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사건을 두고 논란이 많은 건 안희정과 김지은 사이에 애매한 감정상태(이를테면 ‘존경심’ 혹은 ‘연애감정’일수도 있는)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이 애매한 감정상태를 현행법이 개입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으로 판단한 것이고, 판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권력형 성폭력의 일부로 본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애매한 감정상태라는 거다. 안희정은 이를 이용해서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취했고, 김지은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것에 이용당하여 성적 착취를 당했다.

때문에 안희정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로는 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성적 착취라 하더라도 사랑, 존경, 동성 같은 감정상태가 얽힌 성적 착취라는 건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성매매나 강제적인 위력이 가해지는 성폭행 같은 성적 착취와는 달리 국가나 법이 조심스럽게 개입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었던 맥락처럼 국가나 법의 개입이 오히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를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임이 있다면 도의적으로 감수하면 된다. 무턱대고 법적인 보호를 요구하는 건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는 굴레에 갇히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범죄에 있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만을 탓하면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다. 개인을 원망하고 개인에게 벌을 지운다고 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미래의 범죄자가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시스템을 바꾸고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물론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미투운동이 갖는 의의는 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가해자 개인들을 향해 폭로하고 고발하는 게 전부일 뿐, 왜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한 자성적인 고민이나 성찰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권력형 성범죄가 아직도 만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리 권력형 성범죄가 나쁜 짓이라고 아우성을 쳐도 그것만으로 성범죄를 줄일 수는 없다. 필요한 건 당장의 가벼운 성희롱부터라도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다. 물론 미시적인 해결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변화라는 건 절로 주워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비하면 전반적인 의식이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개인을 탓하는 건 제일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인식을 바꾸는 건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다. 따라서 집회에 등장하는 여성단체들의 구호는 “누구누구를 규탄한다!”보다는 “용기를 내자! 우리가 바꾸자!”가 되어야 한다. 혐오와 증오보다는 용기와 다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