서 한 면만 적어본거라..
      뭐니뭐니해도 직접 보시고 느끼시는게 최고죠!

  • 렉시벨 2010.01.23 11:22 신고 # modify/delete reply

    영화찾아돌아다니다보면 많이보게되는영화~~ 저수지의개들~
    전아직도못봤어요 ㅋㅋㅋㅋ 시간날때한번봐야겠네요~~^^

  • 티런 2010.01.23 12:06 신고 # modify/delete reply

    타란티노의 저수지의개들.
    참 재밌게 본기억이나네요^^
    기회가된다면 다시 보고싶습니다.ㅎㅎ

    • 저도 가끔 본 영화 다시 보는 게 취미인데
      다시 보더라도 꽤 재밌더라구요ㅎㅎ

  • 쥬늬 2010.01.23 13:22 신고 # modify/delete reply

    맨 마지막에 잔인하다는 글이 영화를 볼까말까 갈등을 생기게 하는군요.
    잔인한영화는 왠지 보기가 싫습니다. 하루종일 찝찝함이 밀려온다는.
    저는 그냥 지후님의 글로 만족할렵니다.

  • 제목이 낯은 익은데 처음 보는 사진이군요.. 잔인한 영화인가보군요..
    저주지가 주는 의미가 더럽고,, 뭐 그렇잖아요.
    영화 역시 그런 분위기...
    주말 잘 보내세요

    • '저수지의 개들'이란 제목은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요ㅎㅎ
      잘 기억은 안나지만 타란티노 감독이 데뷔하기 전,
      어떤 것에 영감을 받아 뭐든 첫 영화에 저 제목을 쓰기로 해서
      영화의 제목이 '저수지의 개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 G_Gatsby 2010.01.23 17:59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제목에 끌려서 한번..
    보고 난뒤의 충격에 끌려서 또 한번..
    지나간 영화가 보고 싶어서 또 한번...
    쉽지 않지만, 뇌리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또 오랜만에 좋은 영화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 부스카 2010.01.23 18:05 신고 # modify/delete reply

    오래 전 글이지만 트랙백 하나 남겼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 pennpenn 2010.01.23 18:24 신고 # modify/delete reply

    위 스님과 동자의 선문답이 인상적입니다.
    한번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 센텔 2010.01.24 09:48 신고 # modify/delete reply

    오옷. 재미있겠군요 ㅇ_ㅇ!
    전에 포스트하셨던 아마존의 눈물도 구해놨답니다 <
    이것도 어디서 구해서 봐야겠어요 ㅋㄱ

    • 센텔님이시라면 아마 재밌어하실 듯 합니다.
      한 번 봐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 탐진강 2010.01.24 12:44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제겐 좀 어려운 영화군요.
    좋은 한주되세요

  • 탄란티노 감독의 명성과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본 영화가 없네요.
    <펄프픽션>을 보았지만 참 이해하기 어렵고 정신이 어지럽던 기억이 납니다^^;;

  • 우리가 아는것은 없다....안다고 믿는것 뿐이다.....=> 요거 메모 했습니다..^^
    너무 좋네요...^^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 Slimer 2010.01.25 20:58 신고 # modify/delete reply

    어렸을 적에 많이 들어보았던 영화지만 아직 본적은 없네요.
    영화 매니아였던 형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작품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 Reignman 2010.01.26 18:10 신고 # modify/delete reply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은 모두 보긴 했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워낙 본지가 오래돼서 좀 가물가물해졌네요.
    귀 자르는 장면밖에 생각이 안나요. ㅎㅎ
    하지만 영화가 주는 강렬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타란티노 갠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워낙 하드하고 괴짜스러워서 ㅎㅎ
    저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작품이 오래되었지만 기억에 남네요..

  • 디킨스 2010.02.15 02:10 # modify/delete reply

    어제 이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바스터즈보고 이사람의 데뷔작은 어떨까 해서 말이죠.
    지금이야 시나리오 전개가 그냥 그렇다만.. 저 시대때에
    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참 놀라만 햇을듯합니다.ㅋ
    지금봐도 긴박감 넘치는 영화.ㅎ
    리뷰 잘 읽고갑니다.

    • 지금봐도 바스터즈 같은 건 워낙 독특하죠ㅎㅎ
      펄프픽션도 한 번 보시길,
      타란티노 작품세계가 잘 드러나있는 영화랍니다.

  • 어멍 2010.03.16 20:14 # modify/delete reply

    재밌게 잘 봣습니다.
    거칠은 세계엔 어울리지 않는 화이트의 믿음, 블론드의 잔인함(이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듯), 오렌지의 긴장과 압박감(그런 경찰, 그 압박과 임무를 초지일관 수행하려는 경찰이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거의 이중간첩 비슷하게 타락하지 않을까 싶네요)

    예산은 정말 적게 든 듯, 출연료 빼고는 한국의 19금 비급영화보다 좀 더 든 듯 하네요.

    • 아마 출연료도 얼마 안 들었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배우들이 순전히 작품만 보고 출연에 응했다고 들었거든요. 당시 초짜였던 타란티노에게 많은 제작비가 떨어졌을 리도 없고..

다음달부터 군대의 고기 반찬이 줄어든다고 한다. 돼지갈비는 1년에 13번에서 9번, 오리고기는 12번에서 9번, 닭고기 순살은 하루 20g에서 15g으로 각각 횟수와 양이 줄어든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류 가격은 15%나 상승한 반면 올해 군대 급식 예산은 고작 4% 정도만 늘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군 장병들의 식탁에 고기 반찬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고기 대신 오징어나 굴, 버섯, 파프리카 등을 배식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맛있는 고기 반찬에 환호하던 장병들이 지을 실망스러운 표정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고기 가격이 올라서 사병들에게 고기 반찬을 줄 수가 없다니, 처음에는 무슨 북한 관련 뉴스인 줄 알았다. 북한 같이 못 사는 나라가 아니고서야 돈이 없어서 사병들 급식을 줄인다는 이야기가 말이 되는 상황인가? 겉으로는 '강한 군대'를 표방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병들의 먹거리를 줄이려는 현 정권이다.

우리나라의 국방비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약 3% 정도로 일본, 중국, 영국보다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 정부지출 분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국방예산이기도 하다. 해마다 막대한 돈을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병들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기만 하다. 올해 예산이 깎이자 당장 사병들의 고기 반찬부터 거두어들였고, 작년에는 금융위기가 닥치자 얼마 되지도 않는 사병 월급부터 동결시켰다(참고로 장교들의 월급은 동결되지 않았다). 또 이전 정권이 선진 병영문화 수립을 위해 늘린 사병들에 대한 군 복지 예산 또한 대폭 삭감시켜버렸다. 덕분에 사병들은 보일러 한 번 마음 편히 못 틀어보고 올 겨울을 버티게 되었다. 불행이도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렇게 사병들이 추위에 벌벌 떨 동안 군 수뇌부와 장교들은 두둑한 월급은 물론 퇴임 후 연금까지 받아가면서 호위호식하고 있다. 참고로 국내 복지단체 중 군인공제회 만큼 큰 손을 가진 단체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나 군은 사병들에 대한 지원을 굉장히 아깝게 여긴다. 아무리 군 복무가 의무라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월급이나 열악한 복무 환경은 그 의무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마저 지급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요즘 지어지는 정부나 지자체 건물들을 보라. 마치 첨단 IT기업의 연구소에 와있는 것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 일색이다. 나라가 돈이 없다는 것은 순전히 옛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병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의무라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징병하고 긴 시간 복무하도록 강제하면서 국가나 군이 이들에게 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 말이 좋아 국방 의무이지, 국가가 20대 청년들을 상대로 하는 '착취'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그러는 와중에 정부와 군 수뇌부가 군필자들을 상대로 마치 군 복무를 보상해주는 것 같이 생색을 내는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군 가산점 제도'이다.

군가산점제란 제도에서 국가가 군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상해주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 '가산점'이란 어감을 이용해서 마치 국가가 군필자들에게 일종의 보너스(+α)를 제공해주는 듯이 눈속임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보상'은 반드시 주는 이와 받는 이를 필요로 한다. 보상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 (+)를 얻지만 반대급부로 보상을 해주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 된다. 군가산점제라는 보상제도는 마치 국가가 (-)를 감수하고 군필자들에게 (+)를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군필자들이 보상 받을 (+)를 만들어주는 것은 군필자를 제외한 여성, 군면제자, 미필자들의 (-)이다. 군가산점제로 정부가 군이 감안해야 할 비용은 제로다. 단지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군필자들에게 가산점만을 부여해 채점을 매기는 것 뿐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공무원 채용의 기회를 잃는 것은 여성들이나 면제자들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아챙기는 것처럼 국가의 군가산점제 시행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국가가 군가산점제의 비용을 치르는 것이 절대 아니란 이야기다. 군가산점제에서 국가나 군이 군필자들에게 해주는 보상은 없다. 생색 뿐이다.

이를 남녀 성별 대결로, 혹은 군필자와 면제자 간의 형평성 문제로 호도하여 군대 보상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들과 면제자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국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줬나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당장 사병들의 고기 반찬부터 줄이는 게 이 나라 군 수뇌부이다. 2년이란 긴 복무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푼돈 몇 푼 쥐어주는 게 그들이고, 그 몇 푼 안 되는월급마저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로 제일 먼저 깎아버리는 게 바로 그들이다. 이런 군 수뇌부, 국가의 잘못을 왜 여성들과 미필자, 면제자들이 부담해야 하냐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 단지 의무란 명목만으로 언제까지 아무런 보상도 대가도 없이 이 나라 젊은이들을 부려먹어도 된단 말인가. 당연한 것을 단순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정당당하게 따지고 되물을 줄 알아야 한다. 군가산점제로 군필자들과 여성단체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모습, 어쩌면 군 수뇌부가 바라던 그림일 수도 있다.


  • ^^

    어젠가 저도 이 뉴스를 접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고맙고 미안하기만한 군인들한테, 고기 배식까지 줄이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느 머리에서 나온건지...
    정말 너무한다 싶더라구요.;;

    도대체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참 답이 없다 싶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pennpenn 2010.01.14 17:14 신고 # modify/delete reply

    남성들의 군 복무기간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이루어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머 걍 2010.01.14 20:32 신고 # modify/delete reply

    위 간부들 반찬은 안줄이겠죠?

  • 가슴이 아픈 정도네요.
    슬데없이 예산 낭비 펑펑하면서 정작 건강해야할 국인들에게 고기 반찬을 줄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드네요. 도대체 국가를 의하는 것인지 개인저긴 배를 채우겠다는 것인지...정말 양심에 털이 난 것 같습니다.

    • 그러게나 말입니다. 맛있는 거 더 얹어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고기 반찬을 빼앗다니요.

  • Deborah 2010.01.14 21:37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저도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미국에서는 그런 혜택이 있어요.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현역으로 갈 경우에는 다니는 직장에선 강제로 해고 할 수도 없고, 군대를 나온 사람에게는 공무원직의 혜댁이 따라갑니다. 한국은 미국의 그런 실정을 따라하려고 하는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군요. 문제가 다분히 있군요. ㅡ.ㅡ

    • 미국을 보면 참 선진국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전쟁 때 찾지 못한 유해를 발굴하겠다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애쓰는 모습을 볼 때면,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나 싶죠. 우리가 우리 장병들 먹을거리 하나 챙겨주지 못하면서 감히 선진국이다 강대국들 반열에 올랐다 뭐다 떠드는 게 참 우스워집니다.

  • ageratum 2010.01.15 08:26 신고 # modify/delete reply

    고기반찬을 늘려줘도 모자를 마당에 줄이다니.. 참..
    사기라는게 정말 사소한것에서 영향을 받는건데 말이죠..
    암튼 군가산점 제도는 계속 말이 많을거 같네요..
    남자이긴 하나 이게 되는게 맞는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공무원 준비를 안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 제가 쓴 내용도 제 의견에 불과하니까요,
      군가산점제 문제는 계속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부스카 2010.01.15 09:42 신고 # modify/delete reply

    고기 반찬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 이슈화가 되자 국방부에서 해명글이라고 내놨는데
    뭐 채소와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라는는 둥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해명이라고 했던데
    고기 반찬 속의 고기가 웃을 일이네요.

  • Slimer 2010.01.15 10:03 신고 # modify/delete reply

    명바기가 군대에서 빤쓰를 도둑맞아 봤겠어요, 그렇다고 김치볶음에 고기만 찾아먹다 식판으로 대가리를 찍혀 봤겠어요...

  • 트레브 2010.01.15 10:06 신고 # modify/delete reply

    모든 예산이 줄어든건가요?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배정도 줄어 들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모든 예산은 4대강은 가나요?

    • 4대강 예산을 확보하다보니 복지 쪽 예산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기초수급자나 등록금 지원, 장애인 지원 등 대부분 복지 예산이 깎여버렸죠.

  • ㅋㅋ..제목보고..확장된 실제반영도가 화악~ 느껴지네요~
    완전 제로섬 게임인거군요~ 으으

  • 완전히 불쌍한군인들...ㅜㅜ
    맛있는고기반찬도못먹고....
    월급으로 PX가서 냉동식품이라도 사먹어야겟지요

  • leedam 2010.01.15 12:01 신고 # modify/delete reply

    뜨거운 맛을 봐야 고기가 나오겠군요

  • 감성PD 2010.01.15 18:33 신고 # modify/delete reply

    허허....먹어도 먹어도 배 고픈 시기에;;;
    고기반찬이 줄다니.....

  • 간부잘들어라 2010.01.17 22:58 # modify/delete reply

    간부월급은 안줄이고 일반병사 고기줄이냐 아 드른나라네 일은 밑에놈이하고 전쟁하면 밑에놈이 더죽을텐데 사병들 안불쌍하냐?

  • 종이술사 2010.01.18 22:01 # modify/delete reply

    생색내기 정책ㅋㅋ
    우리나라가 젤로 잘하는거죠

  • 어멍 2010.01.23 01:11 신고 # modify/delete reply

    60~70년대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군 간부들이 양식도 빼돌려 사병들이 배를 곯았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곡괭이 자루로 맞기까지...가끔 보면 군대에서 크게 맞아서 지금도 허리가 안좋다느니 하는 어르신들이 몇몇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인간의 탐욕, 자본의 생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상병 만기제대한 노무현 대통령은 군에서 썩는다는 표현으로 설화를 격기도 하였지만 사병 처우개선에 관심을 두셨지요. 반면에 군 미필인 이명박 대통령은 병역이 신성하고 자랑스런 의무라면서도 야박하기 그지없지요. 웃긴 일입니다.

    군가산점제에 대한 +,- 이론은 참고할 만하네요. 쉽지는 않겠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으론 아직 뭐가 옳은지 정리가 안 되고 판단이 안섭니다.

    여성, 군미필자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지는 말아야겠죠. 그러면서도 뭔가 군필자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대안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게 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구체적 대안은 무엇인지 궁굼하군요.

    • 군필자에 대한 인센티브...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만, 일단 사병들 월급부터 상식 수준으로 올려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나라 육군은 너무 비대화되어있습니다. 기형적인 육해공 비율이라고 들었고요.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죠. 군 수뇌부는 전부 육사출신장교들인데, 그들이 쉽게 자기네들 밥그릇 내놓을리가 없으니까요. 육군 규모 줄이고 그만큼 줄어든 장교들에 대한 봉급 사병들에게 지급해도 사병들의 월급 엄청 오를겁니다 아마.

  • 말장난 2010.02.02 21:35 # modify/delete reply

    군대 가는사람들은 좋아서 2년간 노동 제공해주는거 아닌데 말입니다.
    얼마 하지도 않는 고기반찬(말이 고기지 저기서 주는 고기가 제대로된 고기나 나온답니까)도 못먹는건가요.
    최소한 월급은 주어져야한다고 보는데.. 이건 정말 아닌것 같습니다.
    이건 국가의 이름을 댄 노동 착취일 뿐이지. 나라에 대한 의무라고 보지 않습니다.

  • 세렌디퍼 2010.03.25 00:16 # modify/delete reply

    군 간부봉급 5년째 동결이고, 올해역시 봉급 동결입니다. 그리고 군 간부 식당의 경우는 간부들이 따로 식대를 내고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이와 관련한 국고보조 예산 없습니다) 간부식당 반찬과 사병 반찬얘기하는 것은 전혀 맞지가 않는다고 생각되네요. 고기반찬이 줄은 것은 밝혀진 것이지만, 이 외에 부가적인 복지(병영생활관, 기타 문화시설 등)등은 전반적인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뭔가 쓰기전에 제대로 알아보고 쓰셨으면 좋겠네요.

    • 제가 언제 간부식당 반찬과 사병 반찬을 비교한 적 있나요?
      간부들은 직업 군인들인데 식대를 내고 식당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또 군대의 전반적인 복지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고도 이야기한 적도 없고요.
      단지 예산이 줄었다고 장병들 고기 반찬부터 줄이는 군 수뇌부의 치졸한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뿐인데, 대체 무엇이 그리 불만이신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전 세계 배낭 여행자들에게 가장 있기 있는 가이드북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17개 언어로 발행되며, 여행 분야에서 손꼽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런 론리 플래닛이 새해들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조사하고 평가한 결과, 공교롭게도 서울이 최악의 도시 톱3에 선정되었다. 그 자세한 선정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소식은 서울시에게도 전해졌고, 서울시는 평가가 잘못되었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시는 지난 수 년간 시의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터였다. 최근 어딜 가나 볼 수 있던 문구가 'Hi, Seoul'이었지 않았는가.(그나마 'Hi, Seoul'이란 표현도 잘못된 영어 표현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했었다. 원래 제대로된 영어식 표현은 'Seoul, Hi'이어야 한단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서울이 왜 최악의 도시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론리 플래닛의 짧은 설명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형편없이 반복적으로 뻗은 도로들과 소련식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그곳은 심각한 환경오염 속에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다. 숨막힐 정도로 특징이 없는 이곳이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맞는 말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삭막한 아파트들, 더러운 공기와 물, 이외에는 어떠한 특색도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의 도시 서울이다. 서울시가 서울이란 브랜드를 알리는데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정작 그 브랜드 안의 내용은 별로 볼 게 없는데 말이다.


600년 도읍지를 자랑하는 서울, 그 중심을 흐르던 청계천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많은 교량과 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던 유적들이었다. 실제로 청계천 공사가 시작될 무렵, 학계나 언론들을 중심으로 청계천의 옛 교량, 수로, 수문 등의 문화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의 임기 시절, 하루 빨리 복개 공사를 완공해 시민들에게 청계천을 보여주고 싶었던 서울시는 이런 유적들에 대한 조사와 보존 작업을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광통교나 오간수문의 석재 유적들이 아무렇게나 잘려나가고 버려졌다. 또 이 때 발굴되었던 많은 석재 유물들이 옮기기 좋게 잘려서 지금 서울의 한 하수종말처리장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건 더 아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겠지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문화재 훼손 혐의로 학계와 시민단체들에게 고발당하기도 했다.


청계천은 생태 복원에도 실패했다. 사실 청계천 복개 사업은 애초부터 친환경적이지 못했다. 콘크리트와 도로로 덮여있던 청계천을 말 그대로 '복개'만 했을 뿐이다. 뚜껑만 열어재낀 것이다.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여러 가지 장식물들을 설치한 덕분에 외관상으로는 단정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지금 이 시간에도 썩어가고 있다. 청계천 수질 비용 관리에만 매년 100억에 가까운 비용이 들고 있다. 청계'천'으로 불릴 것이 아니라 청계'수로'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은 땅과 숨 쉬는 자연 하천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로 쳐발라 만든 인공수로에 가깝다. 하천변도 흙과 수풀보다는 꽉 막혀있는 돌벽과 콘크리트 계단으로 되어있다. 대외적으로는 친환경 복원이라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흙이나 자연생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위적인 광경은 삭막하기까지 하다. 대체 어디가 친환경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청계천은 문화재 복원에도 생태 복원에도 실패했다. 도심 속 소중한 공간이 썩은 물로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행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도시, 체코 프라하. 뭐니뭐니해도 프라하의 명물은 '카를교'이다. 카를교에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카를교를 찾을까? 물론 오랜 역사나 오래된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도 매력이겠지만, 사실 실제로 카를교에 가보면 별거 없다. 너무 오래된 탓에 거뭇거뭇하고 생긴 것도 다른 다리들에 비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도 유명한 다리다. 역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하지만 크게 아름답거나 하진 않다. 철근으로 만들어진 아치 모양은 서울의 한강대교와 다르지 않다. 아니, 진짜 똑같이 생겼다. 실제로는 그 자체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카를교와 세체니 다리. 근데 왜 그곳에 사람이 몰리는 걸까? 답은 하나다.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유명하게 만든 걸까? 바로 프라하 사람들과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자신들의 역사적인 건축물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진 덕분이다.


그런데 왜, 서울시는 카를교나 세체니 다리 같은 명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을까? 청계천의 광교나 광통교, 수표교 등등 유서 깊은 문화재들은 마음대로 깨부수고 내다버리면서 말이다. 어디 청계천만 망쳐놓았나, 인사동도 피맛골도 곧 불도저로 깔아뭉갤 판이다. 서울시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콘크리트 고층 빌딩을 지으려고 말이다. 서울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 서울이란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브랜드를 이루어가고 있는 속 내용은 텅 비어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 따로 없다. 파리에는 상젤리제 거리, 뉴욕의 브로드웨이,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도시들은 저마다의 확실한 상징물을 갖고 있지만 서울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막대한 비용 들여서 해외 방송에 광고 내고 브랜드 가치 높인 덕분에 결국 듣는 소리가 '특징도 영혼도 없는 도시'다. 더 이상 '론리 플래닛'의 조사가 잘못되었다느니 별로 영향력 없는 곳이었느니 하는 핑계만 늘어놓아선 안 된다. 왜 그런 망신을 당해야 했는지 진지하게 되새여봐야 한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계속 했던 말이지만 서울시에게는 어떠한 철학도 고민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일회적으로 벌어지는, 상업주의에 찌든 이벤트들 뿐이다. 역사도 없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만 한 소중한 자산들은 뒷전으로 한 채 매번 요상한 일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일관성도 없다. 언제는 녹색 도시였다가 또 갑자기 디자인 도시란다. 모토고 뭐고 뒤죽박죽 제멋대로 섞여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런 특색도 없는 회색의 도시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고, 해외로부터 최악의 도시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울이란 도시, 얼마나 재밌고 이야기가 많은 곳인가. 이렇게 오래된 역사와 유적을 갖고 있는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도시가, 이렇게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도시가, 이렇게 늦은 밤까지 술과 유흥을 즐길 줄 아는 도시가, 이렇게 네온사인이 화려한 도시가, 이렇게 멋있고 예쁜 젊은이들이 돌아다니는 도시가, 이렇게 치안과 질서가 좋은 도시가, 이렇게 역동적인 도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서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멋과 맛을 따지자면 정말 끝이 없다. 이런 서울을 알리고 가꿔나가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바로 우리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울만의 멋과 역사를 즐기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

  • 불탄 2010.01.07 01:13 신고 # modify/delete reply

    역시나 요즘 말로는 개념이 있다는 표현, 우리 때 말로는 의식이 있는 포스트였습니다.
    느낀 점도 많고요.
    소중한 의견이 곳곳에 담겨있는 포스트, 아주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아울러, 다음뷰로 매일 지후아타네호님의 글을 구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고, 너무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또 구독까지 해주시고 관심가져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포스트에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내용도 분명 있을 텐데
      그럴 땐 냉정한 댓글도 달아주셔요.
      전 그런 걸 더 좋아합니다ㅎㅎ

  •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도..부인할수 없는 적나라한 사실을 말씀주셨네요..
    회색톤의 도입사진이..모든것을 대변하는 느낌이네요..ㅠㅠ

  • 티런 2010.01.07 10:46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저도 뉴스를 들었는데 우리의현실,매체에대해 평가절하하는모습.
    모두 씁쓸해지더군요.

  • 글이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서울시는 오래된 것을 낡은것으로만 알고..
    그저 새것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주체적이기 보다는 흉내내기 바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청계천다리 버려진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 leedam 2010.01.07 12:33 신고 # modify/delete reply

    예전거도 보전을 해야하는데요 무조건 부셔버리고 다시 세우니 참 그러네요

  • ^^

    좋은 글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이 무언지 잊고, 우리 고유의 멋과 색은 다 빼버린 채,
    국적 불명의 건물과 조형물들로 그저 겉포장만 그럴 듯해 보이게 해놓고선, 국가 브랜드가 어떠니, 도시 브랜드가 어떠니....
    웃기는 말이다 싶습니다.

    그나저나, 청계천 다리들이 저렇게 버려져 방치되고 있는 건...
    저도 처음 알았는데요.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깊이 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지후아타네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리들을 방치해두고 있는 건지...

      잡학소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공감공감.... 제가 일년에 2번정도 방문할때마다..너무나 달라진 모습이 화들짝 놀란다니까요... 새로운 것도 좋지만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ageratum 2010.01.08 00:35 신고 # modify/delete reply

    아파트나 뭐 그런건 되돌리기엔 늦었다고 쳐도..
    청계천 공사를 하면서 나온 소중한 문화재를 저렇게 썩히고 있다는 사실엔 정말 화가날 수 밖에 없네요..
    이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언론들도 문제고 말이죠..
    하긴.. 지금 언론이.. 참..;;

  • 머 걍 2010.01.08 20:53 신고 # modify/delete reply

    10년 넘게 하루에도 몇번씩 청계천을 건너다녔었는데.....
    문화와 전통은 오래되었다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것인데
    새것이 좋다는 마인드를 마구 적용해 버렸으니 깝깝할 노릇입니다.
    우리것이 좋은 것인데...

    • 무슨 일을 할 때는 좀 고민좀 해보고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서울시는 말이죠.

  • 센텔 2010.01.08 22:39 신고 # modify/delete reply

    서울이라는 도시가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품고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그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이렇게나 못살리고 또 그 많던 유적을 그렇게나 지키지 못한 도시가 또 있을까 싶어요.
    확실히 이렇게 질서를 이렇게 지키는 도시가, 젊은이들이 갈 길을 잃은 채 밤새 술과 유흥으로 시간을 보내는 도시가, 주체성 없이 역동적으로 쫒기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또 있을지. 슬픕니다.

    • 그런 유서 깊은 서울을,
      왜 두바이 운운하며 이상한 도시로 만들려고 하는지...

  • 2010.01.10 13:37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론리 플래닛의 평가 어느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의 반응이 의외로더군요. 사실을 인정하고
    전통미를 살리는 쪽으로 나아가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용산이나 4대강 개발 등에 독자적인 행보없이
    너무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듯해 안타갑습니다.

    •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요. 오세훈 시장에겐 MB가 정치행보에 있어 하나의 모델이 되었으니까요.

  • dku9292 2010.07.30 13:38 # modify/delete reply

    지금봐도 상당히 공감가는 군요. 하지만 마음도 영혼도 없다는 말은 조금 심한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관리하는 사람들(정부,건설업 관계자 등)만의 잘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 노원구에 살아봐서 아는 건데요. 길거리에 쓰레기가 상당히 보이더군요. 도쿄의 경우는 쓰레기가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모습을 거의 못 본것 같은데요... 그리고 서울에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괘 보이더군요. 물론 서울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바껴야 겠지만, 우리도 시민의식을 지니고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일지도...

  • dku9292 2010.07.30 18:55 # modify/delete reply

    어쩌면 서울을 야누스의 두 얼굴로 비유하면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 과연 무슨 생각으로 도시 계획을 하는 건지,
      제 눈에는 어떠한 기준이나 철학도 보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단지 그런 의미에서 특징도 영혼도 없다는 평가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더군요.

  • dku9292 2010.08.11 17:17 # modify/delete reply

    물론 그렇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건 비단 관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도 조금이지만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전, 서울 시민 중에서 시민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나 몰라라 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자전거를 위험한 곳에서 타지는 않았습니까? 신호를 무시하지는 않았습니까?" 라고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더 이상은 못 말하겠어요... ㅈㅅ
    그리고 추억의 장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식객 26권을 보셨나요? 거기에서 서울의 제개발로 인해서 단골 식당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설마 서울 초딩들이 다른나라 초딩들에게 세계최악의 도시에 살고 있다고 왕따당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죠? ㅇ_ㅇ

  • dku9292 2010.08.11 17:25 # modify/delete reply

    자꾸 나대서 죄송한데요... 전 제가 정말로 서울에 사는게 행복한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의 추억도 많은 곳이지만, 세계최악의 도시 3위로 뽑히니까 더욱 혼한스럽네요... 전 제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로 여기서 사는게 행복할까?" 아니면, "과연 이 곳에서의 나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제가 지금 느껴본건데요... 세계최악의 도시 리스트가 세계의 살아있는 지옥 리스트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 dku9292 2010.08.11 20:39 # modify/delete reply

    생각못했던 오타가 나있었네요... '혼한스럽네요'의 '한'을 '란'으로 바꾸겠습니다...

사진 속 차가운 돌벽에 상처 같은 구멍들은 무엇일까? 바로 총알 자국이다. 지금도 저 돌벽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처형장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그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 그대로 말이다. 벽에 총알이 튀고 피가 얼룩지면서 총살 당했을 수감자들을 생각하면 잔인한 역사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마련이다.

폴란드 정부는 총탄 자국이 새겨진 돌벽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보존하고 전시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조상이 독일 나치에게 당한 그 처참한 현장을 과거 모습 그대로 드러냈다. 전례가 없었던 잔인한 학살을 당한 폴란드인들에게는 너무나 아프고 치욕스러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수용소를 개방하였다. 입장료 한 푼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경주가 수학여행지의 1순위로 꼽힌다면, 유태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 1순위는 바로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이곳에 가면 단체로 수용소를 둘러보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은 왜 후손들에게 이토록 처참했던 공간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가 2020년까지 1400억 원을 들여 남산을 새롭게 가꾸는 '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르네상스'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나 알고 이런 명칭을 정했던 것이었을까? 서울시는 뚝딱뚝딱 새로 건물이나 짓고 공원만 보기 좋게 가꾸면 뭐든 '르네상스'가 되는 줄 알았나보다. 일제 통감관저 터, 안기부 본관 등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곳들을 굴착기로 밀어버리려는 그들이 '르네상스'라는 말 속에 '과거의 재생'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우리는 심한 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기억에 대한 편식말이다. 그저 자랑스러웠고 영광스러웠던 기억만을 되뇌이려 한다. 부끄러웠던 순간, 치욕스러웠던 순간들은 애써 잊으려 할 뿐이다. 결국 되풀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였다. 부모들은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지만, 아이들은 혼났던 기억은 잊은 채 제 멋대로의 잘못만 반복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반만 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고, 강대국들 사이에서의 격동의 근현대를 거쳤던 우리만큼 소중한 경험들을 갖고 있는 민족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설령 그 경험과 기억이 치욕스럽고 창피하다고 한들, 그 기억을 감추고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고 함께 의미를 다지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어낼 지혜와 경험은 너무나도 많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되뇌이는 것은 절대 과거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요,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서 자부심을 느꼈던 것처럼 수치스러웠던 과거에서 반성과 고민을 느끼는 것 뿐이다. 유태인들이 과연 여태껏 과거에 얽매여있는 탓에,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유태인 수용소를 보존하고 있을까? 이미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에 대한 답은 너무나 뻔해 보인다.

과거 전범국가였다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성숙한 국가로서 주변국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과거에 대한 반성 덕분이었다. 반대로 일본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주변국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탓이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망언을 일삼을 때마다 우리는 발끈하며 일본인들을 호되게 몰아친다. 그런데, 기억하지 싫은 역사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또한 일본인들과 똑같은 부류가 아니던가.

  • 센텔 2009.12.08 23:56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정확한 표현이군요. '기억에 대한 편식.'

  • 만신창이 2009.12.11 13:58 # modify/delete reply

    한 3달 전부터 한겨레 21에서 남산에 대해서 연재한 뭐가 있었는데,,
    그냥 새로운 남산의 일면을 보여주는구나 하고 읽기만 했었는데
    네 글을 읽어보니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