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은 소설가의 재능은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라 관찰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경험만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르는 걸 쓸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작가들은 취재를 한다.
비유하자면 50개의 단막극보다 50개의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다.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맥락도 제각각인 삶들을 밀도 있게 묘사했다. 자칫하면 산만해지기 쉬운 50개의 에피소드를 가볍지 않게 응집시켜주는 건 그 발품의 무게다.
결론에서는 이 소설이 취한 형식의 당위를 보여준다. 다소 직접적이긴 해도 상관없다. 타란티노가 맨슨 패밀리 사건을 재해석한 것처럼 그것이 메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뻔해 보이는 의도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스는 숫자를 말한다. 사망자 몇 명, 실종자 몇 명. 이 소설은 그 한 명 한 명마다 지닌 사연과 맥락들을 환기시켜준다.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이 어떤 걸 앗아갔는지, 그리고 소설이란 방식이 그 상실을 어떻게 위로하고 기억할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