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조커에게 졌다. 왜? 태생적으로 질서가 무질서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배트맨이든 경찰이든, 질서라는 건 정해진 룰이라는 게 있고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질서는 말 그대로 아무런 패턴이 없다.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질서는 무질서에게 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질서란 이성이고 무질서란 반이성(감성, 정념 등 이성에 반하는 개념들)이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질서와 이성을 의미한다면 반대로 조커는 무질서와 반이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배트맨이 칸트를 상징한다면 조커는 니체를 닮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등장은 니체를 인용(엄밀히 말하면 패러디)한 대사로 시작된다. "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ger(원문은 stronger)."

배트맨 트릴로지의 주제가 '이성'이었다면 인터스텔라의 주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반이성'이다. 이성이 죽어있음 혹은 차가운 우주를 의미한다면 반이성은 살아있음 혹은 생명의 온기를 의미한다. 서구 이성사를 해체하고자 했던 니체가 '생生'을 긍정한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 죽어있음과 살아있음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강렬한 영상미(옥수수 밭을 지프차로 질러가버리는)와 함께 등장했던 드론 추격씬에서부터 볼 수 있다. 아무런 의미, 목적 없이 죽은 물체로 하늘을 떠돌던 드론은 끝내 살아있는 인간, 쿠퍼에게 잡히고(굴복하고) 만다. 죽어있는 것들은 절대 살아있는 것을 능가할 수 없으니까(배트맨이 조커를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나사로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생의 의지를 가진 이들보다는 이성에 충실했던(가족이 없기 때문에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반대로 쿠퍼가 임무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생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삶에 대한 의지라는 건 번식력을 의미하는데 그 의지는 때로는 후손의 생을 위해 자기의 생을 희생할 만큼(영화적 표현을 빌리자면 자식을 위해 유령 같은 존재를 자처할 만큼) 강력하다. 사랑의 힘이 모든 차원을 넘나들 만큼 강하고 숭고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작품을 사랑에 대한 영화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건 사랑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살아있음에서부터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완벽한 무엇이 될 수 없다. 사랑, 감정, 의지 등은 때로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드러내곤 하니까.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무질서의 광기를 보여주었듯이 인터스텔라의 만 박사는 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준다. 살고 싶은 의지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킨 것이다. 결국 동료들을 죽이거나 위험에 빠뜨리고 제 자신도 자멸하는 인류사에 남을 개꼬장을 부리고 만다. (이런 관점이라면 왜 만 박사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지 대충 수긍이 가는 것 같기도. 만약 주제가 사랑이었다면 만 박사는 온전히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는 사랑에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사람이이었다. 누구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쿠퍼와 있을 때 만 박사가 중얼거리듯 했던 말은 로봇보다 인간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즉, 만 박사는 기계와 이성, 데이터를 괄시하는 반면 생명과 반이성을 과신했던 자였던 셈.)

여기서 다시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했던 대사가 등장한다.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다. "You complete me." 조커는 알고 있었다. 배트맨이 쉽게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성과 반이성,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사랑의 위대함을 다룬 영화라고 말하지만, 작품에서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 초반부 쿠퍼가 머피의 담임 선생님에게 토로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옥수수만큼이나 아니라 기계(MRI)에도 신경썼다면 쿠퍼의 아내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또 쿠퍼가 블랙홀 내의 다차원 공간에서 머피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로봇 타스의 도움 없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쿠퍼는 타스의 도움을 받으며 그 사랑을 완성시켰고, 타스는 쿠퍼에 의해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쿠퍼가 드론의 부품을 꺼내면서 이 기계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는 말미에 쿠퍼와 타스를 재회시켜준다(집 한 쪽에 처량하게 누워있는 로봇 덩어리가 어찌나 짠하던지). 결론적으로 인터스텔라는 단순하게 사랑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로 대변되는 삶과 죽음, 반이성(감성)과 이성, 의지와 무의지, 불확실성과 확실성을 다룬 영화다.

덧붙이자면, 영화에 야구가 등장한 건 우연한 설정이 아닐 거다. 뉴욕 양키스를 이용한 비유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야구에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관철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야구는 아웃과 세이프처럼 삶과 죽음이 있는 스포츠다. 또 기록의 스포츠라 불릴 만큼 수없이 누적된 데이터가 있지만 늘 그 데이터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이성과 직감 사이의 긴장 속에 있는 스포츠다. 또 타자가 수 개의 루(영화에서의 행성)를 거쳐 홈(지구)으로 돌아오는 어드벤쳐의 게임이기도 하다.

국내 2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588조에 이르렀다. 5년 동안 무려 80%가 증가한 수치다. 체감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음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자산을 불리고 있었다. 그동안 환율, 법인세, 노조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윗사람들은 기업들 걱정에 노심초사 했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 담론은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비정규직 확대, 고환율, 감세, 규제완화로 대기업에 몰빵해줬지만 정작 대기업은 번 돈을 현금성 자산으로 쌓아두기만 할 뿐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참고로 학교에서 배웠던 경제학의 관계는 뒤집어진지 오래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계 저축과 기업 투자의 관계는 이제 역으로 성립된다. 기업의 현금자산을 가계가 빌리는 꼴이 되어버린 셈.

낙수효과라는 건 없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장기 불황이 심화될 수록 기업들은 실물투자보다는 유보금을 늘리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바로 옆에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생산 부문의 잉여가치가 재투자되기보다 투기자본으로 금융화되는 건 이제 낯설지도 않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기업의 생리인 걸. 어쨌든 확실한 건 이거다. 대기업 밀어주기로는 절대 일자리 창출, 설비투자를 촉진시킬 수도 없고 사회의 전반적인 소득 증진, 경기부양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만 지속될 뿐.

국회의원 급여와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의 시민의식이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론 정치인들에 대한 안좋은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세금 몇 푼 아깝다고 의원들의 처우 수준을 낮추자는 건 전형적인 속물들의 논리다.

나는 국회의원 의석이 대폭 늘어나길 바란다. 의원 수가 많아져야 의원 개인의 영향력이 적어질 수 있으며 의원 한 명당 감사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 국회의원의 권력이 줄어들고 더욱 집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해지는 거다. 국회의원의 급여와 연금도 후하게 보장되길 바란다. 그들이 이뻐 보여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청렴도가 유지될 수 있어서다. 만약 연금이 없다면 적지 않은 선거비용 들여 당선된 의원들은 낙선 혹은 은퇴 후 신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이란 공적인 권력을 재산 축적이라든지 인사 알선 같은 사적인 용도로 남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어떤 법과 제도가 들어서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의원들에게 검은 돈이 흘러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의원들의 급여 수준이 낮아지고 연금이 폐지된다면 이런 유혹으로부터 더 취약해질 뿐이다. 당장의 세금 몇 푼 아끼려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할 수도 있다.

직업공무원제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사회가 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마저 시기할 정도로 양극화된 것인지, 공무원연금마저 과한 수준이라고 아우성이다. 호황기엔 철저히 내려다보다가 불황기엔 되레 질투하는 거다. 역시 전형적인 속물 근성이라고나 할까. 직업공무원제라는 게 왜 있고 공무원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는 듯 하다. 공무원의 연금과 신분보장이 그렇게 배아프다면 차라리 모든 공행정을 아웃소싱으로 쪼개어 일반 기업들에게 맡으라고 하지, 굳이 직업공무원이란 제도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나.

공무원은 민간 종사자들과 다르다. 법적으로 겸직 자체가 불가능하다. 업무 외엔 사익 추구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없다. 성과급이나 인센티브가 없는 건 당연. 급여도 짠 편이다. 경기 불황엔 가장 먼저 임금이 동결되지만 경기가 호황이라고 해서 혹은 정부가 재정흑자라 해서 보너스를 받는 일 따위는 없다. 정치적인 활동은 꿈도 못꾸고 가입 불가능한 단체들도 의외로 많다. 다른 직업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건 두 말할 나위없다. 그럼에도 양질의 인력들의 원활하게 수급되는 이유. 혹은 정부가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공무원들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이유. 공무원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중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모두 신분 보장과 연금제도라는 특성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인구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접근해야지 민간 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수리적인 비교에서부터 시작되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나 다른 사적 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같은 '연금'이란 용어를 쓰고 있을 뿐, 이것이 시행되게 된 역사나 배경, 취지,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그런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야 된다거나 통합해야 한다는 건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그것이 사적부문의 공공부문으로의 침투를 용이하게 만든다는 걸 정녕 모르고 하는 얘긴가, 이 근시안적인 속물들이여.

우리나라가 IT강국이란 말은 한심한 소리일 뿐. 그놈의 엑티브엑스좀 없애달라는 얘기가 몇 년 째인데 전혀 진전이 없다. 금융권 사이트를 들어가면 뭘 하기도 전에 덕지덕지 보안프로그램부터 설치해야 한다. 내 소중하고 깨끗한 드라이브에 악명 높은 엔프로텍트나 소프트캠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건 정말 불쾌한 일이다. 길 가다 만난 똥개가 내 바지를 핥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보안프로그램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사이트 이용 자체를 못하기에. 물론 다 설치한다고 사이트 이용이 원활하리란 보장은 없다. 워낙 충돌과 오류가 많은 게 이 나라의 금융결제 사이트들이니까(보안툴 업체들은 아예 홈페이지 대문에 오류 관련 안내를 제공하고 있는 지경).

보안프로그램들을 징그러워 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대부분의 툴들이 한 번 설치하고 나면 결제페이지나 은행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아도 프로세스에 상주하는 놈들이 많다. 또 잡다한 레지스트리도 구동을 무겁게 만든다. 물론 성능이 아주 짱짱한 pc로서는 봐줄 수 있는 문제일 터. 하지만 그렇지 않은 pc도 많다. 이런 보안툴 때문에 pc 성능 자체가 둔해질 수 있는 거다. 더 심각한 건 이런 보안툴들이 설치되고 삭제되고 업데이트 되고를 반복하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혹은 다른 프로그램들과 충돌을 일으킨다는 거다. 난리가 따로 없다. 특정 프로세스가 실행되어있는 상태에서는 구동이 안 될 때도 많고 심지어는 백신프로그램에 감지되는 일도 다반사. 나중에는 이게 보안 프로그램인지 악성 프로그램인지 헷갈릴 정도. 심지어는 이런 툴은 한 번 설치되면 삭제를 시도해도 제대로 삭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업체에서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따로 제공하고 있을 정도.

드라이브라는 건 사적인 공간이다. 내가 내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나만의 저장장치다. 거기에 내가 원치 않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라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다. 나만의 공간을 쾌적하게 쓰고 싶은 것. 그건 당연한 권리 아닐까. 그럼에도 아주 당당하게 (가뜩이나 문제가 많은) 연동 프로그램 설치를 강제하는 금융권, 관공서의 태도를 보면 참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불만 많은 웹환경엔 무신경으로 일관하면서 IT 강국이란 말은 잘하는 늙은 관료들(방통위든 금융위든 금감원이든).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IT 강국이란 게 대체 뭔지.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그냥 광대일 뿐이다(천대 받았던 어휘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그냥 '엔터테이너' 정도로 해두자). 광대는 '한 판 놀아보세' 하고 신명나게 놀면 그만이다. 그런 이들에게 무결한 도덕성, 모범적인 준법정신 따위를 기대한다는 건 모순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연예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연예인을 공인이라도 되는 양 숭배하고 우상화시키는 대중들에게 있다고 봐야지.

광대들이 엽전을 벌기 위해 판을 벌였던 것처럼 연예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고 노래를 부른다. 대중이 소비하는 콘텐츠를 만들 뿐.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바라는 것도 결국 높은 몸값을 얻기 위함이다. 결국 목적은 돈. 그나마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본인의 직업적인 성공 정도(그것 또한 결국 몸값이긴 하지만)랄까. 마찬가지로 한류스타들이 해외로 나가는 건 국위선양을 위해서가 아니다.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나가는 것일 뿐. 흔히 듣는 말처럼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게 아니란 얘기다. 연예인과 대중은 자본주의적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연예인을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 대단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대중들 자신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까지도 기자회견이랍시고 결혼 소식을 알리는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지는 건 그 연예인 탓도 기자들 탓도 아니다. 그런 기사를 읽는 대중들 탓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관심을 갖고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고, 지나친 관심 혹은 지나친 비난까지도 아끼지 않는다. 대부분 가십의 수준에서 소모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관심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인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정말 연예인이란 이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을 만큼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