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괴물'을 본 후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설국열차'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많이 했다. 표현하자면 은유보다는 직유에 가까운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메타포와 나레이티브 모두 너무 쉬운 것 같았다. 너무 쉬운 건 좋은 게 아니다. 쉽다는 건 결론적으로 뻔하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거의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봉준호라는 이름값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봉준호는 박찬욱과는 달리 오롯이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작품을 만들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설국열차'나 '옥자'보다는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의 봉준호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박찬욱이나 김기덕 같은 이들은 복수, 인륜 같은 보편적 인간성을 주제로 다룰 때 큰 임펙트를 주지만, 봉준호의 능력은 한국의 사회상, 시대상을 디테일하면서도 맛깔나게 풀어가는 데 있다. 때문에 굳이 '설국열차'나 '옥자'처럼 다국화(?)를 시도하면서 본인의 재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인류 보편적 주제를 다뤄야만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로마'나 '그린북' 같은 영화들도 어떤 인류의 보편성을 담은 거창한 작품이 아니다. 일정시기의 멕시코와 미국만의 정서를 각각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배경과 분위기를 꼭 경험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60년대의 멕시코나 미국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어떤 배경의 어떤 이야기건 훌륭한 작품은 어느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다. 영화이건 문학이건 그게 바로 드라마(drama, 극)의 힘이기 때문이다.

다국적인 스탭들과 만국공통의 소재(예를 들면 SF 같은)를 다뤄야만 국제적인 호평을 얻는 건 아니다. 오롯이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해도 작품성만 확실하면 해외의 반응은 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아직 확실하게 모르지만 봉준호가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컴백한 느낌이랄까. 마침 칸에서 작품상도 받았고, (송강호는 원래가 봉의 페르소나이지만) 좋아하는 배우인 이선균과 봉준호의 조합도 기대가 된다. 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