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해 산업화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노는 법’을 몰랐다.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돈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가장 쉬운 건 술이었다. 비싸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금세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다. 또 술친구 몇 명만 있으면 시간 때우기에도 좋았다. 퇴근길에 대포집에 들러 홀짝거리는 술이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고,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이른바 잠.일.술 세대. 그래서 그 세대는 계속 술을 마셨다. 즐거우니까 마시고 슬프니까 마시고 놀러왔으니까 마시고 친구들끼리 마시고 명절이라서 마시고 친하니까 마시고 서먹하니까 마시고 더우니까 마시고 추우니까 마시고. 모든 게 술이었다. 빌딩숲이든 어둑한 주택가 골목이든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 술집은 구석구석 어디에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는 달랐다. 더 이상 ‘노는 법’을 모르는 세대가 아니었다. 이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퇴근 후에도 쉬는 날에도 늘 할 게 많다. 여행을 가고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하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게임을 하고. 이들에게 술이 유일한 낙이라는 말은 아버지 입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다. 과거의 세대와 지금의 세대는 삶 속에서 술이란 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는 직장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나이가 많은 관리자들은 부어라 마시고 2차, 3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기존의 회식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 젊은 직원들은 술만 마시는 회식에 금방 염증을 느끼고 피곤해 한다. 왜 회식을 꼭 술을 마시며 해야 하는지도 더 나아가서는 회식 자체가 왜 필요한지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사회가 유독 술에 대해 관대했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교적 생활양식 하에서 중시되는 건 예의와 체면이었다. 항상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외부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표현을 절제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다수가 모이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어렵고 딱딱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그 불편함을 녹이기 위해 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술 덕분에 사람들은 가식의 가면을 내려놓고 조금 더 편하고 솔직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술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수직적 인간관계가 많은 직장에서는 술자리야말로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속사정을 탐색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예의, 체면, 권위 때문에 원래의 ‘나’를 들어낼 수 없었던 이들에게 술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절제와 인내가 미덕인 것도 옛말이 되었다. 지금의 세대는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자기주장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예의와 체면 같은 형식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담백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에게 솔직한 소통을 위해 술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술을 좋아하는 꼰대들이 찾는 핑계꺼리로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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