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은 10월의 한파특보에서 비롯되었다.”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처음 몇 문단만으로도 괜찮은 작품이란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만 봐도 가려낼 수 있는 것처럼 소설 역시 첫 문장에서 거의 모든 게 결정되는 법이다.

이후에는 현실적인 일상 묘사가 자근자근 전개된다. 딱히 흥미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하이퍼리얼리즘이었지만, 작가의 재치 있는 문장만으로도 읽는 즐거움은 충분했다. 특히 육아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사실적이었다. 낯선 세상에 대한 간접경험도 재밌지만, 익숙한 것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재발견하는 간접경험도 또 다른 재미다.

작품은 내내 전지적 시점과 1인칭을 넘나든다.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지만 꽤 자연스러운 변주라 거슬리진 않았다. 반전의 효과나 서사적 쾌감을 고려하면 왜 이런 형식을 택했는지 수긍이 갔다. ‘나’의 시점만을 택했다면 일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불가능했을 거다. 전세 사기가 무서운 건 실재하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오컬트처럼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라서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이야기를 정말 있을 법한 누군가의 현실로 보이게끔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사실 작품 속 ‘나’의 행각을 전형적인 전세 사기로 볼 수는 없다. 전세 사기에 걸려들게 만드는 건 대게 금전적인 요인들이다. 최대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세입자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금전적 요인을 감정적 요인으로 치환하여 새로운 형태의 사기를 친다. 돈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더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불쾌한 감정을 거둘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이 작품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면의 차가운 인간심리를 반전이란 형식으로 증폭시킨다. 시의성, 내용, 형식 이 삼박자가 고루 잘 맞았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재밌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