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용적으로 볼 때, 이번 판결의 쟁점은 이것이었다. '이석기 등을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으로 볼 수 있는가.' 헌재는 '그렇다'는 판단을 했다. 내 생각 역시 헌재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의 통진당은 자정능력을 갖지 못했다. 경선 부정에서 내란음모파동까지 이를 이유로 당내 계파들이 떨어져나갈 동안에도 당 차원에서 사안을 조사하거나 이에 책임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아반성보다는 신랄한 정부 비판으로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이름은 진보당이었지만 그 행태는 사실상 파쇼에 가까웠던 셈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이를 당내 민주주의의 훼손 정도로 본 것이지만, 통진당 내의 민주적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바꾸어 말해 당의 지도부가 이석기 그룹에 장악당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리위임제라는 특성상 유권자들이 투표했던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일종의 배신감(정치학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고 말하는)을 느끼는 일은 다반사다. 물론 배신감에 관한 대부분은 공약 불이행 같은 정치적인 내용에 국한되어있을 것이고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면 된다. 하지만 단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의회의원이 법을 위반했을 때 그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의원 개인이 아닌 정당적 차원에서, 그것도 단순 위법이 아닌 위헌적 요소를 갖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 대표위임 모두 법 테두리 내에서 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였다. 그런 내 대표성을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무효화시켰다는 사실이 썩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더 불쾌한 건 내가 위임한 권리가 투표 당시엔 존재조차 몰랐던 소수의 세력에 의해, 더욱이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적 가치를 오히려 파괴하는 방식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위임한 권리란 생각보다 강력한 권한들이다. 입법에 관한 건 말할 나위 없고 행정부 감시, 면책특권, 국가적 지원 혜택까지. 만약 사법부의 판단이 없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내가 위임한 권리를 행사했을 것이다.

물론 그 여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법부의 개입이 최선인 것은 아니다(이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선거라는 정치적 절차에 의해 스스로 를 정화시키는 게 가장 바람직한 과정일 것이다. 통진당 또한 이미 지지층이 많이 이탈한 상태라 다음 총선에서는 원내진입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걸러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 점에서 헌재의 판결이 지나치다는 평가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재의 판결이 바람직하다 혹은 그렇지 못하다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꼭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데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사법부가 정당을 해산했다는 사실만으로 반드시 이를 반민주적이라고 단언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자유다 무엇이 방종이다를 확실히 가릴 수 없듯, 마찬가지로 방어적 민주주의란 그 필요성 자체는 물론이며 어느 지점을 경계로 삼을 것인지조차 쉽게 말할 수 없는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다. 따라서 필요한 건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이들에게는 고민이란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진보적 가치라는 도식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무엇이 나오면 한 목소리로 까대기만 바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