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사람을 잘 찾는다. 탐사보도에서 중요한 건 인물이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사람 찾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는 경찰도 못찾는 사람까지 찾아낸다. 안 나올 것 같은 목격자부터 시작해서 도망다니거나 잠적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찾아내어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를 딴다. 매번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고 하는데 그 수소문이라는 게 어떤 과정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끝내 결과물을 얻어내는 거다. 그만큼 탐사보도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둘째, 스토리텔링이 좋다. 흡인력이 상당하다. 초반에는 호기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종반에는 그 궁금증이 탁 풀리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때로는 전개에 반전을 주어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마치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연식이 오래된 시사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꾸준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층 사이에선 마니아가 형성될 정도.
셋째, 시스템을 문제삼는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회차도 있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의 대부분은 살인, 사기 같은 미시적 사건들을 다룬다. 앞서 스토리텔링이 좋다고 했지만, '그것이 알고싶다'가 추리소설과 다른 건 허구가 아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의 실제 죽음을 흥미나 호기심의 관점에서 접근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어떻게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제도적 결함이나 장치의 미비 등을 따져보고 때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흥미를 끄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와 시스템을 고민하는 탐사 저널리즘의 본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원래 흥행과 재미는 비례관계에 있었다. 영화가 재밌을수록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요즘 극장가를 보면 흥행과 재미가 꼭 비례하는 것 같진 않다. 재미없는데도 흥행에는 성공하는 영화가 나온다. '베테랑'도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작품성이 훌륭한 건 절대 아니고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닌데 천만 관객을 넘긴 것이다. 사실 무더운 8월이면 극장가의 성수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성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개봉작이 많지 않았다. 작년 여름만 해도 '군도', '해적', '명량', '해무' 같은 거액의 투자 작품들이 쏟아졌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경기 불황으로 영화제작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개봉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몇 안되는 작품으로 모든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테랑'이 천만을 넘어선 것도 영화 자체가 괜찮았다기보다는 이런 외적 요인들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봤을 때 '베테랑'은 그냥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다. 형사가 주인공인 클리셰1에 서민과 재벌의 대결이라는 클리셰2와 평면적인 선악 대결이라는 클리셰3이 더해져서 클리셰의 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형사물보다 영화적 표현이 더 맛깔스럽다거나 더 스타일리쉬한 것도 아니다. 맨주먹 다이다이로 그려지는 류승완표 액션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림일 뿐이다. 오락 영화를 두고 작품성이나 세세한 완성도를 따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오락 영화를 기준으로 봐도 관습적인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를 과연 천만 영화라 칭송할 만큼 괜찮은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뉴스만 보고 있으면 메르스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 같고 북한과의 전쟁도 머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인터넷, 케이블TV, 스마트폰 같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은 늘어났지만 알멩이 있는 뉴스는 드물다. 이슈에 대한 반복적인 보도만 수두룩. 오히려 기사 한 꼭지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것 같다. 음식으로 치면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패스트푸드만 가득하다랄까. 문제는 자극적인 정크푸드에 길들여질수록 건강한 음식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왜 학교를 다녀야 할까. 학교를 다녀야만 첫째로 사회 진출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둘째로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사고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 교육에서 문제되는 것은 후자다. 일제부터 군부독재까지 정당성이 빈약했던 집권층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교육은 그저 산업화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시키는 데 몰두해왔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교육은 그대로다.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이 비효율적인 교육이라는 건 과거 위정자들이 지어낸 편견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만큼 입시가 치열하고 학벌 지향적인 영미권에서도 토론식 수업이나 사고력 교육은 충분히 병행되고 있다. 유럽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교육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 정치의 뿌리깊은 폐단을 뽑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선거법 개정이라 생각한다. 광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같은 대안도 이미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하다 못해 기한이 정해져 있는 선거구 조정마저 손을 놓고 있다. 개선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거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이슈보다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항인데 대중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무상급식 같은 이슈에는 그토록 열변을 토하면서 정작 근본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에는 무관심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