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을 휴가 시즌으로 여기는 건 어디까지나 유럽의 문화에 불과하다. 그곳은 겨울이 긴 탓에 여름에만 보송보송한 햇볕을 쬘 수 있기 때문이다. 습도도 높지 않아서 야외활동을 하기에도 알맞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바캉스 시즌마다 보송한 햇볕을 찾아 남부 해변으로 떠난다. 그렇기 때문에 바캉스라 하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고.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휴가 시즌 또한 정확히 그 기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그 기간은 제일 덥고 습할 때다. 해마다 폭염으로 사망자가 나오는 때이기도 하다. 습한 탓에 모기 같은 벌레도 기승이다. 여행 같은 야외활동을 하기엔 사실 한겨울만큼이나 적합하지 않은 시기다. 그럼에도 바캉스 시즌이라 하면 사람들은 바다로 몰린다. 바다가 더 덥고 더 습한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시사철 햇볕 잘드는 한국에서는 해변에서도 선크림을 바른 채 파라솔 밑에서 햇볕을 피하는 요상한 모습이 나오는 거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흔히 말하는 '김여사'를 포함하여)의 큰 착각은 자신이 운전이 미숙하기 때문에 욕먹는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운전 미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욕먹는 진짜 이유는 알아야 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건 운전 실력보다는 운전 매너에 가깝다. 예를 들면 상황에 맞는 방향표시등이나 수신호,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위한 보편적인 주행 매너, 상호 간의 적절한 배려 운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매너나 예의는 모른다고 해서 용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매너란 늘 숙지하면서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속주행을 한다고 욕먹는 게 아니다. 저속주행을 할 때는 양보운전을 해야 한다는 매너를 모르기 때문에 욕먹는 거다.

난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을 보며 동심을 키웠던 세대고, 어린 시절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네극장에서 어머니와 '쥬라기공원'을 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쥬라기월드'는 한번쯤 보고싶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보게 될 21세기형 쥬라기공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좀 씁쓸하다고나 할까. 공룡을 보는 건지 공룡 모양을 한 에어리언을 보는 건지 그것부터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인도미누스 렉스와 T렉스의 다이다이는 마치 공룡판 투견장을 연상시켰다. 결국엔 싸움구경이었던 거다. 수천 년 전 콜로세움에서나 지금의 극장에서나 계속되는 싸움구경. 아무리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소중한 추억 속의 T렉스마저 투견장에 끌려나와 소모되는 건 좀 슬픈 일이 아닌지.

국회법 개정안 논의는 의미있는 토론거리다. 메르스나 '민생법안(이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보다 더 중요한 논의가 되었어야 했다.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한 사회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이고, 그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큼 더 중요한 쟁점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논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한 방으로 종식되고 말 논의가 아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이번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논리보다는 감정을 실은 권리 행사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개정안 논의는 청와대와 여당 사이의 파워게임 정도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짧막하게나마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지만 사실 행정입법에 대한 입법부의 통제는 그 방법에 따라 위헌이다 아니다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계의 견해도 갈리고 있고 실제로 각 국가마다 의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복잡한 문제라는 거다. 따라서 이번 논의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왜 개정안이 필요하단 말이 나오고 그것에는 어떤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고 그 고민만으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