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세대. 지금의 2030세대를 규정하는 언어다. 태어났을 때부터 윤택하고 편안한 삶이 주어졌고, 큰 고난을 겪지도 않았다. 일제나 분단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던 것도 아니고 산업역군으로 쉼 없이 산업화에 이바지한 것도 아니고 IMF로 휘청거려본 적도 없는 세대. 아무런 구김 없이 매끈하게 빠진 삶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세대. 기성세대는 2030세대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래서 그들이 뭔가를 하려 하면 불안해 한다. 마치 멀리 보낸 아이들을 걱정스러워하는 부모들처럼.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상처라는 건 아물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고난은 극복할 수 있어도 그 아픔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사회는 트라우마로 점철된 상태다. 분단전쟁을 겪은 노인세대들은 아직도 빨갱이의 '빨'자만 들어도 부들부들 거린다. 이들에게 한국은 항상 위기의 상황이다. 언제라도 적화통일이 될지 모른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주축이었던 486세대도 마찬가지다.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이분법적 잣대로 갈라놓기 바쁘다. 그들이 갖고 있는 구세력으로부터의 피해의식과 선민의식 때문이다.

반면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지금의 세대는 이런 트라우마로부터 누구보다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 이들은 태어나서부터 30대가 될 때까지 큰 부침 없이 자란 세대다. 윗세대들이 겪었던 전쟁, 저항운동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아픔이나 상처를 겪은 바가 없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인해 과거에는 없었던 과잉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환경적 변화일 뿐이며 이것을 전쟁처럼 특정한 세대적 상처, 트라우마로 이야기하긴 힘들다.

어떤 사람이건 무난한 환경 속에서 무난하게 자란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부모님께 이성친구를 소개해줬을 때 부모님이 그의 집안환경부터 묻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무난한 환경에서 무난하게 자라왔을 수록 모가 난 성격 없이 무난한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대가 과거의 어떤 세대보다 더 자유롭고 건강하고 공정한 세대일 가능성이 큰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얽매이기 쉬운 과거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편견이 없다는 건 중요한 부분인데, 그만큼 특정한 담론을 거부할 수 있고 각자의 가치판단에 대해 고민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윗세대들이 갖지 못했던 생각의 유연성, 여유 같은 게 있다.

꼭 분단전쟁을 겪어야만 북한의 무서움을 알고 애국심을 갖는 건 아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모두가 충격에 빠졌을 때 오히려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지원자들을 냈던 건 2030세대다. 마찬가지로 일제를 직접 겪어야만 주권침해의 무서움을 아는 것도 아니다. 일본이 무역시비를 걸어오자 일본산 제품을 브랜드별로 정리해서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지금의 2030세대다. 기성세대가 과거사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2030세대는 그들의 역사관을 조용히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는 불매운동을 어느 수준까지 권장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열띤 내부 토론을 벌인다. 그들에게는 자기성찰을 가능케 하는 유연한 사고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트라우마는 대물림 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말 그대로 정신적 외상이다. 따라서 세대 간에 기억을 공유한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트라우마는 다르다. 트라우마를 겪은 세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트라우마는 사회에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몫이 된다. 그런 점에서 기성세대는 2030세대에 빚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여전히 2030세대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많이 해봤는데 말이야~’, ‘고생을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고난의 경험들, 그 이면의 트라우마들은 고스란히 2030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남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