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가들,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은 손꼽히는 경제대국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고 영향력도 크다. 1인당 GDP 같은 경제수준 또한 서구국가들 못지않다. 하지만 정치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군부독재정권이 집권했었고, 일본도 보수족벌이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장기집권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은 아직까지도 친중/반중으로 나뉘어 소모적인 다툼만 벌이고 있으며,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따금 영재가 튀어나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다. 다섯 살 정도의 꼬마지만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수학이나 물리학 문제들을 술술 풀어가면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영재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카이스트 같은 일류대학에 특별입학한다. 하지만 이런 영재들일수록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범한 수준의 생활마저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서 바로 대학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의 과정을 차례로 거치면서 특정시기에만 터득할 수 있는 단계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간의 부러움을 샀던 영재들이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마저 놓치고 불운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한 사회, 국가의 발전 속도가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단히 노력하면 일정한 경제적 성과를 얻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영재가 유치원에서 바로 대학교를 간 것처럼 한국도 최빈국에서 비교적 단시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경제수준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나 의식수준의 향상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하는 영재처럼, 사회라는 것도 물질적 풍요만큼 의식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북아 국가들의 정치수준이 경제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또한 그들이 (일본을 제외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던 만큼 정치, 문화, 시민의식이 성숙하는 데 있어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바가 크다.

또한 동북아가 서구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집단주의적 성향을 많이 보인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앞서 말한 속도의 문제와도 연관된 이야기다. 동북아, 서구를 비롯한 요즘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는 민주공화정이다. 그런데 민주공화정이라는 건 개인주의, 다원주의가 근간이 돼야 한다. 하지만 동북아 사회는 여전히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민주공화정이라는 형식은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이를 운용하는 내용물은 형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일종의 과도기적인 단계다. 그동안 어떤 집단 속에 소속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던 사람들이 사회적인 개인화, 원자화 현상이 두드러지자 일종의 아노미상태를 겪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동북아의 정치세력은 이런 혼돈기의 개인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노미 같은 공백상태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세뇌하고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다.

발전의 속도에 대한 문제든, 집단주의라는 성향상의 문제든, 중요한 건 개인의 차원에서부터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국가나 사회 아니면 집단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건 또 다른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어떤 정당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어떤 지역에서는 콘크리트 지지율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일본에서 아베가 아무리 헛짓거리를 해도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도 그렇고, 모두 개인의 의식적 고민이 부재해서 그런 것이다. 무엇보다 동북아의 선진 정치체제는 자구적으로 제도화했다기보다 서구의 개발품을 한순간 차용한 것에 가깝다. 따라서 이에 부합한 정치의식, 시민성을 다듬어가기엔 너무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개인이 비판적 의식을 갖추고 성숙한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정치적 수준으로까지 쌓아올려야 한다는 것, 그게 주어진 과제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