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갈까말까 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보게 되었다. 몇일 전 군대간 친구 한 명이 자기 대신 상암 가서 꼭 보라고 했는데 그 친구랑 한 약속도 지키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 반브롱코스트.
바르셀로나의 쟁쟁한 선수들 중에서도 주전을 꿰차고 있는 반브롱코스트.
리버풀의 새로운 공격수 카잇.

이런 유명한 선수들이 불과 내 눈의 몇 십미터 밖에서
내가 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뛰고 있다니.
신기하고 흥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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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나라가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조승희라는 이름이 한참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이번엔 김승연이라는 이름이다.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행동은 분명 상식 밖의 것이었다.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의 총수가 폭행당한 아들을 복수하려고 조폭을 동원하여 폭력사건을 일으킨 것은 수준 이하의 행동이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만큼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은 나라도 없는데 또다시 이런 사건이 생겨서 굉장히 유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면 속에 숨겨져있다. 경찰 당국은 사건 당일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에 대한 전모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화 그룹의 로비성 권고를 받아드려 사건을 조용히 매듭지으려했고, 사건 발생 후 무려 50여 일이 지나서야 한겨레 언론사를 통해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떠한 배짱으로 김승연 회장은 이처럼 공권력을 말그대로 무시할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현 우리나라 정권은 다소 극단적으로 말해 재벌들과의 껄끄러운 관계로 유명한 노무현 정권이다. 아무리 노무현 정권이 겉으로 기업 과의 통합을 표방한다지만,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게 되면 세무조사나 언론플레이를 통해 현 정부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현재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몸을 사려도 모자랄 마당에 오히려 이런식으로 공권력을 무시할 수 있었던 김승연 회장의 배짱 뒤에는 노무현 정권의 한 가지 큰 딜레마가 숨겨져있다.


법이란 사람들이 그 법을 준수할 때, 즉 지켜질 때 그 사회적 기능을 발휘한다. 그 법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사람들이 법을 준수할 경우 그 사회의 질서는 안정되어지고 바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최근 이른바 시민단체들은 법 위에 군림해있다. 법이라는 질서 아래에서 행동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과감히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다소 과격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이에 더불어 현 정권 또한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행동을 과거와는 달리 과감히 눈감아주고 있다. 이렇듯 시민단체 앞에서 작아진 공권력이 과연 기업들 앞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시민단체들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는 정부는 또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에게도 손을 들어줘야 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의 이러한 관계는 김승연 회장의 배짱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사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우리학교 총학생회가 학교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단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학교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명분이란다. 물론 총학생회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주장은 학교와 학생의 건전한 관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마냥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총장실 점거는 분명 불법적인 행위이다. 양날의 칼이다. 학교 측을 찌르는 만큼, 자기 자신을 찌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법, 규범, 규칙 등은 분명 지켜져야할 것들이다. 질서없이 사회는 유지되어지지 못한다. 아무도 무질서하고 혼란한 사회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을 보라. 그들의 여러 관습과 규범들은 우리의 상식 선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관습과 규범을 통해 지금껏 사회를 훌륭히 유지시켜 나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지금의 법을 옳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앞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하고 지어낼 법 또한 사람들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악법도 법이란다. 분명 이상적 시각에서는 불쾌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내가 예뻐라 하는 최윤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W.
이제 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자동소총과 권총을 가지고 필리핀에서는 인질극을 버렸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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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필리핀 마닐라 시청 앞 도로 한 가운데에 한 어린이집 버스가 멈추어섰다.
범인은 자동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이 버스 안에 있는 서른 여 명의 네다섯살의 어린 아이들을 인질로 삼고 인질극을 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스 안의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밝은 표정으로 주위 아이들과 조잘거리며 노는 모습이었다.

또한 버스 주위에서 인질극을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인질극을 벌인 범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두캇, 두캇, 두캇!'

그뿐이 아니었다. 인질들이 석방될 때에는 인질극 범인의 요청에 따라 주위의 시민들이 하얀 촛불을 켜고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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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극의 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탁아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탁아소의 원장이었다.
그는 어린이들을 인질로 삼고 정부에게 탁아소의 무료 교육, 주거 제공 등을 요구했다.
버스 안에 있던 아이들 중 감기에 걸린 아이는 중간에 석방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경찰들과 10 여 시간을 대치하던 도중, 범인이자 어린이들의 원장은 그 지역의 배우 출신 국회의원과 이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약속을 한 후, 인질들을 모두 풀어주고 경찰에 자수하였다.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인질이 되어야만 했던 인질극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인질극의 범인인 탁아소 원장을 고소하는 피해자 가족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의 부모들과 시민들은 탁아소 원장을 구속시킨 경찰을 향해 그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자신의 사비로 탁아소를 운영하며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았던 두캇.
오히려 필리핀 정부가 이러한 두캇을 인질로 삼고 감금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인질극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