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프리먼, 이 할아버지 정말 좋다. 무엇보다 그 흑인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너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매력적인 포근한 목소리.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수에 가득 차있는 듯한 커다란 눈망울. 맞다. 그냥 눈이라고 하기보다는 눈망울이라고 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어울린다. 그 눈망울은 항상 변한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의 정겨운 눈망울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엄청난 야욕을 부리는 권력자나 악역의 차가운 눈망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정말 그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을 연기한 듯 하다. 헐리우드 스타라는 자신에게 우쭐하기도 하고, 자기 집 번호도 잊어버릴만큼 모자라기도 하고, 자신이 입은 티셔츠를 자랑하는 푼수를 보이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을 진심으로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배우 모건 프리먼이 아니라 순전한 인간 모건 프리먼이다.

원래 영화를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그저 보는 것 뿐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잔잔해서 좋았고, 잔잔하면서도 희망이라는 것이 보여서 좋았다. 따뜻하다라고 하기에는 말의 뜻이 너무 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훈훈하다고 하기에는 또 뭔가 판에 박힌 느낌이다. 그냥 푸근했다.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처럼.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여 주인공으로 나왔던 파즈 베가의 발음. 오래 전에 영화 '프렌치 키스'에서 케빈 클라인이 프랑스 억양으로 영어를 발음하는 것에 인상깊어했던 적이 있었다. 영어보다 한층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프랑스 억양식 영어는 케빈 클라인의 깊은 목소리와 굉장히 잘 버무려졌었다. 이번에도 낯선 영어 발음은 역시 매력적이었다. 파즈 베가의 스페인 억양식 영어 발음은 뭔가 또박또박하면서도 액센트가 강하고 발랄했다. 앙증맞다고 해야 하나.

  • laballade 2008.08.03 07:12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저는 불어 억양있는 영어가 정말 싫어요..듣고 있으면 그냥 좀 챙피해져요.

  • a Pilgrim 2009.01.03 12:39 신고 # modify/delete reply

    와.. 이 영화를 보신분이 있으시네요..
    그리고 재밌다고 느끼신 분도.. 저 말고도 계시네요..ㅋㅋ
    영화도 그렇고.. 이 글도 무척이나 반가웠다는.. ㅋㅋ

    •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ㅋㅋ
      저도 반갑네요~
      재밌다고 느낀사람이 많지 않나봐요,
      저는 잔잔하고 좋았는데..

    • a Pilgrim 2009.01.03 22:25 신고 # modify/delete

      짧은 영화였지만 참 잔잔한게 재밌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대화는 배울게 많으니까요. 현실에서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저는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한 어린아이지요. ^^

      댓글 달아주신것 감사합니다.
      종종 놀러 올께요^^;

  • 이 아저씨 인상 참 푸근하던데
    이 영화 찾아서 봐야겠네요.^^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일수록 영화를 단순히 보는 느낌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책을 읽는 느낌이다.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장면과 스토리의 울타리 안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받아들일 뿐이다. 최근 개봉되고 있는 화려하고 빠른 전개의 영화들, 물론 이런 영화들처럼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없겠지만 진정 영화를 음미하는 시간, 마음 속으로 영화 속 주인공도 되어보면서 충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갖기엔 너무나 속도감이 넘친다.

반면 책은 다르다. 책은 영화처럼 구체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책과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툭툭 소스만 던져주고 있을 뿐, 그 소스를 가지고 가슴과 머리로 진정한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보고 있는 것은 깨알 같이 글자가 적힌 흰 종이에 불과하지만 느끼고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방대하고 재미있는 상상이다.

어렸을 적, 으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한번쯤은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삼국지에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 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작은 삼국지 소설책에 불과했지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수백만의 대군들과 희대의 장수들이 뿌연 먼지와 거대한 함성을 일으키며 천하의 자웅을 겨루는 장면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렸던 나에게 삼국지라는 책은 황홀한 상상의 삼매경이었다. 그러던 중, 외가댁에 갔다가 외할아버지가 보시던 당시 중국 영화 '삼국지'를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내가 상상하던 삼국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드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백만 대군은 온데간데 없고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볼품없는 수십의 엑스트라들이 당시의 전쟁을 힘겹게 재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마치 책과 같았다. 영화를 보고 있다기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큰 여운이 몰려왔고 요즘 영화랑 다르게 느릿느릿하면서도 낭만적인 장면들은 그 대사들의 여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운도 그냥 텅빈 공간이 아닌 뭔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의미 넘치는 여운이었다.

사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한 카드 광고에서 카드 이용액을 늘리기 위해 인용했던 좀 유명한 말에 불과한 줄 알았다. 인생을 즐기라는 이 문구는 현란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한 젊은 남자와 더불어 인생과 청춘은 즐기기에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면 당장 지금이라도 카드를 가지고 흥청망청 생각 없이 내 인생을 즐겨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훨씬 무겁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으라는 말은 그보다는 보다 무겁고 의미있고 진중하다. '특별한 인생을 만들어라(Make your life extarordinary).'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비로소 완성시켜주는 문구다. '카르페 디엠', 순전히 '생각 없이' 인생을 즐기란 뜻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함, 그것을 완성시키고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바로 영화에서의 '카르페 디엠'이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해마다 몇명의 아이비리그 진학 졸업생들을 배출하느냐가 이 학교의 유일한 목표다. 이런 영미식의 교육제도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다를 바가 없었다. 연말마다 걸려졌던 명문대학 합격자 명단은 마치 학교의 교육에 대한 슬로건과 마찬가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와 대학 입시가 우선되어졌다. 그 외의 것들, 대학 입시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졌다. 오로지 입시와 공부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입시와 공부만으로 얽매여져야만 했던 학생들 그 하나하나가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수성과 삶에 대한 열성을 갖고 있을 나이의 소년들이란 점이다. 멋진 시의 한 구절에 꽂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꿔버리는가 하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아름다운 소녀에 눈이 멀어 정신을 놓기도 한다. 명백한 이유라는 것은 없다. 단지 이끌리는데로 이끌려가는 것 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은 봄만 되면 흐드러진 벚꽃으로 만개되어졌다. 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였는데 그 산 거의 대부분이 벚꽃으로 뒤덮이는 바람에 우리는 일년에 한 번 그 아름다운 광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교실 창문으로 흐드러진 연분홍 빛의 향연을 보려 시커먼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창문을 향해 턱을 괴고 있었다. 때론 교정으로 나가 떨어진 벚꽃잎들을 쥐고 뿌리며 놀기도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열시까지 하루종일 입시에 매달리는 건조한 일상을 지내야 했지만 연분홍 벚꽃들을 보면서 설렜던 것, 창문 밖으로 화창한 날씨를 보며 연애시를 쓰고 그 연애시를 적은 종이 테두리를 라이터로 이쁘게 태우며 가슴 졸였던 그 날들.

당시 하루하루 힘들게 공부했던 것은 지금의 나를 또는 앞날의 나를 있게끔 해주는 시간이었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말그대로 나의 삶을 그리고 미래를 유지시켜주고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 뿐이다. 삶을 지탱해주는 것, 삶의 에너지는 따로 있다.

밤 열시가 되면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났다. 나와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과 우르르 도서관에서 밀려나왔다. 도서관은 산 꼭대기에 위치했다. 늦은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올라갔던 무거운 발걸음과는 달리 내리막 산길은 매우 가벼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시원한 밤공기와 저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 어깨동무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뿌듯함.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이 영화가 입시만을 강조하는 학교와 교육제도를 비판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에서 노래하고 있는 낭만과 이상은 영화 속 학교와 사회에 의해 날개가 부러지고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영화가 꼭 현 사회와 영화 속 학교의 모습을 비판하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교사의 말대로 학교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카르페 디엠', 암울하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현실 속에서도 시와 낭만을 통해 현재를 잡을 줄 아는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가다. 중요한 것은 포근한 밤공기에서 낭만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느냐,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을 깨닫느냐다.

세상은 믿음 없는 자들로 넘쳐있기에, 전통과 규율, 딱딱함 밖에 모르는 바보들로 넘쳐있기에 시와 사랑이 더욱 낭만적인 것이 아닐까. 삶을 유지하는 것들,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어쩔 수 없는 바보들이 있기에 나만의 낭만, 나만의 즐김이 빛을 바라고 나만의 시가 한 편 쓰여지는 것이 아닌가.

역설적이다. 시인은 지금 죽어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그 가치를 발하고 시 또한 법률, 경제, 기술 등이 세상을 뒤덮고 있기에 더욱 낭만적이다. 물론 모두가 이를 깨닫고 아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쥘 수 있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 2008.07.08 17:45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egoing 2008.08.29 08:48 # modify/delete reply

    잘 봤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내요. 저의 글도 트랙백 걸어봅니다.

  • gayen0526 2009.02.06 03:26 # modify/delete reply

    정확한 연도수는 기억하지못하지만 20여년전 책으로 두번 영화로 세번 봤던 작품 우연한 기회에 story on으로 다시 접하게 되었지요 넘반가웠고 지금까지도 젤 인상깊은 책이나 영화가 무었이냐고 물으면 죽은시인의 사회라고 합니다. 넘반가워 가슴이 뛸정도입니다.

    • 그냥 지나가듯 보면 별거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좀더 가슴을 맞대어보면 상당히 느끼는 바가 많은 것 같아요. 반갑다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저도 그런 영화가 몇 개 있는데ㅎㅎ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앚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뒤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우리 또래라면 어렸을 적에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노래, '네모의 꿈'의 일부다. 네모에서 시작해 네모로 끝나는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면 어딜까. 조금은 어둡긴 하겠지만 교도소만큼 이 노래에 잘 들어맞는 곳도 없을 듯 싶다. 네모난 창살 안의 네모난 감방, 네모난 침대와 네모난 창, 네모난 교도소와 네모난 운동장. 무엇보다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그들이기에 이 노래에서 교도소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네모의 창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쇼생크의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지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쇼생크라는 테두리 안에서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일하라 그러면 일하고, 쉬라 그러면 쉬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다. 좋아하는 취미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 단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을 뿐이다. 아직 교도소에서의 삶이 익숙치 못한 신참 수감자들은 점점 바깥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을 잃어가고 다른 수감자들과 다를 바 없는 네모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 과거에 들판에서 하모니카를 멋드러지게 불어쟀꼈던 추억, 아내와 피크닉을 다닌 추억 등은 말그대로 다시는 겪어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릴 뿐 교도소를 들어오기 이전의 삶은 맥주 거품처럼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에서 동떨어진다.

하지만 이전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길들어짐'이다. 쇼생크에 의해 보호받고 감시받으면서 수감자들은 감옥 생활에 길들여진다. 40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옥한 '레드'가 '40년 동안 허락을 맡고 화장실을 다녔다. 이제는 누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데서 길들여진 삶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쇼생크의 한 늙은 수감자는 석방을 두려워했다. 교도소 담장 너머로의 자유롭기만한 새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교도소 밖으로의 발걸음을 무서워했다. 수 십 년간 굳어지고 단단해진 그의 쇼생크에서의 생활은 쇼생크 밖의 자유로운 새 삶을 살기엔 너무도 벅찼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겪게 되는 세상은 그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세상에 비해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또 그를 돕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벅찬 자유는 이미 쇼생크에 길들여진 그에게 독이 되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누렸던 자유는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쇼생크에서의 삶을 살아왔다. 물론 지금까지의 삶을 죄수와 비교하는 것은 과하겠지만 나는 지금껏 부모님과 세상의 보호 아래 살아온 것은 분명하다. 아침 점심 저녁 밥상을 차려주면 밥을 먹었고, 그만 자라 그러면 누워서 잠을 잤다. 돈을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공부하라 그러면 공부를 했고, 놀아도 좋다 그러면 그제서야 맘껏 놀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차례로 다녔다. 물론 대학생인 지금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지만 지금의 어른은 허물과 형식치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몇 년 후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학교와 부모님이라는 보호 감옥 아래서 벗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내 판단과 내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주고 해야할  일을 정해주고 보호해주는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쇼생크 너머의 삶을 두려워했던 레드의 서글픈 눈망울처럼 나또한 아무런 보장이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그리고 사회로 내딜 첫 발걸음에 대해 두려워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초년생으로의 내딛음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지는 무한 자유에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잠깐이나마 용기를 갖게 해준다. 갖가지 절망적인 고통도, 그리고 쇼생크 안에서 간수들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며 안락한 수감생활에 안주할 수 있었던 타협의 순간도 모두 떨쳐버리고 자유로의 희망, 이 한 가지만으로 결국 '쇼생크탈출'을 이뤄낸 그의 해피엔딩은 어려운 상황, 고민 속에서도 한 가닥 막연한 기대와 희망섞인 여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르기를 희망한다.'

4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늙은이가 된 채 세상에 나온 레드가 새 삶이라는 희망찬 긴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이 주인공들의 주옥같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였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한 쇼생크 밖의 새로운 삶, 막연한 자유, 미래에 대해 저 한 마디면 족하다

  • skyplot* 2008.06.25 17:05 신고 # modify/delete reply

    쇼생크 탈출..
    수십번씩 보고도
    다시 보고싶다고 생각하는 영화들 중 하나이지요^^

아침부터 인터넷이 뜨거웠다. 모두들 최대 인파가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한 토요일 밤이 막 지난 때였다. 역시나 인터넷은 전날 밤의 뜨거웠던 집회 열기로 달구어져 있었다. 촛불집회 등으로 여론이 거세지자 현 정권도 다방면으로 국정쇄신책을 검토중이라는 속보도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현 정부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국정쇄신을 추진시킬지는 아직 의심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은 들끓는 여론이 촛불집회를 통해 가시적으로 폭발한 덕분인지 정권이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버리고 한 발 물러선다는 것은 어쨋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들은 여전하다. 더 이상 집회가 아니라 시위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제 새벽에는 시위대가 청와대 진입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삼청동에서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간의 충돌이 큰 이슈가 되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들은 버스로 길을 막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과정에서 많은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인터넷에는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시위대의 사진들과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개진되어 있었다. 사진 속 광경은 매우 처참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고, 동영상에서는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는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분했다. 아무런 힘 없는 학생들이 무기력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하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광경들을 본 누구라도 왠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물론 무자비한 공권력에 짓밟힌 시위대의 처참함은 정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집회가 시위가 되고, 이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는 것은 분명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왜 촛불집회가 찬사를 받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촛불집회는 해외로부터도 호응을 얻을 만큼 평화적인 집회다. 촛불문화제라 불릴 만큼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분위기를 즐기고 이어나가는 성격이 강하고, 갖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마음놓고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시민들의 축제의 장인 촛불집회가 자꾸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촛불집회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흐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 대해 누구보다도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또 촛불집회 자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증명하는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촛불집회를 강경 진압하고 해산하려 하는 경찰의 태도에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그것도 한참을 넘어선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되면 인정하긴 싫지만, 평화스러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변질시키려는 불분명한 세력이 있다는 정부와 여당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청와대로 진입하려다 경찰에 의해 강압적인 진압을 당한 시위대들은 정권이 시대를 역행해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려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속 피를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이 말이 그럴 듯 해보인다. 하지만 정작 시대를 역행해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청와대에 진입하고자 했던 그 시위대가 아닌가 싶다. 이승만 정권에 저항해 경무대 앞까지 들이닥쳐 이승만을 하야시켰던 50여 년 전과는 다르다. 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그 당시는 민주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너무나도 잘못된 정권이었고 지금은 그 후 몇 50여 년에 걸쳐 시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화를 실현시킨 민주주의 정국이다. 청와대에 진입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급진적인 혁명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인가. 순수하게 그들 말대로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겠다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물리력을 이용해 무작정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법과 질서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일이다.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또래가 힘들게 정착시켜온 민주주의의 법과 질서를 말이다.

청와대 앞에서 자행되었던 경찰의 강경 대응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었다. 어느 나라의 경찰이 현 정권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을 시위대가 저항 없이 진입하도록 놔두겠는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경찰은 경찰 나름데로 그들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라지만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의 최소한의 시스템과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평화적이지만 규모있고 열정적인 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의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수정하고 좀더 여론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고, 국회는 시민들을 대변하여 그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정부를 경계한다.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가 갖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절대 급진적이고 과격한 변화와 혼돈은 필요치 않다. 현재 국가의 시스템에서 권력은 절대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발생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과 법, 질서 등을 무시하고 현재의 정국을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들, 아이를 목에 태운 아저씨들, 부모형제가 걱정되어 나온 중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기존의 시위와 다르게 이번 촛불집회가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 그리고 그들끼리 즐기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인터넷상에서의 활발한 참여들은 더 이상 최루탄과 돌멩이로 대변되는 저항과는 색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누가 아닌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긍정적인 참여의 형태다. 도대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분명 그들은 촛불집회에 의사를 표현하려 온 순수한 시민들을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공권력과의 충돌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더욱 급진적이고 과격한 시위로의 양상을 꾀할 것이 분명하다.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감정적인 대응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응집되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또 그래야만 지금의 정권과 사람들에게 더욱더 설득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이미 촛불시위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 언론들은(물론 의도적으로 관심에서 배제시키는 보수 언론들도 존재하지만) 앞다투어 촛불집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단순히 집회의 양상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집회의 특징과 배경,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 등을 원론적인 수준에서부터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부도 바짝 긴장해있다. 미군 여중생 장갑차 사건, 탄핵 정국 등 굵직굵직한 사건 등이 있었지만 이미 이번 촛불집회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 또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부 운동권의 과격한 행동과 시민들에 대한 선동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촛불집회는 정권과 여당이 계속 지적하고 있는 불순세력데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좀더 효과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집회로부터 배제시키지 못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은 어제의 청와대 앞에서와 같이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내몰릴 것이며 정부와 시민의 대립은 더욱더 감정적인 갈등의 양상으로 치다을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축제의 장과 다름없다. 누구한테든 자랑스럽게 찬사받아야 마땅하다.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 월드컵 당시의 길거리 응원 등을 보며 이미 우리의 역동적인 시민들의 참여 의식을 실감해 왔던 외국 언론들은 이번에는 촛불집회로 높은 시민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또 한번 놀라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모습은 완벽했다. 이제 이 집회를 어떻게 끌고가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키느냐 역시 시민들에게 달렸다. 보여주어야 한다. 이 시대의 시민들이 얼마나 성숙하고 민주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나오는 그 힘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