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이 박해수를 만난 순간부터 영화가 갈 길은 정해진다. 그 이후부터는 변명만 남는다. 왜 그 길로 가야만 하는지. 수리남이라는 배경과 기시감 어린 캐릭터들은 단지 그 길을 위해 소모될 뿐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왜 이런 이야기가 되는 건지 설명해주는 느낌.

윤종빈이 공작에서 선보인 서스펜스는 수리남에서도 자기복제된다. 공작에서의 언더커버가 황정민이었다면 수리남에서는 하정우가 그 역할을 맡는다. 절대권력자를 동요시켜야 하는 언더커버의 페이소스가 반복될 뿐.

물론 변명과 자기복제를 좇는 것만으로도 6시간은 금세 지나가버린다. 그만큼 재밌고 흡인력이 있기 때문이다(영화든 시리즈든 일단 재밌고 봐야 한다). 하지만 물 만난 고기, 아니 넷플릭스를 만난 윤종빈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 윤종빈처럼 젊은 천재형 감독이 벌써 자기복제를 하거나 쉬어가는 작품을 만든다는 건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