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축구’라는 워딩으로 조롱을 즐기는 이들이 있지만, 축구는 원래 인맥으로 하는 거다. 감독의 스타일마다 잘 맞는 유형의 선수는 따로 있다.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고르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재량이다. 선수 선발을 두고 감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수가 인정하지 않는 선수를 선발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감독의 선수 선발 권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과거 히딩크가 김남일이나 이을용 같은 무명의 선수를 발탁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결과로 평가하면 된다. 다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어떤 감독 밑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감독과 선수의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독이 본인 입맛에 맞는 특정 선수만 기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다른 팀에 있는 선수를 본인의 팀으로 데려오기도 한다. 사리가 조르지뉴를, 무리뉴가 마티치를 각각 데려왔던 것처럼.

사실 축구에서만 이런 경향이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본인과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인 것 같다. 만약 어떤 상사가 자기 밑에 둘 부하직원을 뽑는다고 해보자. 물론 어떤 실측화된 데이터(실적, 평가성적, 경력 등)를 기준으로 선별할 수도 있지만, 이런 데이터들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향이나 취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격이나 태도, 의사소통 방식 등이 잘 맞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상사와 부하직원이더라도 삐거덕거리는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본인이 알고 있는 직원 중에서도 가장 본인과 잘 맞았던 직원을 뽑아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인맥이라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다가도 한편으로는 인맥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생활에서 기회라는 건 대부분 사람이 사람을 끌어주면서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에 인맥이란 것의 중요성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맥이란 건 객관적으로 실측할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의 영역이라는 게 문제다. 애초에 이 주관적인 영역은 ‘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관리라는 건 특정한 의도에 따라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실적이나 성적은 투자를 할수록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심지어는 외모 또한 화장을 하고 운동을 하고 말끔한 옷을 사서 입으면 나름대로 잘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인맥은 다르다. SNS로 댓글을 주고받고 이따금 안부 인사를 나눈다고 해서 인맥을 잘 관리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서 중요한 순간 나를 끌어주고 나를 추천해주고 내 상품을 사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평소의 모습이다. 평소의 내가 보이는 성품, 태도, 진정성 같은 것들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변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나’ 또한 항상 주변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순간순간의 지각적인 경험이 축적되어 ‘나’에 대한 주변의 판단을 이루고 그것을 토대로 인맥이 구축된다.

물론 인맥이라는 말이 그렇게 순진한 의미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낙하산 인사’처럼 불합리적인 성격도 내포하고 있는 게 이 ‘인맥’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맥이란 의미 자체를 사회적인 병폐 정도로 단순화시키는 건 큰 오류다. 인맥이란 건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인맥 축구’라는 워딩이 처음 등장한 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은 당시 유럽에서 뛰었으나 소속팀에서 큰 활약이 없던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한 것이 아니냐며 ‘인맥 축구’라는 워딩을 만들어냈고 조롱했다. 하지만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이 기대하던 바로 그 포지션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고 대표팀은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6년 후,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은 성남 감독 시절 본인이 데리고 있었던 황의조를 발탁했고, 일각에서는 또 ‘인맥 축구’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조롱의 대상이 된 황의조는 현재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후보였던 우즈벡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포함 5경기에서 8골을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