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집에 가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엘레베이터도 혼자 탔다. 괜시리 기분도 좋았던 밤이기도 했고 마침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엘레베이터 거울을 보며 춤을 췄다. 홀로 있을 때만 가능한 말도 안되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차 싶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얼마 전부터 엘레베이터 내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다.

사실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비실에 아무도 없었을 수도 있고 누가 있었다 해도 모니터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 안 보고 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스스로 굉장한 창피함을 느꼈다는 점, 그리고 그 후로는 홀로 엘레베이터에 있을 때에도 옆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얌전빼고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본인이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깟 카메라 몇 대를 왜 꺼려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감시카메라는 범법자를 색출하는 것처럼 특정한 순간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일상적 감시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푸코가 말하는 판옵티콘처럼, 감시카메라가 켜져 있든 꺼져 있든 그것이 날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본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검열을 하는 거다. 감시란 그런 거다.

무슨 일만 터지면 CCTV부터 찾는 게 이 사회다. 해외에선 감시사회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 분전하고 있는 마당에 이곳 사람들은 본인의 터전을 감시사회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안전, 보안, 치안 등 감시카메라를 설치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시적인 장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할 가치들이 너무 많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덜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그리고 당장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