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철저하게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장르를 따지자면 멜로영화다. 전반부는 해준(박해일)의 사랑이, 후반부에는 서래(탕웨이)의 사랑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은 남과 여, 산과 바다, 만남과 상실, 관음과 노출의 대조 속에서 완벽한 형식미를 갖춘다. 먼저 등장했던 게 나중엔 어떤 대구법으로 돌아오는지 의미를 찾는 관객들의 유희 속에서 영화의 샷, 앵글, 구도는 하나하나 메타포로 기능한다.

안개는 해준의 테마다. 그래서 해준은 안약을 넣는다. 뛰어난 형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 대한 진실은 보지 못한다. 서래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자신에게 접근한 것도 보지 못하고, 서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한 것도 보지 못한다. 해준에게 서래는 안개 속의 여자다. 그리고 그 안개가 걷혔을 땐 이미 서래도 자신처럼 붕괴된, 아니 자신보다 더 철저하게 붕괴된 뒤였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은 스스로를 붕괴시키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처연하게 바닷가를 헤매는 해준을 보며 관객은 느낀다. 보기 좋고 예쁜 것만 아름다운 게 아니란 사실을.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결국 박찬욱의 영화였다는 것을. 2022년 한 해 봤던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