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지표를 살펴보면 한국 대졸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나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걸 알 수 있다. 고용되어 있다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종사 비율이 훨씬 높은 편이다. 여성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비율은 더욱 낮은 수준인 것이다. 여성을 가사와 육아에 묶어두었던 가부장적 인식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바뀌었다. 경제수준도 높아졌고, 가족 구성도 핵가족화되었다. 무엇보다 여성 고용안정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도 많이 마련된 상황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 여성의 경력단절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은 아마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자녀 교육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력단절은 일반적인 인식처럼 사회적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강요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 여성의 경력단절은 자발적인 측면이 강요되는 측면 못지 않게 강한 편이다.

국가적으로 경제활동인구의 육아부담을 덜어주는 각종 제도들이나 사회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수준, 어떤 사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비교적 수월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비교적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개인이 갖는 육아에 대한 부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유럽국가라고 해서 육아휴직을 5년, 10년 마음껏 펑펑 쓸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보통 출산 직후에는 어느 정도의 휴직을 하고, 보모나 유치원을 통해 경제활동과 육아를 병행하고, 자녀가 입학할 나이가 되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육아에 대한 부담은 점점 덜해지는 단계로 접어드는, 만국공통의 육아 루틴이 존재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반적으로는 어느 나라나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조금 다른 과정을 밟는다. 자녀가 입학을 하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녀에 대해 덜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신경을 쓴다. 단순하게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의 교육에 대해 사사건건 직접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 부모건 (제대로 된 부모라면)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

자녀가 또래에 비해 뒤처지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내도록 어렸을 적부터 온갖 사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교육을 어떤 시기에 받는 게 좋으며 입시를 위해 어떤 스펙들을 갖춰야 하는지 끊임없이 정보를 탐색한다. 심지어는 유아기에 휴직을 하는 게 아니고 입학 후에 휴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 때문이 아니라 부모 자신 때문이다. 부모가 같은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휴직을 하는 것이다. 또 자녀가 입시를 앞둔 시점에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의 입시경쟁에 같이 올인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리고 휴직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쪽은 역시 대부분 아빠가 아니라 엄마다. 아이 뒷바라지는 엄마가 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엄마보다 아빠의 수입이나 직업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조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의 고용상황이 더 나은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부모세대가 그 윗세대, 그러니까 부모의 부모세대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건,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당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묵묵히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그 돈을 아껴서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 아이러니한 건 그 부모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지금의 부모세대 또한 윗세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윗세대처럼 허리가 굽어지도록 시골에서 고생하며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엄마들은 깔끔하고 쾌적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다른 아이 엄마들과 함께 우아한 시간을 보낸다. 겉으로는 윗세대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모 자신의 삶은 없다. 생활의 대부분은 오로지 자녀 양육, 교육에 관한 관심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스카이캐슬의 엄마들처럼.

물론 이런 문제들을 오로지 개인의 차원으로만 환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 사교육 문제 등은 무엇보다 의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아무리 획기적인 방안들을 내놓아도 개인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문제다. 정답 같은 건 없겠지만, 이 사회의 부모라면 자녀교육에 대한 정도나 방향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페미니즘이 건드려야 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열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제활동으로부터 여성을 계속 밀어내는 건 전통적인 가부장적 인식 때문만이 아니다. 계속 말했듯 교육열 또한 그 못지않은 요인 중 하나다. 아직까지는 국내의 페미니즘 연구란 것이 사실 서구의 그것을 그대로 차용한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교육열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부분은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 교육열, 자녀교육 문제야말로 여성의 경력단절, 고용불평등에 있어 가장 먼저 고민해보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