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를 다녀야 할까. 학교를 다녀야만 첫째로 사회 진출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둘째로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사고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 교육에서 문제되는 것은 후자다. 일제부터 군부독재까지 정당성이 빈약했던 집권층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교육은 그저 산업화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시키는 데 몰두해왔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교육은 그대로다.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이 비효율적인 교육이라는 건 과거 위정자들이 지어낸 편견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만큼 입시가 치열하고 학벌 지향적인 영미권에서도 토론식 수업이나 사고력 교육은 충분히 병행되고 있다. 유럽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교육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 정치의 뿌리깊은 폐단을 뽑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선거법 개정이라 생각한다. 광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같은 대안도 이미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하다 못해 기한이 정해져 있는 선거구 조정마저 손을 놓고 있다. 개선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거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이슈보다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항인데 대중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무상급식 같은 이슈에는 그토록 열변을 토하면서 정작 근본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에는 무관심한 거다.
7,8월을 휴가 시즌으로 여기는 건 어디까지나 유럽의 문화에 불과하다. 그곳은 겨울이 긴 탓에 여름에만 보송보송한 햇볕을 쬘 수 있기 때문이다. 습도도 높지 않아서 야외활동을 하기에도 알맞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바캉스 시즌마다 보송한 햇볕을 찾아 남부 해변으로 떠난다. 그렇기 때문에 바캉스라 하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고.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휴가 시즌 또한 정확히 그 기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그 기간은 제일 덥고 습할 때다. 해마다 폭염으로 사망자가 나오는 때이기도 하다. 습한 탓에 모기 같은 벌레도 기승이다. 여행 같은 야외활동을 하기엔 사실 한겨울만큼이나 적합하지 않은 시기다. 그럼에도 바캉스 시즌이라 하면 사람들은 바다로 몰린다. 바다가 더 덥고 더 습한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시사철 햇볕 잘드는 한국에서는 해변에서도 선크림을 바른 채 파라솔 밑에서 햇볕을 피하는 요상한 모습이 나오는 거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흔히 말하는 '김여사'를 포함하여)의 큰 착각은 자신이 운전이 미숙하기 때문에 욕먹는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운전 미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욕먹는 진짜 이유는 알아야 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건 운전 실력보다는 운전 매너에 가깝다. 예를 들면 상황에 맞는 방향표시등이나 수신호,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위한 보편적인 주행 매너, 상호 간의 적절한 배려 운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매너나 예의는 모른다고 해서 용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매너란 늘 숙지하면서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속주행을 한다고 욕먹는 게 아니다. 저속주행을 할 때는 양보운전을 해야 한다는 매너를 모르기 때문에 욕먹는 거다.
난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을 보며 동심을 키웠던 세대고, 어린 시절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네극장에서 어머니와 '쥬라기공원'을 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쥬라기월드'는 한번쯤 보고싶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보게 될 21세기형 쥬라기공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좀 씁쓸하다고나 할까. 공룡을 보는 건지 공룡 모양을 한 에어리언을 보는 건지 그것부터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인도미누스 렉스와 T렉스의 다이다이는 마치 공룡판 투견장을 연상시켰다. 결국엔 싸움구경이었던 거다. 수천 년 전 콜로세움에서나 지금의 극장에서나 계속되는 싸움구경. 아무리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소중한 추억 속의 T렉스마저 투견장에 끌려나와 소모되는 건 좀 슬픈 일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