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지겹도록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어제, 문과대 체육대회 축구 준결승전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전날 밤잠을 설쳐가며 설레여 하고 기대했을 경기였지만, 몇 번의 허무했던 경기 취소와 찌뿌둥하기만 한 날씨로 사실 축구 대회에 대한 열정 따위는 식을대로 식어있었다. 수중전. 보는 사람들이야 시원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고 빗물이 고여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일이란 평소 축구를 할 때보다 두 세 배는 더 힘이 든다.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비는 자꾸 눈에 들어가서 시야를 방해하거나 눈가를 간지럽히고, 흠뻑 젖은 유니폼과 타이즈, 축구화는 물만 먹고 점점 무거워진다. 공도 물을 먹고 무거워지고 땅은 듬성듬성 물로 고여있어 뛰어다니기에도 불편해진다. 이렇게 힘든건 비단 우리 뿐만 아니었다. 상대팀이었던 사회복지학과 팀도 우리처럼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두 팀 모두 패스면 패스, 드리블이면 드리블 하나 같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한명 두명 상대와의 몸싸움에 넘어지면서 설상가상 감정까지 격해졌다. 이쯤되면 선수들끼리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기 쉽상이다. 어제 역시, 경기 도중 각 팀 선수들끼리 시비가 붙어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서로 말을 놓고 심지어 욕설까지 내뱉으며 대치하는 양 팀 선수들. 이들을 말리는 같은 편의 팀 동료들. 상대 팀에게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자며 어깨나 등을 토닥이는 선수들. 분을 못삭히며 팀 동료에게 붙잡혀 있는 선수들. 이들 사이에서는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승부라는 것이 정말 냉철하다. 마음의 여유 따위는 절대 없다. 평소 같으면 넘어진 상대팀 선수에게 괜찮냐고 다친 곳이 없냐고 물으며 서로 웃음으로 넘겨버릴테지만 냉혹한 승부에서는 상대팀 선수에 대한 배려 따위는 발 붙일 곳이 없다. 그저 힐끗 쳐다보고는 쏜살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수 밖에. 물론 이에 대한 재책감을 갖을 이유도 없다. 단지 내가 넘어졌을 때 상대팀 선수도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할거라는 이유로. 우리 팀이 골을 넣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우리는 모두 열광하고 서로 얼싸안는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이 하늘로 치켜 올려지고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함성이 내뱉어진다. 불과 몇 초 전의 찌뿌리고 힘겨운 표정은 어디로 간채 모두들 서로서로 웃는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바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선수들이 하나 둘 고개를 떨군다. 때로는 좀 전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죄책감으로, 때로는 서로에 대한 말 못할 원망감으로, 정말이지 '절망'이란 단어가 이 때 만큼 뼈저리게 와닿는 때가 없을 정도로 온몸이 푹 꺼진다.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서로 줄을 서서 마주보고 악수를 나눌 때, 방금 전까지의 치열했던 순간은 사라지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서로를 격려한다. 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웃음을 지어주며 악수를 해주던 사회복지학과 선수들이 고맙게 까지 느껴졌다. 물론 이 고마움 또한 승자의 여유겠지만. 어느 한 쪽은 승리라는 기쁨에 도취되어 웃음과 환호가 만발하는 반면, 그 한 쪽 만큼 다른 한 쪽은 패배라는 절망에 분을 삭이고 마음 속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낸다. 승자와 패자. 어찌보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처럼 슬프고 침울한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모두들 이 침울함을 되내이기보다는 어떻게든지 승자가 되려 치열하게 뛰고 죽을듯이 달린다. 하긴, 어떻게 보면 치열하게 달리는 길만이 이 침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겠지만 말이다. 또 한 고비를 힘겹게 넘어섰다. 지금까지 두 번의 경기를 어찌되었건 이기게 되었지만, 승자와 패자로 정확히 양분되는 50%의 게임에서, 다음 번에도 반드시 승자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고비'라는 표현이 어제의 승자가 된 기분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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