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말이 부쩍 많아진 국방부. 얼마 전에는 국방부가 '군가산점제' 문제를 꺼냈다. 사라진 군가산점제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역시 여성단체들과 인권위가 쌍수를 들어 반발하고 일어났다.

이처럼 주로 국방부에서 군가산점제에 대한 논의를 던지기 시작하고, 주로 여성단체에서 이러한 군가산점제에 대해 반발하고 나서는 그림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군가산점제에 대한 논쟁을 남녀의 대결구도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다. 다시 말해, 군가산점제는 남성에게는 이익이 되고 여성에게는 해가 되는 제도라는 단편적인 인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절대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오로지 남녀 대결이라는 감정 섞인 설전만 오고 갈 뿐이다.

과연 군가산점제는 '남성'을 위한 제도인 것인가? 가장 가까운 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만 하더라도 군가산점제가 부활할 경우 크게 불리해지게 된다. '나'와 같이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 면제자라든지 혼혈, 외국인, 더 나아가 장애인까지, 이런 사람들은 군가산점제가 시행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되는 남성들이다. 만약 이런 남성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면, 불과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같은 남성이라 할지라도 군가산점은 엄청난 페널티로 작용될 수 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군가산점제는 '남성'을 위한 제도라기 보다는 '군필자'를 위한 제도이다. 물론 군필자가 남성 중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군가산점제는 군필자를 제외한 남성들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는 제도이다. 다시 말해, 군가산점제를 오로지 '남성'들을 위한 제도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인 것이다. 군가산점제를 오로지 '남성'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군필자'로 그 범위를 축소시키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처럼 군가산점제를 '남성'이 아닌 '군필자'를 위한 제도라고 축소시켜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주로 여성단체에서 주도했던 남녀 성대립적 구도 하의 논쟁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군가산점을 단지 '남성'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혜택이 아니라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혜택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군필자들 또한 국가에 의한 피해자라 볼 수 있다. 2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군복무를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군복무 기간 동안 받는 불과 몇 만원의 월급 정도? 이십대 초반이라는 학업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가장 중요한 자기 계발의 시기에 짧지 않은 기간 군복무를 수행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단체들이 평소 그토록 외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미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가 군가산점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군가산점제가 없는 국가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모병제로 군대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아주 간단한 'give&take' 논리다. 절대 만만치 않은 군복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군가산점, 사실 이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대다수의 군필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입는 것은 아니다. 또 대다수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공무원 관련 시험 준비를 하는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군가산점제에 대한 논쟁을 자꾸 성대결적인 구도로만 몰고 가며 이를 마치 '여성'에 대한 차별로 바라보게끔 만들고 있다.

난 절대 반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여성들보다도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아니, 군가산점제를 이야기하면서 왜 내가 반페미니즘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군가산점제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일부 사람(여성)들의 그릇된 인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군가산점제는 절대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바라볼만한 문제가 아니다. '남성'이 아닌 단지 '군필자'들에 대한 보상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이처럼 남녀 대결 구도의 감정적인 논쟁이 배제되고,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때 비로소 군가산점제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2008.12.05 14:45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 2008.12.06 00:34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 이스크라 2008.12.08 00:54 # modify/delete reply

    군가산점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뻘짓을 하고 있는 측은 남성이지요. 아니, 그 말마따라 청춘의 2년을 시급 500원 짜리 천민으로 강등되어 개처럼 살아야하는건데, 그것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배상으로 고작 "군 가산점" 따위가 가당키나 하나요. 그것도 찌질하게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들 파이 빼앗는 그런 식으로?

    연 6조의 예산이면 우리나라 현역 장병들 월 200만원씩 돌리고도 좀 남는 금액입니다. 종부세 환급시켜 강부자 영속시키는 개병신 정부가 왜 이런 일에는 인색한지 모를 일이에요.

  • [트랙백]
    와~ 제가 생각했던 내용과 비슷하네요!
    찬반논쟁을 떠나서, 물론 저의 수준으로는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쉽게 판단하지도 못하겠지만 어쨌든
    논쟁의 시작점에서 군가산점을 남성과 연결시키려는 성대결적 시각은 불필요하다고 봐요ㅠ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같습니다

  • 군필자 2008.12.10 19:19 #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입니다. 정확하게 짚으신 것 같습니다. 추천 꾹

  • 이 글의 주제와는 상관 없지만 전 가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ㅎㅎ

  • 군복무자 2013.02.14 21:36 # modify/delete reply

    나라와 나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의 관계에 페미니스트들이 파렴치하게 이대생 5명과 신체 장애인 1명과 함께 비열하게 끼어들고 어거지 결정 내려서 쥐꼬리만한 가산점마저 빼앗간 것이 진실입니다. 돈 안드는 그런 정책이 아니라 이건 기본입니다. 병역법 자체가 이미 위헌이고 성차별입니다. 여군 장교나 부사관은 그리 수십대 일씩 뽑으면서 여자 병사는 왜 훈련 장교나 부사관과 같이 받으면서 규제할지요? 이게 모순이고 여성 이기주의 라는 것입니다.

    당시 5가지 판결문 요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그게 과연 이치에나 맞는지...확실히 오판입니다.

  • 군복무자 2013.02.14 21:40 # modify/delete reply

    모순과 궤변적인 글 같네요.

    1. 불과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이미 군복무로 인하여 군미필자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만큼 헌법 제 7조 1항의 공무원은 대민 전체의 봉사자이다.와 헌법 제 39조 2항의 병역이행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라는 조항을 정상적으로 해석하면 군복무 자체가 이미 엄청난 불이익입니다. 당시 헌재 결정 자체가 정치적 압력이 개입된 어거지 우기기식 판결일 뿐입니다.

    2. 가산점이 없다면 군필자들이 불리하고 이건 기본적으로 주고 다른 것도 더 필요합니다.
    당시 판결문을 제대로 보셨다면 급진 페미니즘적인 여성이기주의적 판단이며 전근대적인 병역의식으로 몰아간 어거지 결정임을 아실 겁니다. 의무와 권리이고 의무 안에는 강제 구속력이 들어있습니다. 이 강제 구속력 자체가 희생입니다. 무거운 책무만 있고 최소한의 권리조차 없는데 무슨 책무를 져야 하나요?

    우리나라는 전제군주국가도 아니고 공산주의 나라도 아닙니다. 책무 진만큼 일한만큼 받는 나라입니다. 국민과 나라 사이의 신뢰와 의무와 권리 일 뿐이지 여기에 여성이기주의랑 남자니까 의무니까 무조건 군에 가야 한다는 궤변이 끼어들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끼어든 자체가 이미 모순입니다. 그리고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가장 실현 가능한 것 부터 시작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가산점이 매번 논의되는거구요. 그리고 돈얘기하시는데, 그런 재원 마련도 현실적으로 어렵거니와,
    돈 받으면 남자들 혼자씁니까?20대만 놓고 봤을 때 남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건, 취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주는 불리함을 만회시켜 줄 법적 제도적 장치이자 권리인 셈입니다.

    힘을 실어줘도 부족할 마당에 그 시작이어야 할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 조차, 근시안적으로 일부만 득본다는 시각 발상 자체부터가 오류고 이조차 반대하시는 분들 보면 참..답답하네요.

    • 글쓰신 분이야말로 군 문제를 남성vs여성의 마치 성대결로 보시는 듯 하군요. 전 남자니까 무조건 군에 가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여자니까 무조건 의무를 면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참고로 전 여자도 아니고 급진 페미니즘은 저 역시도 혐오합니다.

      글쓰신 분의 말씀처럼 가산점 문제를 철저하게 권리와 의무, 책임과 보수의 문제로 생각해본다면 군필자들은 분명 군복무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 대가를 누가 지불해야 하나요? 당연히 국가가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군가산점제도라는 건 국가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닙니다. 대가를 치르는 건 상대평가제인 국가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병역미필자들(여성, 군면제자 등)이지요.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국가가 군복무를 명했다면 그 대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가가 직접 지불해야 맞는 거 아닙니까? 이를테면 해외 사례처럼 월급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지급해준다거나 가족 생계비 등의 각종 혜택을 더해주든가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군가산점제는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합니다. 다시 시행된다고 해도 적용 대상이 전체 제대군인의 0.4%밖에 되지 않으며, 국가에서 지불하는 비용 또한 제로에 가깝습니다. 가산점이란 타이틀은 그럴 듯 하지만 제대군인에게 해주는 건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치사한 정책에 가깝죠.

      군복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챙기려 한다면 월급 인상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자꾸 군복무에 대한 대가를 국가가 아닌 미필자들에게 지우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군가산점제를 마치 남녀의 성대결로, 감정적으로 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군복무자 2013.02.24 00:12 # modify/delete reply

    1. 님의 글 중에 전 남자니까 무조건 군에 가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여자니까 무조건 의무를 면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판결문 가운데 전체 여성의 대다수는 군에 가지 않고 전체 남성의 대다수는 군에 가니까를 전제로 내린 결정문은 이미 모순이라는 걸 입증하고 스스로 밝히는 셈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애시당초 의무를 지면 그에 합당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옵니다. 이럴 때만 의무입니다.

    이게 안되고 무거운 의무만 지우는 사회는 이미 스스로 그 정통성을 깨버린 나라입니다. 공산주의를 자처하는 북한도 의무는 같이 집니다. 유독 우리나라만 없습니다. 보상 방법만 논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의무/권리와 특별한 희생의 관계로 책무 속에 강제 구속력을 인정해 주는 군필자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다. 라는 것입니다. 이를 부정한 결정문이 당시 판결입니다. 5가지 요지가 다 틀린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2. 군면제자 가운데 장애인들은 신체장애인 고용 촉진법으로 이미 별도로 선발하며 이미 군복무자들에 비하여 2~3번의 응시기회 및 면제 특혜수혜자입니다. 더불어 특수한 신체적 차이에 근거하여 군에서 면제된 이들입니다. 그리고 신체장애인은 체력적인 아무 하자가 없음에도 왜 남녀를 차별해서 병역법을 두고 있을지요? 왜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남성은 신체 검사를 받고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여성은 신체 검사조차 열외가 될까요? 군복무 자체가 이미 상대 평가제인 시험에서 군필자들이 군미필자들에 비하여 불리한데 이게 이미 공정한 경쟁 자체가 안됩니다.

    3. 군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여자 병사 징집하든 아니면 여자 사병 지원병제라도 하자고 하는데 안 가려고 할까요? 이 이유가 뭔가요? http://blog.naver.com/madgun00/20161303377
    이게 말하는 건 뭘지? 이들이 바로 여성이기주의 집단 아닐지?
    점수도 뺐고 한쪽성에만 과도한 책무 지우고, 그들의 희생도 폄하하고? 이들이 이 사건의 주범이고 원흉이죠?

  • 군복무자 2013.02.24 00:19 # modify/delete reply

    4. 급진 페미니즘이란?
    남성만 의무 시키고 가산점마저 빼앗는 이들을 뜻합니다. 애초에 군복무는 특별한 희생이고 책무를 이행한 만큼 그에 합당한 권리를 받는 것입니다. 군가산점은 말그대로 군복무를 이행한 만큼 국가 관련 시험에서 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군에 2년 간 봉사했으니 단순히 의무로 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헌신을 생각해서 국가 관련 시험에서 인정을 해 주는 것이죠. 헌법 제 7조 1항의 공무원은 대민전체의 봉사자이다.랑 헌법 제 39조 2항의 병역이행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를 잘 접목해 보면 이미 군복무 자체가 엄청난 사실적 불이익이고 무엇보다도 학업단절적 측면은 기본적으로 선행해서 메워주고 다른 것도 더 필요하다 판단합니다. 최소한의 권리가 없는데 무슨 책무로서의 정당성이 있나요? 당연히 없죠. 가산점은 보상도 아닙니다.

    5. 페미 단체들이 교묘하게 끼어들어서 난리를 친 장본인들입니다. 처음에 이대생 5명이 헌소 냈을 때 기각되고 그 뒤에 장애인 1명이 들어왔고 그런 뒤에 페미단체들이 이에 알게 모르게 정말 티안나게 끼어들었습니다.

    관련 기사 링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23000289118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8-12-30&officeId=00028&pageNo=18&printNo=3388&publishType=00010

    이 뒤에 결정이 나자 이딴 태도를 보입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23100209107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12-31&officeId=00020&pageNo=7&printNo=24393&publishType=00010

    군대 근처도 안 간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군필자들과 나라 사이에 끼어든 그자체가 이미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면제 특혜자들이 어찌 군필자들과 나라 사이에 주고 받는 권리/의무의 관계에 끼어든단 말인지? 끼어든 그 자체가 너무도 극단적이고 여성이기주의적 입니다.

    6. 헌재 판결문 보면 나와있지만, 군필자들의 희생은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군미필자들은 면제 특혜를 입으면서 그들의 특혜는 당연함을 전제로 하여 군필자들의 쥐꼬리만한 점수마저 앗아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5가지 요지 여러번 본 사람이고 전혀 신뢰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틀렸습니다.

    7. 군가산점이 없으면 공부를 꾸준히 한 군미필자들에 비하여 군필자들이 현저하게 불리해 집니다. 출발점 자체가 늦어지죠. 사병 정년 연장도 가산점과 같이 해줘야 할 필수덕목이지 보상이 아닙니다.

    8. 당시 판결은 확실히 오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9. 위에 제가 말한 주소처럼 빼앗아가게 뒤에서 비열하게 끼어들고 현재까지 난리치는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가도 책임소재야 있긴 하죠. 하지만 애초에 이런 갈등의 골이 퍼지게 한 시발 당사자들은 당시 페미단체들입니다.

    10. 님이 말씀하신대로 해외 사례처럼 월급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지급해준다거나 가족 생계비 등의 각종 혜택을 더해주든가 하는 것도 필요한데 우리나라가 과연 그런 재력이 되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산점은 그보다 앞서서 기본적으로 선행되야 합니다. 위에 이미 근거를 말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이렇게 되야 겠죠.

    1. 군복무가 의무로서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의 권리를 보전해 줄때만 의무다. 헌법 제 39조 2항의 개정
    맹목적인 충성은 의무가 아니다.
    2. 병역법에서 남성만 지는 건 헌법에 이미 위반된다.
    3. 남성만 진다면 군복무는 특별한 희생으로 인정하고 최소한 군복무가산점은 국가 위해서 희생한 만큼 국가 관련 시험에서 인정해 줌은 너무도 타당하다.
    4.가산점+다른 것도 더 필요하다. (군미필자들로부터 병역세를 걷는 방안도 있을 수 있고, 병역법을 개정해서 사회봉사나 행정병, 통신병 등도 여성들이 당당하게 의무 이행하고 같이 점수 받아도 된다.)
    5. 여군도 가산점을 받았지만 그게 사라져서 손해를 봤다. 여자 병사랑 장교나 부사관은 훈련양도 오히려 장교나 부사관이 더 빡센데 왜 여자 병사는 막으면서 장교나 부사관은 더 늘릴까? 이것 자체가 완벽한 모순이다. 라는 것입니다.

    대체 누가 성대결을 조장했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성대결을 조장한 당사자들은 페미 단체들이고 그들을 두호해 주고 있는 이들이 문제의 주범이겠죠. 정작 군필자들은 나라에 아무 사심없이 헌신한 죄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페미 단체들과 이대생들의 합작으로 그리고 뒤를 봐준 이들이 일을 저질러서 없애놓고 책임 전가를 무작정 정부랑 국방부로 시킨 뒤에 헌재결정에 기고만장해져 가지고 군필자들의 군생활을 비아냥거리는 일부 여성들의 몰상식과 파렴치함이 과연 옳은 것일지? 기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행태와 태도가 군필자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자극하기 충분했습니다.

    군필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현실에 무거운 책무만 있는 그자체,,, 이미 모두가 한목소리로 나라 위해서 사심없이 희생한 이들에게 가공할 폭력 행위를 휘두르고 있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게 진실이고 이게 본질이겠죠.

    끝으로, 페미단체랑 여성부 없애고 거기 들어갈 자금으로 군인들 먹여 살리면 되겠군요? 또, 그런 이들 두호하는 사람들부터 족쳐야 겠죠? 그리고, 그년들부터 군대 빡세게 이대생들처럼 5년 굴리면 되겠군요.

    • 먼저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상세한 댓글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군요. 하지만 동의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말씀드리는 게 낫겠군요.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가 주어지는 것을 위헌이라고 하셨는데, '남자도 하는 거니까 당연히 여자도 해야 평등하다'란 논리로 병역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시각입니다. 수천 년 인류사에 있어서 군대 징집의 대상은 주로 남성이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죠. 완력이나 전투력의 차이, 임신, 출산, 육아. 여성이 전쟁에 징집될 경우 야기되는 복잡한 문제들 등등. 때문에 군대가 주로 남성으로 이루어진 것은 오래 전부터 자리잡혀온 일종의 관습이 되었습니다. 헌재가 남성만이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을 관습법으로 봤기 때문이겠죠. 아시다시피 법은 명문화된 조문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헌법에서의 관습법은 말할 것도 없고요. 법논리 하에서도 관습법, 국민 정서, 법적 안정성 등 여러 점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법부의 판결 또한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여성도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위와 같은 논점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셔야 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법 조문 몇 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남성만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은 위헌이고 잘못된 판결이라고 하시는 건 무리한 판단이죠.

      아울러 말씀하신 법 조문의 해석 또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어떠한 논리로 헌법 제7조 1항 '공무원은 대민전체의 봉사자이다'라는 조문과 헌법 제39조 2항 '병역이행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조문에서 군복무 자체가 엄청난 불이익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군복무를 의무가 아닌'봉사'라고 말씀하셨는데 군복무는 실정법상 명백한 의무이지 봉사가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공무원은 봉사자라는 조문에서 '봉사자'라 함은 사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봉사자'에 가까운 것이지 국가에 헌신하라는 의미에서의 '봉사자'가 아닙니다.

      군면제자 가운데 장애인들은 고용촉진법에 의해 특혜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장애인이 아닌 군면제자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셨는지요. 특혜는 커녕 건강상의 이유로 사실상 취직이 힘든 이들이 군가산점제가 시행될 시 국가시험에서마저 불이익을 받는다면 또다른 불평등이 야기되는 것이 아닌가요.

      또한 군가산점제가 없다고 해서 군필자들이 국가시험에서 꼭 불이익을 받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실효성에 대한 문제지요. 군가산점제가 폐지된 이후로도 국가시험의 합격생중 남성(대부분 군필자)의 비율은 여성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고시 같은 고급시험의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죠. 같은 2년의 기간이라 할지라도 응시생 개인에 따라 학습량은 천차만별이기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국가시험에서의 군복무자들에 대한 배려는 시험 응시연령제한을 군복무기간만큼 연장해주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나요?

      저는 군필자들의 성실한 의무 이행과 군복무의 노고를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만이 아니라 누구든 그럴 자격은 없죠. 다만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처우를 바란다면 사병 월급 인상 같은 실질적인 제도를 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하신 병역세 수세도 하나의 그 중 하나이고요. 반면 군가산점제는 국가에서 군필자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제도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실효성마저 의심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것이죠.

      그리고 자꾸 급진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이들을 옹호한 적도 없고요 이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언급한 적도 없습니다. 전 단지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뿐인데 왜 제 포스트에다가 이들에 대한 원망을 하시는 지. 저도 '꼴페'는 싫어하는 사람이고요. 이 문제를 '논리'로만 좀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 군복무자 2013.02.24 23:53 # modify/delete reply

    마지막으로 글 쓰고 갑니다. 시각이 전혀 다른 만큼 저는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1. '남자도 하는 거니까 당연히 여자도 해야 평등하다'란 논리로 병역문제를 바라보는 것? 논점은 그게 아닙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의무를 진다. 라는 것에서 일단 법자체의 형평성을 고려해야죠. 신체장애인과 여성은 다릅니다. 사지 멀쩡해서 팔, 다리 돌아가는 여성이 신체 장애인이 아니죠. 당연히 공익근무든 행정병, 통신병, 내지 병역세 등이라도 내는 등 방안을 강구해서 일단 뭔가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묻습니다. 여자 병사는 저리 막으면서 왜 훈련 똑같이 아니 더 빡세게 받는 durns 장교나 부사관은 수십대 일씩 경쟁해서 뽑나요? 이게 모순이고 이게 여성이기주의 라는 겁니다. 이래 놓고는 군복무를 단순의무로 치부하여 가산점마저 빼앗겠죠. 가산점? 표현도 웃기네요. 군만회점인 거 같은데요? 군필자랑 군미필자가 같나요? 다릅니다. 현저히, 의무니까 무조건 가야 한다구요? 군인은 무슨 국가에 소속된 종노비쯤으로 보시는지요? 군인 사람맞구요. 인격을 가진 인간입니다. 심지어 임신, 육아, 출산까지 거론? 허허,, 북한은 15만명 징병하고 있죠. 우리랑 휴전상 마주한 북한,, 그리고 다른 나라 보십시오. 이스라엘도 여군 징집합니다. 여군 부사관, 장교부터 뽑는 나라 없습니다. 전쟁이 원래부터 남성이 지켰다구요? 첨부터 법자체의 형평성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법제정 당시부터 병역법 자체가 위헌이란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그런 식으로 돼서 남성만 징집한다면 군필자들이랑 군미필자들은 확실히 다르니 불리한 건 만회시켜 줘야죠. 20~30대 취업? 이거 군대가는 걸 단순의무로만 보고 무슨 군인이 나라 지키는 노예쯤으로 여기면서 군필자들이 받는 불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말투라면? 정말 저는 대화할 필요성은 없겠습니다. 국민 정서 때매 여자는 군대든 사회 봉사든 병역세든 전혀 일절 안하고 나라 남성들이 지켜왔다고 계속 지켜야 하고? 그들의 권리도 스스로 요구할 수 없고? 의무만 강조하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시각과 아주 전근대적인 병역의식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사회의 병폐 아닙니까?
    관습법? 법도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악법은 법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국가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법적 안정 이전에 형평부터 최소한 맞춰놓고 실리나 효율에 근거한 안정성을 따져야죠.

    2. 헌법 제 39조 2항의 병역이행자체가 이미 엄청난 시간적 손실이 발생하고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대민전체의 봉사자다.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군복무를 단순 의무로 본다면? 말 다했군요. 님이 말씀하신 대로 공무원에서 봉사자라는 조문 그 중에서 봉사자라 함은 사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동사무소에 왜 갈까요? 단순히 국민들이 사익을 위해서 동사무소 가고 다른 사회 요양원 시설 등에 갈까요? 국민과 나라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서로 배려해주고 사는 존재 아닐지요?

    왜 특별한 희생이 아니고 왜 봉사와 헌신이 아닙니까?

    장애인이 아닌 군면제자들은 여성들입니다. 이들이 면제 특혜 수혜자들입니다. 장애인 중에서 여자는 왜 몸이 건강해도 신체 검사를 안 받고 왜 남자는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신체 검사를 받는단 말인가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 더 이상 글쓰기가 싫어질 지경입니다.

    또한 군가산점제가 없다고 해서 군필자들이 국가시험에서 꼭 불이익을 받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도 의문??? 허허

    이 내용은 뭔가요?

    군가산점 폐지 후 여자가 전원합격

    군가산점 배제 후 첫 공무원시험 전원 여성 합격 제대군인 가산점 부여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 이후 대구시가 처음으로 실시한 지방공무원 필기시험에서 전원 여학생 응시자가 합격했다.

    29일 시에 따르면 7명을 선발하는 사회복지직 9급 공무원 시험에 163(남 35명,여 128명)
    명이 응시, 23: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지난 19일 필기시험 결과 7명 모두 여성이 합격했다.

    시 관계자는 "여성 전문직인 공무원인 간호직 등을 제외하고 남여공동응시한 공무원 시험에 여성만 합격한 경우는 이례적인 일로 제대군인 가산점 부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처음으로 치른 공무원 시험에서 군가산점 부여를 배제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합격자는 2000년 1월 5일 면접을 거쳐 일선에 배치될 예정으로 면접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으면 전원 합격될 것으로 보인다.[대구=연합]

    2002.02.23 12:13 입력 / 2006.04.30 23:47 수정

    [초등교 임용] 군가산점 폐지로 남자 11명 탈락

    2000년도 서울지역 공립초등학교 교사임용시험에서 군필자 가산점이 부여된 1차 합격자 중 모두 11명이 헌법재판소의 가산점 위헌판결로 최종 전형에서는 불합격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모두 700명을 선발하는 2000년도 초등교사 임용후보자 선정시험에는 남자 124명, 여자 779명 등 모두 903명이 지원 했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28일 실시한 1차 시험에서는 군필자 가산점을 부여, 남자 수험생 109명이 합격했다.

    하지만 2차시험 성적과 1차성적 시험을 합산,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군필자 가산점을 다시 뺀 결과, 모두 11명이 탈락했다.

    시교육청은 오는 19일 발표 예정인 공립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도 군필자 가산점 폐지를 적용할 방침이다.

    * 김인상기자 iskim@chosun.com * 입력 : 2000.01.14 19:25 55`


    중등교사도 군가산점 폐지로 탈락

    군가산점폐지, 남자중등교사 응시자5명 탈락 올해 충남지역 중등교사 임용시험 1차 전형에서 군필자 가산점제 폐지로 5명의 남자 응시자가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도교육청은 17일 발표된 이번 임용시험의 1차 합격자 전형에서 군필자 가산점(2-3점)
    이 폐지되면서 당초 합격권에 들 수 있던 남자 응시자 5명이 불합격됐다고 밝혔다. 130명을 모집하는 이번 1차 전형에는 일반교과 138명, 특수교과 8명 등 모두 146명이 합격했고 이 가운데 여자가 72%인 105명을 차지했다.

    1차 합격자는 오는 25-26일 천안중학교에서 논술과 수업.컴퓨터 실기를 포함한 면접시험을 치르며 최종합격자는 다음달 3일 발표된다.

    한편 지난 15일 발표된 대전지역 중등교사 임용시험 1차 전형에서는 12명의 남자 응시자가 군필 가산점제 폐지로 탈락했다.[대전=연합]

    결론적으로 군복무 자체로 인한 엄청난 손실은 둘째 치더라도 2~3번의 응시기회 박탈 및 2년간의 시간적, 기회적 손실을 잃고 그리고 이후 다시 엄청난 결과의 평등마저 박탈당한 거죠.

  • 군복무자 2013.02.24 23:55 # modify/delete reply

    국가시험에서의 군복무자들에 대한 배려는 시험 응시연령제한을 군복무기간만큼 연장해주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응시연령 연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 합격된 시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사회 진출 나이가 중요한 겁니다. 정년이 다 같이 있는데 누구는 늦게 출발합니다. 그나마 공공 기관은 낫습니다. 회사는 나이가 많으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퇴출입니다. 어디 나이가 들면 회사에서 계속 다니게 해 줍니까? 실제로 봉급상 한달에 약 5~10만원 정도 여성들보다 군 제대자들이 더 받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거 안 받고 군대 안 갈 수 있다면 누구라도 안 갈 것입니다.

    여학생들 가운데 군대 안가면서 남성들 고생하는 거 인정안 합디다. 물론, 인정하고 아픈부분 어루만져 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면제 혜택 당연시 여기면서 점수 빼앗고 핍박하면서 의무만 강조합디다. 이게 얼마나 여성이기주의 적 입니까? 님이 여자인데 제가 고생고생하고 2년 시간 손실 보고 왔는데 점수마저 빼앗아요? 그리고, 상한응시연령이 폐지된 마당에 호봉 인정 이런 건 별 의미 전혀 없죠. 게다가 연봉제의 개념도 도입되었구요. 이미 호봉제는 관례였구요. 일전에 여성단체는 군가산점마저 없애놓고 호봉제도 없애려 했던 증거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랬다가 군필자들 반발이 거세지자 태도를 바꿨더군요. 그래놓고 얼마전토론에서 취업 후 호봉 인정 이런 있으나마나 한 것을 대안책이라고 버젓이 내놓았죠.이미 학습 단절 자체가 이미 엄청난 사실적 불이익입니다. 여성이 합격하면 월급 체계가 1호봉부터 시작되는데 군에 다녀온 남성은 3호봉부터 받는 것인데 이것은 대안이랄수가 없죠. 2년이라는 시간의 기회의 평등을 박탈 당한 군필자들이 어떻게 공부 꾸준히 한 이들과 같을지? 군에 가서 무슨 공부를 그리 할수 있습니까? 아직도 가고 싶은 군대라면 정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군에서 사회에서 공무원 준비하는것처럼 죽기 살기로 할수 있나요? 죽기 살기로 해도 2~3년씩 떨어질수도 있습니다. 군대서 2년 썩다보니 완전 백지가 되버린 머리로 2년 더 준비한 여성들과 맞서라는 것 자체가 이중으로 힘들게 만드는거 아닌가요? 2호봉 더 받으려고 해도 일단 합격을 해야 받든지 말든지 할거 아닙니까? 첫 스타트 그자체가 이미 불리합니다. 군복무 그자체의 시간적 손실이 절대 적은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이미 군복무를 하지 않은 이들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댓글 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합시다. 더 이상 논의했다간 속에 불이 일어날 거 같네요. 페미니스트들? 제가 님께 기사 써서 링크해 드렸던 걸로 압니다만? 다시 되뇌어야 합니까? 정말, 논점이 빙빙돌아야 하겠는지요?

    군필자들이 취업률이 더 높다? 100분 토론에서 전원책 변호사님께서 말한 것만 봐도 9급 일반 행정직에 군필 남성 32%라고 하던데요? 당시에 판결문 비판한 자료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 있던 내용이니 아마 정확할 겁니다. 여기선 말 안하겠지만,,,

    님은 군필자들의 성실한 의무 이행과 군복무의 노고를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놓고는 군복무에서 의무만 강조하고 권리와 봉사, 희생은 외면하시네요. 제가 말씀드릴께요. 자유 박탈 당하고 자기 인생 떼서 헌신하며 통제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군복무를 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달에 300만원씩 줘도 징병으로 가라면 안 가는 겁니다. 모병제 군인들,,, 징병 군인들보다 배려 잘 받고 터치 훨~씬 덜 받습니다.

    군복무,,, 징역 살지 않으려 가는 것이 애국심에 가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홀대 받는 사회에서 살바엔 차라리, 군대 새로 가느니 자살을 택하겠습니다.

  • 논점이 빙빙 돌다니요. 제 글을 반박하는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는 걸요.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제 글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부터 해보심이 어떠신지요. 반박에 논리는 없고 감정만 가득하군요.

    먼저 제 글 어느 부분에서 군복무자를 국가의 종노비마냥 이야기하고 있는지 좀 알려주시지요. 남성이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법이 언제부터 악법이 되었습니까? 그쪽 혼자 마음에 안 든다고 법 자체를 자의적으로 위헌이다 악법이다 단정짓지 마세요. 관습법이라는 건 오랜 세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승인되어진 행동양식이나 관습 등을 일컫는 겁니다. 그쪽이 악법이라고 주장해서 한 순간 부정되어질 그럴 만한 게 아니라는 거죠. 여성의 병역 의무화에 대해서 드문드문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민 대다수가 여성의 병역 의무화에 찬성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죠. 물론 말씀하신 북한이나 이스라엘처럼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우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예외에 불과하지요. 우리 사회가 정녕 북한이나 이스라엘을 닮아가길 원하시는 겁니까? 임신, 육아, 출산까지 거론한다고요? 임신, 육아, 출산은 우리 인간의 삶과 종족유지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들을 거론하지 않으면 뭘 거론해야 하는지요? 때문에 인류사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구분되어졌던 것이고 군대는 주로 남성들로 징집이 되어왔던 것이죠. 그 유명한 스파르타에서도 여성은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습니다. 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류학이나 역사학적으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만. 물론 제가 여성의 병역 의무화에 원론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문제를 그쪽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죠. 이 논의 하나만 하더라도 굉장히 방대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언제 군복무자들에게 닥치고 의무만 이행하라 했습니까? 의무를 이행했으니 그만큼 권리를 되찾으라는 이야기는 계속 해서 강조했는데요. 사병 월급 인상 같은 군복무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들을 구비해달라고 요구한 부분은 읽지를 않으셨나보군요. 군복무자의 권리라는 게 군가산점제밖에 없는 겁니까? 군복무자들의 노고를 인정해달라면서 왜 그렇게 군가산점제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군요. 다시 말하지만 군가산점제라는 건 국가로부터 군복무자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군면제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아닌 군면제자들은 여성들뿐이라니요. 장애인 판정을 받지 못한 '남성' 군면제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모르시나보군요. 그쪽 시각이 '여성 이기주의에 대한 혐오' 딱 하나에만 매몰되어 있으니 다른 건 보이지 않는가봅니다. 군가산점제로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 건 여성들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군가산점제 문제를 남성vs여성의 성대결적인 구도로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또 제발 헌법 조문을 본인 멋대로 해석하지 좀 마세요.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대민전체의 봉사자다'라는 헌법 조문의 '봉사자'는 님이 알고 계신 그런 의미의 '봉사' 개념이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저 혼자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조문을 해석하는 통설이나 국가공무원법이 그렇습니다. 이 조문은 공무원이 사적이익의 추구자가 아니고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공무원의 법적 지위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조문입니다. 국가에 헌신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고요, 군복무를 '봉사'로 보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이 조문을 근거로 군복무를 의무가 아닌 봉사 개념으로 보신다니 할 말이 없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최소한의 법에 대한 상식 없이 법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군가산점제가 없다면 그만큼 군필자들의 합격자수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닙니까? 헌법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시더니 이제는 제 글도 마음대로 해석하시는 건가요. 제가 언제 군가산점제가 없어도 불이익을 받는 군필자들은 없을 거라고 했나요? 가산점이 사라진다면 그만큼 합격자들 중 미필자들의 비율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죠. 다만 그 차이가 유의미한 수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직접 써주신 기사 내용을 살펴볼까요? 먼저 대구시 지방공무원시험에서 남성 35명, 여성 128명 지원자 중 7명을 뽑는데 모두 여성이 합격했다고 나와있네요. 애초부터 여성의 지원자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군가산점제 폐지가 시험결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할 뿐이네요. 다음으로 서울지역 초등임용에서 남성 124명 지원자중 11명이 군가산점을 받지 못해 불합격했군요. 전체 남성 지원자중 1/10도 안 되는 인원이 군가산점제 폐지로 불합격한 셈입니다. 이 정도의 차이를 큰 차이라고, 다시 말해 유의미한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 제도의 실효성을 재고해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응시연령제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 진출 연령이 중요하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한답니까? 회사 들어가면 나이들어 퇴직당한다고요? 아니 군가산점제를 논의하시면서 왜 갑자기 일반 기업 이야기를 하십니까? 최근 연령제한이 풀린 7,9급 공채공무원시험말고도 그쪽이 모르시는 여러 국가시험 중에서는 응시연령제한이 응시자들에게 크게 작용하는 시험들이 많습니다. 응시연령제한이 중요하지 않다니요. 그리고 9급 일반 행정직 합격자 중 군필 남성이 32%라는 점이 뭐가 문제입니까? 제대로 된 논의를 하려면 응시자 남녀 성비 같은 통계를 먼저 꺼내놓고 이야기를 해야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전 군필자들의 일방적인 의무만 강조한 적 없습니다. 군가산점제에 반대하는 것이 군필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겁니까? 언제부터 군가산점제가 군필자들의 권리 전부가 되었습니까? 계속 말씀드리지만 군가산점제는 설령 시행된다 하더라도 전역자 중 0.4%밖에 적용되지 않는 제도입니다. 사병의 봉급을 조정한다든가 더 나아가서는 모병제로 전환한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계속 말하지 않았습니까?

    속에서 불이 일어날 것 같다고요? 제발이지 저의 의견을 그쪽 감정에 따라 함부로 왜곡하지 말고 논리를 가지고 반박해주세요. 논의가 빙빙돈다고요? 감정적으로 그쪽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데 당연할 수밖에요. 누차 강조하지만 전 여자도 아닐 뿐더러 여성의 편을 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여성 이기주의를 말씀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 혐오와 분노 같은 건 다른 데 가서 배설하십시오.

  • 군복무자 2013.02.27 22:39 # modify/delete reply

    군가산점이 사실상 여성의 취업을 차단하는가?

    청구인들은 군가산점제가 여성의 취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야말로 사실을 왜곡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구청이나 동사무소, 전화국 등에서 근무하는 그 많은 여성들은 외계인이란 말인가? 또한 통계를 보면 가산점이 사라지기 이전에도 여성공무원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은 1999년 12월 23일 이전을 기준으로 여성공무원의 통계를 낸 자료이다.


    전체 공무원 865656명 중 여성 258347명 29.8%

    7급 공무원 85437명 중 여성 18168명 21.3%

    9급 공무원 25201명 중 여성 8511명 33.8%

    보다시피 군가산점이 없어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공무원들의 비율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며 9급 공무원의 여성 비율이 오히려 7급의 그것보다 높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곧 군가산점제도가 여성의 취업을 사실상 차단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위직에 여성 공무원이 적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여성이 공직에 진출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고위직에 임명할 만한 경력과 승진절차를 거친 여성이 적어서 그런 것이지 군가산점탓이 전혀 아니다. 이게 본질입니다.

  • 군복무자 2013.02.28 00:14 # modify/delete reply

    마지막으로 글 올립니다. 이글이 마지막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님께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서로 사고와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다른 한편으로는 님이 우파는 아닌 거 같아서 좌파쪽을 지지해서 여성부와 페미 단체들을 감싸고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아니라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연코 님께 아무런 악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몇가지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1. 여성에 관한 피해 의식?? 혐오와 분노?

    당시 사건의 진실과 개요 설명

    http://blog.naver.com/roboby/140001208868

    군필남성들이 분노했던 진짜 이유는 아주 단순했고 두 가지였으며 지금도 똑같다.
    하나는 군대가 강제구속력이 있는 즉, 자유를 박탈당하고 통제된 생활을 하는 것에 힘들고 어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무원 시험 볼 사람 아니면 그리 아쉬울 것은 없는 그런 거였음에도 폐지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이유는 이들의 행태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게다가 국가에서 부여하는 군복무에 대한 유일하게 군가산점 그것 하나였는데 이제 그것마져 없어졌다는 것에 대한 한스러움.. 실망 때문이었다. 여기에 덤으로 추가하자면 너무도 이기적인 여성이기주의 단체의 행태와 행위에 관한 미움 때문이었다. 제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여기에 왜 여성에 관한 피해의식과 혐오와 분노가 나올지?

    그리고, 먼저 제 글 어느 부분에서 군복무자를 국가의 종노비마냥 이야기하고 있는지 좀 알려주시지요. 에 관한 부분 지적입니다.

    님께서 헌법 제39조 2항 '병역이행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조문에서 군복무 자체가 엄청난 불이익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군복무를 의무가 아닌'봉사'라고 말씀하셨는데 군복무는 실정법상 명백한 의무이지 봉사가 아닙니다 라 하셨는데,, 동의 못합니다.

    정상적인 해석이라면 올바르게 해석한다면 헌법 제 39조 2항은 무거운 의무를 짊어지고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마저 담보로 헌신한 이들에게 예우를 해주라는 것으로 해석이 되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거운 병역 의무를 수행하였고 2~3년의 특수한 시간적, 기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최소한 2~3년 동안 군생활로 인한 학업 단절의 공백을 메워주는 즉 군복무로 인하여 잃어버린 기회의 평등 회복의 차원에서 국가 관련 시험에 일정 점수를 부여해 줌은 마땅하다. 라고 되어야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더구나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니 국가 관련 시험에서 인정을 해주는 건 너무 당연한 처사이다. 라고 판결을 내렸어야 흠잡을 때 없는 깔끔한 판결이 되는 거죠.

    잘못된 관습은 깨야 하고 없애야 하는 것도 있으며 옳은 관습은 개량하거나 수정해서더 좋게 사용함이 맞습니다. 여성병역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제 입장은 법자체의 형평성은 절대적이란 것입니다. 이건 쉽게 변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사회구조가 끼어들어선 곤란합니다. 오로지 형평만을 따져야 하는 것이지 일단 형평을 따지고 나서 여기서 실효나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지 형평이 불완전한데 거기에 실리, 효율을 대입시켜 버리는 건 완벽하게 오판입니다. 군복무로 인하여 생긴 2년간의 손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절대 시대가 변하든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변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법자체의 형평성은 나라와 국민 사이의 계약관계로 봐야지 이것에 사회구조를 처음부터 법자체의 형평성과 접목시켜서 보는 관점은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 입장에서부터 차이가 나면 그건 이미 더이상 논의는 어렵습니다. 제 소견은 여성 일반화는 어려울 지 몰라도 여자 병사 지원병제나 그도 아니면 여자 병사를 제한적으로 나마 행정병, 통신병 등에 투입하는 것, 그리고 상근 예비역제도등에 여성을 잘 활용해서 법자체의 형평성을 맞추어 주는 게 일단 맞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체검사는 다 받고 다만, 기초군사훈련 정도는 실시하면서 남성등과 차등을 두는 방안정도는 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아울러서 사회공공근로기관 등에 여성 인력등을 배치하거나 남자 병사 다친 걸 치료해 주는 역할 등은 충분히 함이 맞습니다. 아울러서, 여군 ROTC나 부사관 제도를 폐지하고 여자 병사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페미 단체들이 여군ROTC 제도를 확대 강화하면서도 여자 병사는 기를 쓰고 막는 거 자체가 여성이기주의의 표본이라 보며 국방부도 문제입니다. 전혀 인정해서도 안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들의 의도는 여자는 직업군인으로 남자는 징병대상자로 고착화시켜서 병역법상의 성별을 더더욱 굳게 만드려는 아주 잘못된 이기적인 시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저럴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나 이스라엘 등과 비슷하게 법자체의 형평성을 지켜야죠. 북한 15만명 징집하는 걸로 압니다. 그도 아니면 병역세라도 내든가요. 그게 형평성에 맞지 않겠는지요? 출산 한다고 군대 못간다는 수준이면 그건 말이 안되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1. 군복무는 특별한 희생이고 권리 없는 의무는 의무로서의 값어치가 없다. 즉, 대한민국은 의무로서의 값어치가 이미 상실된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충성을 다하는 나라일 뿐이다. 라는 것입니다.

    먼저, 군인에게 최소한의 인권과 안전, 보상이 전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도 남성이 군에 복무해야 하는 이유와 그리고 군인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하고 일을 해야하는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국민은 아무런 보상과 노고에 대한 인정도 없으면서, 왜 군인에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하고 일을 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필연성이 없습니다. 그리된다면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이민을 가고, 또한 차라리 군복무대신에 전과자를 선택하는 사람들,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신체를 절단하여 장애인이 되는 사람들의 행동,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장기실종자로 등록해 도망쳐버리는 사람들의 행동 등은 모두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방법을 이용해 군복무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입니다. 즉, 권리가 없다면 의무 피해는 것도 정당방위다 라는 것입니다. 만약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땐 갑니다.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정 못하겠군요. 절대로

    둘째, 유사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군인에겐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어째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감과 당위성을 가져야 하는지 왜 그것을 강제해야 하는지 그 또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대체 무슨 권리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될 것입니다. 아무런 정당성과 당위성도 없이 무조건적인 충성과 일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 자체는 군대라는 것이 곧 '노예'나 '인간소모품'이라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담보로 헌신한 이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리고 이를 아무 생각 없이 방치하는 국가나 일반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 즉, 의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시각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2.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들은 여성들의 몫까지 짊어지고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쥐꼬리만한 가산점마저 빼앗아갔다. 이게 진실입니다. 처음부터 여성들에게 병역에 관한 의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시간에도 무거운 짊을 여성들의 몫까지 남성들이 2배, 3배로 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병역 의무가 처음부터 열외라고는 단한번도 생각도 해본적도 없고 어떠한 결정이 나더라도 논리적으로 상식선에 어긋나며 이상한 법조항 가져와서 이상하게 해석해 놓은 판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두가지가 인정되지 않으면 어떤 경우라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군가산점은 기본적으로 줘야 하고 다른 것도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 군복무자 2013.02.28 00:16 # modify/delete reply

    일차적으로 당시 헌재 판결문의 5가지 요지가 다 오판입니다. 그리고, 학업단절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복무자와 비복무자를 기계적으로 동등하게 취급하여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대부분의 군복무자들의 공무담임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결과가 되고, 실질적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또한, 제대군인가산점제도는 군복무로 인하여 제한된 개인의 권익을 보전해 주는 한편, 현역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안정된 국방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시행되는 제도로서, 군복무 중에는 학업 또는 생업을 포기하여야 하고 취업할 기회와 취업을 준비하는 기회도 상실하게 되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여야 하므로 이러한 손실을 최소한도나마 보전해 줌으로써 전역후 빠른 기간내에 일반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군복무를 하지 않고 일반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과의 형평에 부합합니다.

    가산점 플러스 추가적 대안책까지 최대한 많이 해줘야 합니다. 이게 정상적이라 봅니다.
    특히나 헌법 제 39조 2항의 해석에 관해서는 위에 이미 말했습니다. 그 판결이 틀렸고 군필자들의 희생과 더불어 사실적 불이익을 인정해야 한다고,,,

    군면제자들의 권리 빼앗는다는 것도 동의를 전혀 못하겠습니다. 2년 이상 공부할 기회를 더 얻는 군면제자들이 어째서 군필자들보다 불리하단 건지요?

    장애인 판정을 받지 못한 남성 군면제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군면제라는 수혜를 입고 있습니다. 군면제특혜가 얼마나 대단한 특혜인지 모르시겠는지요? 군면제 특혜 제가 입으면 저 점수 5점 받더라도 터치 안 할지 모릅니다.

    군가산점제가 상대적 불이익을 여성들에게 준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거니와 헌재 결정문 중 전체여성 중의 극히 일부분만이 제대군인에 해당될 수 있는 반면, 남자의 대부분은 제대군인에 해당하므로 가산점제도는 실질적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고,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현역복무를 하게 되는지 여부는 병역의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병검사의 판정결과, 학력, 병력수급의 사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가산점제도는 현역복무나 상근예비역 소집근무를 할 수 있는 신체건장한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 즉 병역면제자와 보충역복무를 하게 되는 자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처럼 병역법에 근거한 결정문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의도적으로 헌재가 이렇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수십년간 법을 공부한 판사들이 내린 결정으로 보기엔 상당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논리적으로 상당한 결함을 가집니다. 마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어거지 결정일 뿐입니다.

    전체 남성의 대다수가 군에 가면 이미 손실입니다. 전체 여성의 대다수중 일부가 제대군인이 될수 있든 없든 이들은 군면제 수혜자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군복무자가 손실이고 희생을 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점수를 인정해 줌이 타당합니다.

    이렇게 되야 합니다. 뒤에 나오는 이들은 신체 장애인 고용 촉진법제도가 있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설령 님 말대로 공무원이 사적이익의 추구자가 아니고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공무원의 법적 지위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조문이라 하더라도 병역 이행자체가 이미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학업단절적 측면을 유효적절히 고려, 또, 군필자와 미필자간에는 이미 기계적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빌어 볼때 함부로 가산점을 없애선 안 됩니다. 차라리, 만약 정 그렇다면 한정 합헌 정도는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제가 듣기로는 커트라인에서 당시 소송낸 당사자 가운데 15점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들이 있었고 신체 장애인 고용 촉진법을 제대로 정부에서 시행을 안 해서 문제가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의 실수와 개인의 능력차이라 봅니다. 가산점 없애 놓고도 소송낸 당사자들이 다 떨어졌다더군요. 그리 야단법석을 떨어서 사회적 싸움까지 만들어 놓고 시험에 떨어졌다니?? 이를 해석을 어찌 해야 할까요?

    군가산점제가 없으면 군필자들의 합격수가 줄어드는 것만 보이고 군면제자들이 군필자들에 비해서 수혜적 특혜를 입고 있는 건 안 보시는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복무 그자체가 이미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그리고 손실입니다. 이건 인정 안 하신다면 저도 할말이 없습니다. 또, 군복무 그자체가 의무/권리로서 2년간의 무거운 책무를 진 것에 관해서 권리가 인정되면 가야 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단순히 무작정 가는 그 발상 자체가 전근대적인 병역의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여에 따른 분배와 일한만큼 받는 평등을 주장하는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에 따른 분배는 좌파들이나 하는 주장이며 그런 시각은 사회민주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나라 내지 전제군주시절의 주장과 같습니다.

    응시연령 제한을 해 버리면 가뜩이나 군복무로 2~3년을 손해보고 들어가는데 제한된 만큼 더더욱 군필자들은 더 불리해 집니다. 회사 들어가면 정년은 정해져 있는데 그만큼 군필자들이 손해죠. 9급 일반 행정직 합격자 중 군필 남성이 32%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만큼 군필자들이 군복무로 인하여 손해 보고 다시 군가산점마저 빼앗겨 더 불리해 진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군복무 이행자체가 이미 엄청난 손실이고 개개인의 희생입니다. 왜 국가 공익은 그리도 챙기면서 국가 위해서 희생한 이들은 의무에 보상이 필요없고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키 어렵다는 식으로 씹어뱉듯이 이야기 했을까요?
    그게 문제란 것이고 그게 바로 정치적 압력이 개입된 어거지 우기기식 생떼쓰기식 판결이란 겁니다.

    군가산점은 여성들의 취업을 차단하지 않습니다. 그에 관해서도 올려놓겠습니다.

  • 같은 용어라도 어떤 때는 '법논리'로, 어떤 때는 일반적인 추상 개념으로, 일관성이 없이 본인한테만 유리하게 쓰시니까 읽는 저도 오락가락하네요. 헌법 조문으로 이야기하시길래 전 군복무가 법적으로는 의무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고요, 그렇다고 군복무자들의 개인적인 희생, 의무 이행에 대한 성실함, 헌신 같은 것들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무조건 군복무가 정당화되는 사실이 전근대적인 병역의식이고, 군복무 자체가 희생이고 손실이라고 하셨는데요(그쪽 글의 대부분은 이 내용 뿐이지요). 그럼 징병제 폐지를 주장하셔야 함이 옳지 않을까요. 말씀처럼 군인이 국가의 '노예'가 될 정도로 징병제가 개인의 기본권에 심각한 제약을 주는 것이라면 그 징병제를 철폐하는 게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그쪽의 논리가 완성되기 위해선 (군가산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군복무자에 대한 강제적인 희생과 손해의 발생이 전제되어져야 하잖아요. 장황하게 징병제의 부당함을 말하면서 끝으로는 군가산점제를 부활해달라고 하는 건 결국 국가에 내야 할 목소리를 군미필자들에 대한 시기와 피해의식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치졸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결국 하는 소리가 여자들도 징병해야 한다? 징병제가 잘못되었다면 그 자체를 바로잡기 위해 모병제 전환 같은 이야기를 하셔야죠. 여성도 징병하자고 하는 건 '혼자 당하기 싫으니 같이 죽자'라는 식의 논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부당함이 있다면 그 부당함을 없애기보다 그 부당함을 다같이 당하는 것이 그쪽이 말하는 평등입니까? 이러니 제가 그쪽을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에 쩌든 사람으로 볼 수밖에요. 좌파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거품부터 무시는 분들이 이럴 땐 또 북한을 따라하자고 주장하시는 거 보면 참..ㅎㅎ

    권리를 말씀하셨죠? 권리 물론 중요하지만, 그 권리 또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당화되는 겁니다. 상대평가제에서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미필자들의 권리 침해는 자꾸 언급을 피하시네요. 공무담임권이라는 건 이들에게도 있는 것이거든요. 자원입대로 군대가서 가산점 받으면 되지 않냐고요? 제2국민역 판정을 받은 미필자들은 입대마저 불허되는 처지입니다. 아울러 자꾸 9급 공무원 통계를 예로 드셨는데 그럼 행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40%도 되지 않는 건 어떻게 설명하실건지요. 다른 시험들은 또 어떻고요.

    아니 그리고 어이 없는 건, 여기서 필요에 따른 분배니 좌파니 하는 이야기가 왜 나오냐는 겁니다. 더구나 그쪽의 글을 보면 그저 '동의하지 않습니다', '판결이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반복할 뿐입니다. 그것이 왜 그런 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뜬금없이 여성이기주의나 여성단체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는 왜 나오는 것이며, 좌파 이야기는 또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감싸고 도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페미니즘에 동의하면 안 되나요? 잘모르시나본데 페미니즘도 여러 갈래가 있거든요.

    그쪽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옳지 않은 겁니까? 실소만 나오네요 하핫. 댓글 달기도 피곤해지는군요. 이건 뭐 토론이 아니라 했던 말 반복에 반복만 하시니..ㅎㅎ 앞으로는 그냥 어디 가시든 군가산점제 폐지를 싫어하신다고만 하세요. 단지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법적 상식까지 보여주시면서 본인의 무지함을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요.

10 Items Or L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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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프리먼, 이 할아버지 정말 좋다. 무엇보다 그 흑인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너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매력적인 포근한 목소리.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수에 가득 차있는 듯한 커다란 눈망울. 맞다. 그냥 눈이라고 하기보다는 눈망울이라고 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어울린다. 그 눈망울은 항상 변한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의 정겨운 눈망울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엄청난 야욕을 부리는 권력자나 악역의 차가운 눈망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정말 그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을 연기한 듯 하다. 헐리우드 스타라는 자신에게 우쭐하기도 하고, 자기 집 번호도 잊어버릴만큼 모자라기도 하고, 자신이 입은 티셔츠를 자랑하는 푼수를 보이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을 진심으로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배우 모건 프리먼이 아니라 순전한 인간 모건 프리먼이다.

원래 영화를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그저 보는 것 뿐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잔잔해서 좋았고, 잔잔하면서도 희망이라는 것이 보여서 좋았다. 따뜻하다라고 하기에는 말의 뜻이 너무 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훈훈하다고 하기에는 또 뭔가 판에 박힌 느낌이다. 그냥 푸근했다.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처럼.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여 주인공으로 나왔던 파즈 베가의 발음. 오래 전에 영화 '프렌치 키스'에서 케빈 클라인이 프랑스 억양으로 영어를 발음하는 것에 인상깊어했던 적이 있었다. 영어보다 한층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프랑스 억양식 영어는 케빈 클라인의 깊은 목소리와 굉장히 잘 버무려졌었다. 이번에도 낯선 영어 발음은 역시 매력적이었다. 파즈 베가의 스페인 억양식 영어 발음은 뭔가 또박또박하면서도 액센트가 강하고 발랄했다. 앙증맞다고 해야 하나.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봐주게 만드는 그와의 갑작스런 만남
10 Items or less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열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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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무도 웃겼던 장면이 있어서 짧게 짤라봤다.




  • miaouu 2008.08.03 07:12 신고 # modify/delete reply

    저는 불어 억양있는 영어가 정말 싫어요..듣고 있으면 그냥 좀 챙피해져요.

  • a Pilgrim 2009.01.03 12:39 신고 # modify/delete reply

    와.. 이 영화를 보신분이 있으시네요..
    그리고 재밌다고 느끼신 분도.. 저 말고도 계시네요..ㅋㅋ
    영화도 그렇고.. 이 글도 무척이나 반가웠다는.. ㅋㅋ

    •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ㅋㅋ
      저도 반갑네요~
      재밌다고 느낀사람이 많지 않나봐요,
      저는 잔잔하고 좋았는데..

    • a Pilgrim 2009.01.03 22:25 신고 # modify/delete

      짧은 영화였지만 참 잔잔한게 재밌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대화는 배울게 많으니까요. 현실에서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저는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한 어린아이지요. ^^

      댓글 달아주신것 감사합니다.
      종종 놀러 올께요^^;

  • 이 아저씨 인상 참 푸근하던데
    이 영화 찾아서 봐야겠네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일수록 영화를 단순히 보는 느낌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책을 읽는 느낌이다.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장면과 스토리의 울타리 안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받아들일 뿐이다. 최근 개봉되고 있는 화려하고 빠른 전개의 영화들, 물론 이런 영화들처럼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없겠지만 진정 영화를 음미하는 시간, 마음 속으로 영화 속 주인공도 되어보면서 충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갖기엔 너무나 속도감이 넘친다.

반면 책은 다르다. 책은 영화처럼 구체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책과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툭툭 소스만 던져주고 있을 뿐, 그 소스를 가지고 가슴과 머리로 진정한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보고 있는 것은 깨알 같이 글자가 적힌 흰 종이에 불과하지만 느끼고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방대하고 재미있는 상상이다.

어렸을 적, 으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한번쯤은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삼국지에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 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작은 삼국지 소설책에 불과했지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수백만의 대군들과 희대의 장수들이 뿌연 먼지와 거대한 함성을 일으키며 천하의 자웅을 겨루는 장면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렸던 나에게 삼국지라는 책은 황홀한 상상의 삼매경이었다. 그러던 중, 외가댁에 갔다가 외할아버지가 보시던 당시 중국 영화 '삼국지'를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내가 상상하던 삼국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드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백만 대군은 온데간데 없고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볼품없는 수십의 엑스트라들이 당시의 전쟁을 힘겹게 재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마치 책과 같았다. 영화를 보고 있다기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큰 여운이 몰려왔고 요즘 영화랑 다르게 느릿느릿하면서도 낭만적인 장면들은 그 대사들의 여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운도 그냥 텅빈 공간이 아닌 뭔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의미 넘치는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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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 Seize The Days)
'현재를 잡아라.'


사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한 카드 광고에서 카드 이용액을 늘리기 위해 인용했던 좀 유명한 말에 불과한 줄 알았다. 인생을 즐기라는 이 문구는 현란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한 젊은 남자와 더불어 인생과 청춘은 즐기기에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면 당장 지금이라도 카드를 가지고 흥청망청 생각 없이 내 인생을 즐겨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훨씬 무겁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으라는 말은 그보다는 보다 무겁고 의미있고 진중하다.
'특별한 인생을 만들어라(Make your life extarordinary)'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비로소 완성시켜주는 문구다. '카르페 디엠', 순전히 '생각 없이' 인생을 즐기란 뜻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함, 그것을 완성시키고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바로 영화에서의 '카르페 디엠'이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해마다 몇명의 아이비리그 진학 졸업생들을 배출하느냐가 이 학교의 유일한 목표다. 이런 영미식의 교육제도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다를 바가 없었다. 연말마다 걸려졌던 명문대학 합격자 명단은 마치 학교의 교육에 대한 슬로건과 마찬가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와 대학 입시가 우선되어졌다. 그 외의 것들, 대학 입시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졌다. 오로지 입시와 공부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입시와 공부만으로 얽매여져야만 했던 학생들 그 하나하나가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수성과 삶에 대한 열성을 갖고 있을 나이의 소년들이란 점이다. 멋진 시의 한 구절에 꽂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꿔버리는가 하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아름다운 소녀에 눈이 멀어 정신을 놓기도 한다. 명백한 이유라는 것은 없다. 단지 이끌리는데로 이끌려가는 것 뿐.

의학, 법률, 기술, 경제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은 봄만 되면 흐드러진 벚꽃으로 만개되어졌다. 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였는데 그 산 거의 대부분이 벚꽃으로 뒤덮이는 바람에 우리는 일년에 한 번 그 아름다운 광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교실 창문으로 흐드러진 연분홍 빛의 향연을 보려 시커먼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창문을 향해 턱을 괴고 있었다. 때론 교정으로 나가 떨어진 벚꽃잎들을 쥐고 뿌리며 놀기도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열시까지 하루종일 입시에 매달리는 건조한 일상을 지내야 했지만 연분홍 벚꽃들을 보면서 설렜던 것, 창문 밖으로 화창한 날씨를 보며 연애시를 쓰고 그 연애시를 적은 종이 테두리를 라이터로 이쁘게 태우며 가슴 졸였던 그 날들.

당시 하루하루 힘들게 공부했던 것은 지금의 나를 또는 앞날의 나를 있게끔 해주는 시간이었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말그대로 나의 삶을 그리고 미래를 유지시켜주고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 뿐이다. 삶을 지탱해주는 것, 삶의 에너지는 따로 있다.

밤 열시가 되면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났다. 나와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과 우르르 도서관에서 밀려나왔다. 도서관은 산 꼭대기에 위치했다. 늦은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올라갔던 무거운 발걸음과는 달리 내리막 산길은 매우 가벼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시원한 밤공기와 저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 어깨동무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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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이 영화가 입시만을 강조하는 학교와 교육제도를 비판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에서 노래하고 있는 낭만과 이상은 영화 속 학교와 사회에 의해 날개가 부러지고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영화가 꼭 현 사회와 영화 속 학교의 모습을 비판하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교사의 말대로 학교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카르페 디엠', 암울하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현실 속에서도 시와 낭만을 통해 현재를 잡을 줄 아는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가다.

중요한 것은 포근한 밤공기에서 낭만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느냐,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을 깨닫느냐다.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을 것인가.
대답은 한 가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그리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세상은 믿음 없는 자들로 넘쳐있기에, 전통과 규율, 딱딱함 밖에 모르는 바보들로 넘쳐있기에 시와 사랑이 더욱 낭만적인 것이 아닐까. 삶을 유지하는 것들,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어쩔 수 없는 바보들이 있기에 나만의 낭만, 나만의 즐김이 빛을 바라고 나만의 시가 한 편 쓰여지는 것이 아닌가.

역설적이다. 시인은 지금 죽어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그 가치를 발하고 시 또한 법률, 경제, 기술 등이 세상을 뒤덮고 있기에 더욱 낭만적이다. 물론 모두가 이를 깨닫고 아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쥘 수 있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쏘로우, 그가 절망에 사는 사람들이라 노래했던 그들, 바로 그들 덕분에 오히려 그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2008.07.08 17:45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egoing 2008.08.29 08:48 # modify/delete reply

    잘 봤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내요. 저의 글도 트랙백 걸어봅니다.

  • gayen0526 2009.02.06 03:26 # modify/delete reply

    정확한 연도수는 기억하지못하지만 20여년전 책으로 두번 영화로 세번 봤던 작품 우연한 기회에 story on으로 다시 접하게 되었지요 넘반가웠고 지금까지도 젤 인상깊은 책이나 영화가 무었이냐고 물으면 죽은시인의 사회라고 합니다. 넘반가워 가슴이 뛸정도입니다.

    • 그냥 지나가듯 보면 별거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좀더 가슴을 맞대어보면 상당히 느끼는 바가 많은 것 같아요. 반갑다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저도 그런 영화가 몇 개 있는데ㅎㅎ

쇼생크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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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앚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뒤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우리 또래라면 어렸을 적에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노래, '네모의 꿈'의 일부다. 네모에서 시작해 네모로 끝나는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면 어딜까. 조금은 어둡긴 하겠지만 교도소만큼 이 노래에 잘 들어맞는 곳도 없을 듯 싶다. 네모난 창살 안의 네모난 감방, 네모난 침대와 네모난 창, 네모난 교도소와 네모난 운동장. 무엇보다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그들이기에 이 노래에서 교도소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네모의 창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쇼생크의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지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쇼생크라는 테두리 안에서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일하라 그러면 일하고, 쉬라 그러면 쉬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다. 좋아하는 취미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 단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을 뿐이다. 아직 교도소에서의 삶이 익숙치 못한 신참 수감자들은 점점 바깥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을 잃어가고 다른 수감자들과 다를 바 없는 네모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 과거에 들판에서 하모니카를 멋드러지게 불어쟀꼈던 추억, 아내와 피크닉을 다닌 추억 등은 말그대로 다시는 겪어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릴 뿐 교도소를 들어오기 이전의 삶은 맥주 거품처럼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에서 동떨어진다.

하지만 이전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길들어짐'이다. 쇼생크에 의해 보호받고 감시받으면서 수감자들은 감옥 생활에 길들여진다. 40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옥한 '레드'가 '40년 동안 허락을 맡고 화장실을 다녔다. 이제는 누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데서 길들여진 삶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쁘게 살거나, 빠르게 죽거나'

쇼생크의 한 늙은 수감자는 석방을 두려워했다. 교도소 담장 너머로의 자유롭기만한 새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교도소 밖으로의 발걸음을 무서워했다. 수 십 년간 굳어지고 단단해진 그의 쇼생크에서의 생활은 쇼생크 밖의 자유로운 새 삶을 살기엔 너무도 벅찼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겪게 되는 세상은 그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세상에 비해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또 그를 돕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벅찬 자유는 이미 쇼생크에 길들여진 그에게 독이 되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누렸던 자유는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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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쇼생크에서의 삶을 살아왔다. 물론 지금까지의 삶을 죄수와 비교하는 것은 과하겠지만 나는 지금껏 부모님과 세상의 보호 아래 살아온 것은 분명하다. 아침 점심 저녁 밥상을 차려주면 밥을 먹었고, 그만 자라 그러면 누워서 잠을 잤다. 돈을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공부하라 그러면 공부를 했고, 놀아도 좋다 그러면 그제서야 맘껏 놀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차례로 다녔다. 물론 대학생인 지금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지만 지금의 어른은 허물과 형식치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몇 년 후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학교와 부모님이라는 보호 감옥 아래서 벗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내 판단과 내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주고 해야할  일을 정해주고 보호해주는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쇼생크 너머의 삶을 두려워했던 레드의 서글픈 눈망울처럼 나또한 아무런 보장이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그리고 사회로 내딜 첫 발걸음에 대해 두려워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초년생으로의 내딛음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지는 무한 자유에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잠깐이나마 용기를 갖게 해준다. 갖가지 절망적인 고통도, 그리고 쇼생크 안에서 간수들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며 안락한 수감생활에 안주할 수 있었던 타협의 순간도 모두 떨쳐버리고 자유로의 희망, 이 한 가지만으로 결국 '쇼생크탈출'을 이뤄낸 그의 해피엔딩은 어려운 상황, 고민 속에서도 한 가닥 막연한 기대와 희망섞인 여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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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늙은이가 된 채 세상에 나온 레드가 새 삶이라는 희망찬 긴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이 주인공들의 주옥같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였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한 쇼생크 밖의 새로운 삶, 막연한 자유, 미래에 대해 저 한 마디면 족하다.



  • skyplot* 2008.06.25 17:05 신고 # modify/delete reply

    쇼생크 탈출..
    수십번씩 보고도
    다시 보고싶다고 생각하는 영화들 중 하나이지요^^

'그래도'
문뜩 궁금해졌다. 영어에도 우리나라 말로 '그래도'에 해당하는 말이 존재할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한영사전까지 뒤적여보니 'but', 'yet', 'nevertheless' 등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가 '그래도'란 말을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영어에도 없는 '그래도'이란 말, 굉장히 인간적인 단어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때로는 맹목적이고, 때로는 희망적이고, 때로는 집착스럽다.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안그래?'
'아무리 그래도 난 너가 좋아.'
'그래도 지구는 돈다.'
'속을 썩이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
'세상살기 정말 힘들다지만 그래도 난 잘 이겨낼거야.'

친구랑 서로 마음이 상한 일이 있어도 친구라는 관계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되기에 '그래도'란 말이 쓰이고, (물론 갈릴레오가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자신이 알아낸 진리를 세상이 몰라주는 서러움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진리를 믿는 갈릴레오에게도 '그래도'란 말이 쓰였다. 또 항상 속을 섞이는 아들이지만 순전히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는 엄마에게도,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 할 지라도 이를 이겨내려 의지를 다잡는 이들에게도 '그래도'란 말만큼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그래도'란 단어가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말할 때에는, 다시 말해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논할 때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 쉽상이다.

'그래도 이건 잘못됐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도 전라도 사람들은 무조건 마음에 안들어.'

이럴 때만큼은 '그래도'란 말 만큼이나 특정한 말의 인과관계를 무기력하게 상쇄시켜버리는 단어도 없다. 특정한 사실이나 주장에는 동조를 하면서도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뒷전으로 제껴둔채 '그래도'란 말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유지시킨다. 즉, 특정한 인과관계의 타당함을 무시해버린채 자신의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란 말이 갖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말의 앞에 나오는 논리적 사실이나 주장에는 화자가 분명 동의한다는 것이다. 화자 자신이 '그래도'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이전까지의 말에는 동의한다는 자기 스스로의 맹점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시위여도 그렇게 과격하면 안되지, 그러니까 전경들 또한 과잉진압하는거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래선 안되지. 그래도 전경들이 그러면 안되지.'

학교에서 우연히 들은 학생들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도 '그래도'란 말이 지닌 맹점이 보인다. 후자의 학생은 앞서 친구가 말한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무작정 전경들에게 잘못을 전가시키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비단 이 학생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전경들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동영상에 뚜렷히 잡힌 것처럼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전경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찰 내부에서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전경도 분명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긴장 속에서 전경 모두가 하나같이 이성을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할테다. 하지만 소수일 뿐이다. 이 폭력적 행태를 모든 전경들만으로 전가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폭력을 가하는 전경이 있다면 다른 한 쪽으로는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에게 자신들의 난감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전경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왜 전경들이 그렇게 과잉진압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 또한 시위대 못지 않게 흥분상태에 있어야만 했는지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위대의 (일부의 과격한 시위대라 생각되지만)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물대포를 맞서야 했던 시위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유모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온 아줌마나 학생들이 아니었다. 이 시위대는 평화스러운 촛불집회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청와대를 향했고 그 길을 막아선 전경들의 버스를 물리력으로 넘어뜨리고 파손하려 들었다. 그들은 촛불집회에서 갖가지 문화 공연을 보고 서로 자신의 생각을 토론하는 시민들이나 어린 학생들과는 분명 달랐다. 60여 년 전의 4.19도 아니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입한다는 것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경들은 이 절박한 상황 속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시위대에게 길을 내준다면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이 노출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비록 20%를 밑도는 낮은 지지율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대통령은 분명 국민들의 대통령이다. 청와대가 시위대에 노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심각한 위기와도 같았다.

'그래도'란 말로는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 여유를 갖기 힘들다.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다. 그들 전체에 대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지금 정권은 분명 많은 실정을 하고 있다.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 집회를 시위로 만들고 그 시위를 격하게 만드는 소수의 사람들의 대화 방식은 잘못됐다. 그들의 말은 항상 '그래도'이다. 막무가내다. 그들의 방식은 절대 대화가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전의경들이 촛불집회를 벌이는 우리들과 다른 점은 단지 그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 밖에는 없다. 그들도 군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학생이며 20대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나 시위일수록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군중심리는 절대 경계해야 한다.

  • 글 잘 읽었습니다. (__)

  •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전경이라고 할 것인가, 그들을 포함한 경찰 조직이라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경찰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러니 '손발은 아무 잘못 없다' 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손발의 경우야 의지를 따르는 도구이지만, 이들은 독립된 인격체이고, 이들에게 있는 인격 자체의 문제들은 하나 둘씩 나타납니다.
    똑같은 폭력이라도, 방패 날로 사람 얼굴을 강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악의에 찬, 분노의 행동과 필요에 의한 행동은 다릅니다. 잘못되었으므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서지 직접적인 처벌에 의해서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폭력이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떤 폭력이든 당연히 정당화될 수 없는거죠.
      저는 단지 상황이 불필요하게 감정적으로 치닫는게 아닌가 우려하는 맘에서 해본 말들이었습니다.^^

  • seo 2008.06.06 21:01 # modify/delete reply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더 생각이 깊어지네요.

  • 유중근 2008.06.28 10:37 # modify/delete reply

    시각을 넓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얘기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미국놈', '일본놈'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 사회에 속한 전체가 놈들 천지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지요?
    사람 같지도 않는 소수의 쓰레기들이 그 집단을 그렇게 부르도록 규정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주의에 깔린 쓰레기를 걷어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줄기찬 투쟁만이 결국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조리한 것에 편승하여 사익을 추구하려는 악덕 모리배를 방치해선 안 됩니다.
    폭력 일부 전경들이 그랬을리는 없겠지만, 한 예를 들면 대한제국 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급한 상황인데 도리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럼 흔히들 쓰는 말로 매듭집니다.
    - 가슴은 뜨겁게! 대그박은 차갑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