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너는 삼진 먹어라. 내가 날려불랑게."
과거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타이거즈 선수들이 먼저 타석에 서는 동료 선수에게 잘하던 말이였단다.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박지성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경기를 해결하려는 의욕. 자신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에게는 이런 의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밝혔듯 정신적인 자신감이 떨어져서인지 최근 그의 플레이는 소극적인 모습뿐이다. 과거에 그가 소속팀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돌파능력, 빠른 스피드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박지성에게 해결사적인 면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속팀에서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대표팀에서는 팀의 에이스로서 과감하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즐긴다. 본래 PSV 시절이나 맨유 입단 초기 시절에는 많은 활동량, 공간 창출 같은 그만의 장점 외에도 과감한 돌파와 날카로운 슛 같은 모험적인 플레이 또한 많이 보여주던 그였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소속팀에서는 이런 그의 에이스적인 기질을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 물론 소속팀의 전술적 필요에 의해서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그 역할로부터 박지성 스스로가 너무 얽매여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충분히 과감한 돌파나 모험적인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동료에게 공을 넘긴다거나 스스로 공격 템포를 늦추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소속팀에서도 공격수로서 더 모험적이고 과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욕이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때로는 자신이 경기를 해결해야겠다는 자신감 또한 가져야 한다. 공격수에게 욕심과 배짱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더욱이 현재 맨유는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공격의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진 상황이다. 스스로가 에이스적인 기질을 갖고 적극적으로 수비를 흔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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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3 23:55

198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지만,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즉, 법제적으로는 권리를 인정받았지만 사회적으로는 오랜 관습 속에서 계속 차별받고 있던 것이었다. 특히나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각주:1]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구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이 일어났다.



1923년 4월 백정 출신들은 경남 진주에서 이학찬, 강상호, 신현수 등을 간부로 하여 조선형평사를 창립시켰다. 형평사의 창립 목적은 계급의 타파, 공평한 사회의 건설, 백정에 대한 모욕적 칭호의 폐지, 교육의 균등과 지위의 향상 등이었고, 백정이라는 기록을 호적에서 삭제할 것을 조선총독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전국에 지사 11개소, 분사 67개소, 회원 수가 4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 운동 조직으로 성장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고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여, 교육을 장려하고 우리도 참다운 인간으로 되고자 함은 본사의 주지이다. 지금까지 조선의 백정은 어떠한 지위와 압박을 받아 왔던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종일 통곡하고도 피눈물을 금할 수 없다. 여기에 지위와 조건 문제 등을 제기할 여유도 없이 목전의 압박에 절규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설정함은 당연한 것이다. 천하고 가난하고 연약해서 비천하게 굴종하였던 자는 누구였는가? 아아, 그것은 우리 백정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비극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소위 지식 계층에 의한 압박과 멸시만이 있지 않았던가? 직업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면 금수의 생명을 빼앗는 자는 우리들만이 아니다."

- 형평사 취지문(1923)


하지만 아직 신분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대중은 여전히 백정 출신을 차별하고 냉대했으며, 형평 운동에 반대하는 반형평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형평 운동의 결과, 1930년대 초 관청의 호적이나 학적부에 기록되었던 백정 신분 표시가 공식적으로 철폐되었으며, 백정 자녀들의 학교 입학도 허용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형평 운동을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있는 운동으로 간주하고 항상 감시하고 탄압하였다. 이후 조선 형평사는 1936년 대동사로 이름을 개칭하였고, 사회 개혁 운동에서 회원들의 순수한 경제적 이익 향상 운동으로 그 성격이 변하였다.


  1. 각주1. 조선시대의 도살업, 유기 제조업, 육류 판매업 등을 주로 하며 생활하던 천민층인 백정의 다른 명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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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 16:52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참교육 어머니'가 어떤 어머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신 어머님들이라는 건 짐작이 가는군요. 
아직도 AIDS가 성병인 줄 아시고 계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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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30 00:47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쟁 영화는 관객들의 로망이다. 실제 현실세계에서 전쟁은 가장 끔찍하고 비참한 인간 행위로 일컬여지지만 영화의 스크린 안에서 전쟁은 최고의 오락물이 되기도 한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본능을 긁어주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지고, 기관총에서 연발된 총알들은 파편을 튀기고. 인간 안에 깊숙히 내재되어있는 파괴적 욕구와 폭력성, 인간에게 있어 전쟁 영화야말로 이 본능적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시원한 돌파구가 되어준다.

기존의 전쟁 영화들이 그랬다. 근육으로 다져진 상반신을 내보이며 일당백의 기개로 수백의 베트콩들을 상대하는 '람보'는 이런 의미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전형적인 전쟁 영화다. 적과 아의 명확한 구분 속에서 이런 영화들은 아군의 피는 적군의 피로 갚아주는 원초적인 스토리 라인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확실한 볼거리와 액션신으로 승부를 건다.


진주만, 현실감 있게 그려진 공중전 CG 외에는 기존의 전쟁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블랙호크다운, 기존의 전쟁영화에 감각적인 미장센이 더해졌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이나 진주만(2001), 블랙호크다운(2001) 같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그래픽이란 영화계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전쟁영화에 입혀졌을 뿐, 재현되는 전투의 스케일이나 사실감을 제외한 전반적인 전쟁의 스토리 라인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이 큰 스케일의 전투신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진주만은 그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늘로 향했다. 그동안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 없이는 재현해내기 어려웠던 공중전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냈다. 블랙호크다운은 사실감 있는 컴퓨터 그래픽에 감각적인 스타일을 더했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재현되는 현대의 시가전은 기존의 전쟁영화에 '세련됨'를 입혀주었다.


하지만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전쟁 영화는 그 내용과 성격이 180% 달라졌다. 2001년 본토 심장에 행해진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인들은 큰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테러라는 실체 없는 적과의 전쟁은 미국인들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2차대전 때는 독일과 일본이, 냉전시대 때는 소련이 그 역할을 착실하게 맡아주던 '적'이라는 존재가 모호하고 애매해진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이라크 전쟁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전쟁은 하고 있지만 대체 왜 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대체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지금까지 미국(혹은 서구 국가들)은 전쟁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응당 해야 할 것이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인들은 전쟁 자체에 대해 고민을 갖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끔찍한 전쟁을 수행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고, 전쟁의 경험으로 황폐해져가고 있는 청년 병사들의 상태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공격을 받고 있는 현지인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전쟁 영화는 달라졌다. 전쟁이란 것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시작한 미국인들의 혼란은 영화의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졌다. 전처럼 단순한 흥미 위주의 볼거리 영화는 관객과 전문가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대신 전쟁이라는 한정된 시공간 내에서 점차 한계에 부딪혀가는 인간의 나약함, 전쟁의 공포와 잔인함에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젊은 군인들, 끊임없이 전쟁을 필요로 하는 미국 군수산업계의 압력에 대한 자각 등이 전쟁 영화의 내용으로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


더 퍼시픽, 전쟁 그 자체가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의 후속편으로 제작된 드라마 더 퍼시픽(2010)에서는 전쟁의 경험을 통해 정서가 황폐해지다못해 서서히 미쳐가는 주인공들이 여과없이 등장한다. 자신의 처지와 별다를 것이 없는 일본군을 죽이려면 먼저 그 자신이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전쟁광이 되어야 하는 현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역자들. 전편과 비교해볼 때 전투신의 분량이나 세밀한 고증을 통한 사실적인 묘사는 다소 부족했으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군인들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깊이 있고 심층적으로 묘사되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해 수리바치산 정상이 성조기를 꼽는 유명한 사진을 다루고 있는 아버지의 깃발(2006) 또한 전쟁으로 만들어진 영웅주의에 대한 허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전쟁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 영웅은 개인이 국가가 강요하는 대의 안에서 희생당하고 소모되는 현실을 아름답게 미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영웅이 되었던 이들은 자신의 영웅담이 결코 아름답거나 용맹스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없이 죽어간 동료들을 남겨두고 자신이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함께 전쟁 영웅이 된 현실에 힘겨워 한다.


허트로커,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아바타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허트로커(2008)는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극도의 공포와 중독성을 다루고 있다. 폭탄물 처리반인 영화의 주인공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다. 제멋대로 영웅 행세를 하며 긴장과 공포를 즐기고 이를 통해 느끼는 희열 같은 것에 중독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쟁은 그의 삶 자체가 되었고, 결국 그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그를 통해 일그러진 영웅 자신과 이들을 만들어내는 현대인들에게 섬뜩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린존, "전쟁은 왜 하는 건가?"


그린존(2010)은 보다 직설적으로 전쟁에 대한 명분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로부터 자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과연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상부의 명령에 의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해매는(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군인들의 '똥개훈련'은 전쟁의 명분을 넘어 과연 어떤 이들이 전쟁을 원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


더 이상 영화에서 '나'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은 광기 어린 일본, 독일 군인이 아니다. 바로 전쟁 그 자체가 고통의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쟁이란 경험이 인간에게 주는 무게감이 전쟁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개봉되고 방영된 전쟁 영화나 전쟁 드라마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아직 분단을 벗어나지 못한 현 상황의 한계였을까. 전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이의제기를 시작한 해외의 전쟁물들과는 달리 국내의 영화나 드라마는 여전히 전투신의 화려함에 목숨을 걸고 단순한 서사 구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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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03:13

스티븐 호킹 박사의 새로운 저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가 발간되면서 과학계와 종교계 사이에 또 다시 무신론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호킹 박사는 이 책에서 '우주는 신성한 존재의 개입이 아니라 물리학 법칙에 따라 발생했다'면서 종교계가 주장하는 창조론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신' 없이 우주와 인간이 자발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1992년 처음 발견된 외계 행성의 존재는 우주에 태양계 외에 이와 유사한 다른 행성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우주와 지구는 인간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창조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몇 년 전에는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호킹 박사가 주로 천체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우주의 탄생과 기원에 대해 논의했다면, 도킨스는 창조론이 갖고 있는 이론적 결함을 진화론을 무기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특히 도킨스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통해 단순히 창조론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러한 사고관이 인류의 역사나 현실 국제 정치,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만큼 뿌리 깊은 해악을 미치고 있는지 따졌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전통이 깊은 구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창조주는 존재할까?

금붕어들은 지능이 낮을 뿐 아니라 채 몇 초도 되지 않는 나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이런 금붕어들에게는 어항이 그들의 우주나 다름없다. 금붕어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어항, 즉 자기들의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다 알지 못한다. 우주가 어디까지인지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주에는 무엇이 있는지와 같은 물음에 대해 그저 우리의 지적능력에 맞춰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어항을 만들어 금붕어를 키우는 우리 인간들처럼 우주를 창조해서 우리 인간이 살게끔 만든 어떤 외부의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논리로 개인적으로는 '신'이 존재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신'은 종교에 등장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물리적인 우주를 창조해낸 조물주로서의 존재를 뜻한다. 이 '신'은 종교 속의 신과는 달리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ET 같은 외계인의 외형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르며 겉으로 보이는 형상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이런 의미에서 '신'은 호킹 박사가 말하는 것처럼 우주의 천체물리학적 시스템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또 여타의 종교 속에 등장하는 절대신들처럼 꼭 선하거나 도덕적일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별다른 목적 없이 단지 심심해서 이 우주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우주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 우주를 만든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신'이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에서의 인격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고 인간이 만든 언어의 수사학적 의미 안에 살고 있는 신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신이 신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다는 성경의 구절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 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다만 종교가 전부 허구이고 거짓이란 의미는 아니다. 단지 종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어디에서 '신'을 찾아야 하는가?

나는 신학자가 눈에 불을 켜고 무신론자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또 스티븐 호킹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견해에 종교계가 발끈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 논리로 '신'의 존재를 밝히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에 무산되었다. 여기서 '무산되었다'라는 의미는 그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에 무산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도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무산되었다는 뜻이다. 종교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은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별개의 영역이다. 두 영역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프레임일 뿐, 각자의 믿음과 취향에 따라 그 프레임을 고르는 게 전부다. 어떤 이들은 종교를 통해 세상을 해석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과학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일부 학자들은 해석과 설명, 이 두 영역의 경계를 흐트려놓고 있다는 점이다(동물학을 통해 기독교를 비판한 도킨스의 견해도 마찬가지겠지만). 신학자들이 호킹 박사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한다고 해서 '신'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천체물리학자들이 빅뱅이론을 입증한다고 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즉, 이 우주가 창조되었는가 혹은 자연발생되어졌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물리학계 내에서 과학적으로 논쟁되어야 할 주제인 것이며 또 동시에 종교계 내에서 믿음을 통해 입증되어야 할 주제인 것이다.

노년의 아인슈타인이 남긴 한 마디,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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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17:28


이름: 김종국
백넘버: 16
포지션: 2루수 (세컨드 포지션: 유격수)
신장: 180cm
체중: 77kg
우투우타
광주일고 고려대 해태 KIA
데뷔년도: 1996년
타이틀: 2002년, 2006년 도루왕,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WBC 국가대표, 1997년 매직글러브 상


올해는 유난히 정들었던 선수들의 은퇴가 많더군요.
지난 10여 년이 넘게 타이거즈의 2루를 책임졌던 김종국 선수도 어제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깔끔하면서도 수려했던 '명품 수비'와 상대 수비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빠른 발.
이제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니 참 아쉽군요.

'늙어간다'란 표현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기만 한 나이지만, 한창이었던 선수들이 하나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은퇴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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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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