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이 가치를 인정받는 건 편찬 과정과 그 기록물의 관리가 엄정하게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국왕이라도 언제나 사관을 대동하고 다녀야 했고 실록은 물론 사초를 열람하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완성된 실록이 수정됐던 적은 있었다. 선조실록과 현종실록이 훗날의 붕당론에 따라 개보수되었는데, 흥미로운 건 실록을 수정했던 집권당이 본래의 실록 원본을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조와 현종은 실록이 원본과 수정본 두 종류로 되어있다. 일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실록 수정이라는 어마무시한 일마저 서슴치 않았던 이들이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기록을 병존시켰다는 건 아이러니한 사실. 꼬장꼬장했던 사대부들에게도 역사의 기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란 성리학적 도그마를 능가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