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은 정치가와 다르게 신념보다 계산을 앞세운다. 정치적인 가치 판단이 아니라 정치공학적인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는 현실적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된 선택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꾼에게는 이해타산이 전면적인 기준이 된다. 그들에겐 공천을 받고 표를 얻고 자리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지역의 후보자 중에는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꾼에 가까운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그들의 학력이나 경력의 면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대부분 경영학 또는 행정학 석사 정도의 학위와 지역이나 정당에서의 온갖 직함들을 갖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쌓은 경력인 것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경력에 주목하는 건 그것으로 그가 어떤 경험을 해온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력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꾼들의 경력은 순전히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경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가와 정치꾼의 옥석 가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역에는 정치가보다 정치꾼의 숫자가 많기도 하고, 정치가보다 정치꾼이 정당에 잘 보여 공천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은 소속 정당을 기준으로 표를 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후보자 개인적 자질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 풀뿌리 민주주의나 대표성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무관심이 야기하는 정치적 진공상태를 무혈로 잠식하는 건 항상 거대 정당들이다.

따라서 정치가와 정치꾼을 가려내는 건 지역정치가 아니라 중앙정치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유권자보다 정당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비례대표 후보는 정당이 외부의 인물을 영입하는 방식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처음부터 정치판에 발을 들이던 사람이 아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미 성과를 거두거나 공로를 인정받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로 정치계에 스카웃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적 자질에 대해 각 분야에서 이미 검증이 된 상태이고, 전문성도 갖고 있다. 또 정치공학적 셈법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치꾼적 기질보다는 정치가적 기질을 갖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비례대표제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모든 제도가 장단이 있듯이. 다만 정당보다 개인에 대한 정치적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런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뭔가 자리 잡히기 전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건 필요한 일이니까. 정치제도라는 건 결국 게임의 규칙이고, 그 규칙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