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원을 누빈다. 아빠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가고 싶은 곳으로 그냥 내달린다. 경험으로 아는 거다. 아빠가 자기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가든 아빠가 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변수가 생길 땐 달려가면 된다. 위험한 곳으로 가려 하면 달려가서 방향을 틀어주고, 걷다가 넘어지면 달려가서 별일 아니라는 듯 흙을 툭툭 털어주고, 아빠를 찾는 듯 하면 뒤에 따라가 인기척을 내면서.

아이는 얼마간의 해방을 누리고 나는 그런 아이를 눈으로 좇고, 그렇게 산책하는 시간이 좋았다. 항상 이거 하지 말아라 저거 하지 말아라 옭아매던 아이에게 잠깐의 자유를 준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고, 뭔가에 몰두하는 아이의 모습이나 불안정하게 걷는 아이의 걸음걸이는 늘 봐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이내 애틋함으로 번져간다. 이 시간도 결국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이는 금방 자랄 것이고 언제까지나 아이를 내 시야에 둘 수만은 없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아빠 없이도 부딪히고 넘어져가며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그리고 그 누구나라는 건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뜻한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 범주에 내 아이를 포함시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불안정하게 걷고 넘어질 듯 뛰는 아이를 홀로 세상에 내놓는 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커간다.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자주 산책을 하는 것밖에 없다. 매미 소리가 잦아들고 아이가 ‘고고 다이노’를 그만 좋아할 것 같다던 가을이 오면 부지런히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