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민생'을 따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일단 두 단어에서 오는 어감상의 차이는 크다. 정치는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고매한 권력 다툼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민생이란 말은 '일반 국민의 생계'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시급한 경제적 문제로 여겨진다. 때문에 정치와 민생을 서로 다른 별개의 문제로 구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가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 '정쟁보다는 민생에 집중하겠다.' 같은 레토릭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런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정치와 민생은 모두 잡을 수 없고 반드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고루한 정치투쟁은 '덜' 중요한 이차적인 문제가 되고 민생은 '당장' 중요한 시급한 사안이 된다.


하지만 정치와 민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초부터 정치란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협의적 의미에서의 정치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인간이 잉여 생산물을 가지면서부터다. 잉여 생산물을 분배하는 규칙, 그리고 그 규칙을 유지하는 힘이 수직적 권력 구조를 만들어냈고 인간들 사이에서 정치적 관계가 발생했다. 정치학 개론서에는 정치를 '사회적 제반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라 뜻한다. 이는 유한한 자원 속에서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고 분배해 나갈 것인지 연구하는 경제학과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정치학과 경제학은 따로 있지 않았다. 대신 정치경제학(economical politics)이 있었다.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것도 정치경제학(politischen Ökonomie)이지 경제학이 아니었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특히 정치와 민생(경제)을 분리시켜 보고자 했던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먼저 일제의 식민 논리가 그러했다. 식민통치로 인한 정치적 탄압은 불가피했지만 대신 한국의 근대화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굉장히 익숙한 논리다. 뒤이어 집권한 군부정권도 이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논리가 과거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이 시기는 경제의 탈정치화가 전격적인 슬로건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경제를 탈정치시키고자 했던 시도는 주로 집권세력의 정당성이 부족했거나 정치 철학이 부재할 때 나타났다.


요즘 회자 되고 있는 '민생법안'이란 말을 살펴봐도 민생이란 의미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민생법안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안'이므로 정치적 논의나 정쟁과는 상관없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할 당위를 지닌 법안을 의미하는 듯 하다. 하지만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새로운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법을 만든다는 것은 경제적 가치와 자원을 분배하는 규칙을 세우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보조금을 지원하는 신규 법안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법안 때문에 보조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의 세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법적 합의가 '변경'될 뿐이다.


더욱이 국가 자원의 분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는 속전속결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생법안'의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시장의 규제 완화가 바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활성화를 불러일으킬지 혹은 더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지금의 불황이 시장실패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공공성의 부재에 따른 것인지는 신중함을 갖고 계속해서 토론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중차한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서의 최소한의 논의도 없이 신속히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민생'이란 공허한 선전을 이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탈정치화를 옹호하는 이런 주장이 가진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어디서 경제가 끝나야 하고, 어디가 정치가 시작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경제의 영역에 속하는) 시장은 그 자체가 정치의 산물이다. 시장을 지탱하는 모든 소유권과 기타 권리들은 정치적인 기원을 가진다는 점에서 시장 역시 정치의 산물인 것이다. 경제적 권리는 정치적 기원을 갖는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많은 경제적 권리들이 과거에는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례들 중에는 아이디어를 소유할 권리, 그리고 어린 나이에는 일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 이런 권리들이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을 당시에는, 이것을 존중하는 것이 왜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무수한 '경제적'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경제를 탈정치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경제와 정치의 구분선이 옳다는 가정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