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부모세대가 아이를 갖지 않는 건 그들의 어머니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와 양육은 온전히 여성 개인의 몫이었던 시절, 여성은 가족을 위한 삶을 강요받았고 자식들은 그 수혜자이자 목격자로 엄마의 삶을 지켜봤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 여성에게도 주어지는 시대가 오자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딸들은 엄마에게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다. 엄마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지만 엄마를 닮고 싶어 하진 않는다. 엄마처럼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이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0점대 출산율을 보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저출산(저출생) 정책은 이런 인식을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이를 낳아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기대를 갖게 해줘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육아의 부담을 개인에게만 지우지 않는 거다. 아이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또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그만큼 보육시설이나 비용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당 몇 십 만원 더 쥐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 사회는 출산율에 명운을 걸었구나 싶을 정도로 지원이 있어야 하는 거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꼽기도 한다. 출산이나 육아를 등한시하는 페미니즘이 만연한 탓에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현실을 정반대로 진단하는 것이다. 저출산은 여전히 여성이 육아로부터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여성이 육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출산율은 반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치 이제야 본연의 삶을 찾으려는 여성들에게 조선시대로 돌아가란 얘기다. 또 이들의 논리로는 유럽의 출산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페미니즘이 과해서 저출산이 온 게 아니라 페미니즘이 약해서 저출산이 온 것이다. 아직도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를 낳아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굳이 출산이란 본능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세계 유일의 0점대 출산율은 이 사회의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다. 지금 상태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여성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던 과거 사회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여성들의 국가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확대하거나. 결국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딸들이 엄마의 삶을 거부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