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경환 부총리 입에서 최저임금 인상 이야기가 나온 걸 보니 내수시장 침체가 정말 심각하긴 한가 보다. 쌍끌이 어망으로 치어까지 신나게 쓸어담다가 뒤늦게 물고기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격. 물론 대기업 같은 어부들은 이미 자기들의 배를 실컷 채운 뒤의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치어를 방생하는 것과 같다.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인 셈.

서울에는 오스망이나 나폴레옹3세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오스망의 파리 정비도 갖가지 비판들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서울의 흉측한 난개발보단 백배 천배 낫다. 이곳에서도 도시를 근대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미적감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정권을 잡은 탓에 서울의 정체성, 역사성, 장소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때부터 서울의 특성을 결정짓는 건 오로지 돈이 되었고, 자본 논리에 따라 헐리고 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잿빛 콘크리트 건물만 수두룩해졌다.

하루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집에 가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엘레베이터도 혼자 탔다. 괜시리 기분도 좋았던 밤이기도 했고 마침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엘레베이터 거울을 보며 춤을 췄다. 홀로 있을 때만 가능한 말도 안되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차 싶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얼마 전부터 엘레베이터 내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다.

사실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비실에 아무도 없었을 수도 있고 누가 있었다 해도 모니터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 안 보고 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스스로 굉장한 창피함을 느꼈다는 점, 그리고 그 후로는 홀로 엘레베이터에 있을 때에도 옆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얌전빼고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본인이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깟 카메라 몇 대를 왜 꺼려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감시카메라는 범법자를 색출하는 것처럼 특정한 순간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일상적 감시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푸코가 말하는 판옵티콘처럼, 감시카메라가 켜져 있든 꺼져 있든 그것이 날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본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검열을 하는 거다. 감시란 그런 거다.

무슨 일만 터지면 CCTV부터 찾는 게 이 사회다. 해외에선 감시사회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 분전하고 있는 마당에 이곳 사람들은 본인의 터전을 감시사회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안전, 보안, 치안 등 감시카메라를 설치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시적인 장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할 가치들이 너무 많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덜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그리고 당장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집에 cctv만 설치하면 만사형통인가. 뭐든 걸 감시와 통제 아래에 두려는 건 후진적인 습성이다. (아주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철저한 모니터링이 언제나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서는 모니터링이 생산성을 저하시키며, 오히려 자율을 부여하는 것이 생산성을 증가시킨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이란 장단기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이 오가는 과정이다. 그것을 카메라 렌즈 하나로 감시하려는 건 멍청한 짓이다. 본인의 자녀가 정말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원한다면, (보육교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보육교사에게 질 좋은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이 먼저다.

김영란법을 의회에 맡긴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의원 본인들이 법안의 효력을 받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규제 적용을 순전히 불편해하는 의원도 있을 수 있고, 신념에 따라 법안 수정을 주장하는 의원도 있을 수 있다. 어찌 됐건 본인의 기득권이 달린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게끔 만드는 건 의원들의 입장에서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에서건 어느 쪽에서나 달갑지 않은 일이다.

원래 이런 법안은 대통령의 추진 하에 처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편리하게도(?) 행정부도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있고, 대통령은 시한부 권력이기 때문에 법안의 이해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도 하다. 사실 업적을 만듦으로써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건 집권자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다. 김영란법 같은 제도는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소스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란 세일즈 외교 따위를 위해 있는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