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 관련 뉴스다. 아니, 절반이 아니라 체감상으로는 거의 대부분의 비중이 코로나에 관한 내용들이다. 코로나 이슈가 사회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잠식해버린 상황이다. 하루종일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만 떠들어대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와 관련된 이슈들이 과연 그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그 정도의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그만큼 심각해야 하고 위험성이 높아야 한다. 위험성이 높다는 건 결국 치사율이 높아야 한다는 건데, 공교롭게도 코로나의 치사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지금까지 코로나로 사망한 이들도 거의 전부가 기저질환을 갖고 있던 이들이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에 대한 기억이 각인된 탓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같은 유행성 바이러스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늘 존재해왔다. 단지 이번처럼 주목을 받거나 숫자로 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나온다고 해서 전국의 차량 통행을 통제하진 않는다. 사망자가 발생한 건 분명 가벼운 일이 아니지만, 전국의 차량 운행을 막는 것은 그것과 별개의 가치를 지닌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막기 위해, 아니 더 정확히는 확진자 발생을 막기 위해 전반적인 사회적 동력을 감속시키는 것은 별개의 가치를 지닌 일이다.

이런 고민의 부재는 참담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마스크 5부제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정책이 시행되고, 약국마다 무슨 맛집인냥 줄을 서서 마스크를 기다리고, 재난영화처럼 거리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까지는 웃지 못할 촌극,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더 심각해지는 건 해프닝이라고 할 수 없다. 전자가 가벼운 찰과상이라면 후자는 치명상에 가깝다.

코로나에 대한 과잉 대응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자영업자들만이 아니다.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어드는 건 전반적인 경기 침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기라는 건 분위기를 타기 마련인데, 사회가 코로나라는 악재에 매몰되어 있을수록 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이미 위기설이 돌고 있고 코스피 같은 각종 지표들도 경보를 울리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바이러스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보다 경기 침체로 자살을 택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온 건 언론의 탓이 크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마치 시한부 판정이라도 된 것마냥 그 위험성을 과대포장하여 불안감을 높이고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페이지 노출수에 따라 광고 액수가 정해지는 인터넷상에서, 관심의 정도는 결국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의 선정적 행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확대재생산시키는 누리꾼들도 한 몫을 했다.)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혜택을 얻고 있는 건 언론이다. 그리고 그 언론의 자극적인 돈벌이에 놀아나는 건 파리 날리는 식당의 주인들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