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결혼을 한 직장 선배가 있다. 하루는 그 선배에게 배우자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했냐고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착해서 좋았다는 거였다. 이것저것 재보고 깐깐하게 구는 깍쟁이 같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답이라고 하기엔 뜻밖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들어보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나이에 착한 사람 찾기 힘들어. 보통 나이가 들면 자존심도 강해지고 자기만의 그런 것들이 굳어지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이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다고 먼저 말하고 표현했어. 나는 그게 좋아 보였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굳어진다. 말랑말랑하던 신생아의 머리뼈가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해지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자존심이나 자기만의 신념, 취향 같은 것들이 확고해진다. 물론 자기만의 주체성, 자아를 찾는 건 중요하다. 성인이 돼서도 신생아처럼 말랑말랑한 머리뼈를 갖고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머리뼈가 말랑하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외부의 충격에도 뇌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만큼 잃는 것도 크다. 어른일수록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머리가 굳어졌기 때문에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설령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고 해도 쉽게 흘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가 어릴수록 외부의 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흔히 어린 아이들을 스펀지에 비유하는 것처럼 어떠한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고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이런 무분별함 때문에 어른들을 걱정시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를 흡수할 수 있는 아이 같은 수용력을 유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차량유리에 붙이는 선팅 필름도 마찬가지다. 바깥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바깥이 잘 보이는 선팅 필름은 그 투명도의 차이가 클수록 비싸기 마련이다. 정말 아쉬운 건 ‘나’라는 차의 유리 또한 그런 비싼 선팅이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들어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바깥에서 보든 안에서 보든 유리 너머가 잘 보이지 않는 싸구려 선팅만 되어 있는 그런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