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자관계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잘 풀어낸 것 같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유능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비애랄까. 상황상 유능한 아버지들은 대게 아들(혹은 딸이든)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적 능력 탓에 아들 또한 어느 정도의 싹수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유능한 아버지들은 대게 아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그러셨듯 영화 속 영조도 "더 좋은 환경임에도 왜 공부를 게을리 하느냐"며 아들을 꾸짖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아들에게 부담감으로 전이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런 아버지들의 기대감이라는 건 그 충족치가 늘상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들이 이루는 성과에 만족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결국 일부러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칭찬보다는 질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은 아들에게 있어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존경과 서운함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이런 복잡다단한 부자의 관계가 세밀하게 서술되어진다. 거기에 조선왕실이라는 상황적인 특수성과 영조의 괴팍한 캐릭터가 더해지니 이 서사의 클라이막스는 그만큼의 개연성과 사실성을 갖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도세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 "왜 영조는 아들을 죽였을까?"란 물음에 대해 부자관계라는 근원적인 코드 속에서 영화 나름대로의 착실한 답을 찾았던 것 같다.

2. 배우에는 세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첫째로는 연기인 게 너무 티나는 배우들이다. 연기가 어색해서 자꾸 극적인 흐름을 깨뜨리는 배우들이다. 둘째로는 연기인 게 티가 나지 않는 배우들이다. 연기가 자연스럽고 극에 잘 녹아들어서 이들이 배우인지 영화 속 인물인지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이들이다. 마지막으로는 오히려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 존재가 영화 밖으로 드러나버리는 배우들이다. 이들은 관객에게 너무도 큰 임펙트를 주기 때문에 영화적 몰입에서 이따금 벗어나게끔 할 때가 있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를 보고 감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보고 감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에 마이너스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묵직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대표적인 배우가 송강호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재밌다는 걸 넘어서 행복하단 느낌이 든다. 근엄한 목소리와는 거리가 먼 그가 어떻게 왕을 연기할까 의아했던 적이 있었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송강호의 연기 걱정이 아니었을까. 특히 후반부에서 사도세자가 죽기 직전 영조와 사도세자의 상상적인(?) 대화씬은 압권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짧은 시간 내에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을 모두 뱉어냈고 그 순간마다의 호흡 하나하나가 가슴에 콱콱 박혔다. 절정의 순간 목이 메이다 못해 쇳소리를 내는 부분은 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가 저런 연기를 표현해낼 때 그것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감독이 느끼는 어떤 전율, 희열 같은 건 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이준익의 페르소나는 정진영이라지만 앞으로 그의 영화에 송강호가 자주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무게감을 줘야 했던 정조 역에 소지섭을 캐스팅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극에 맞게 슬픈 눈을 가진 배우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잘생긴 외모였다는 정조에 대한 기록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 소지섭과 춤사위라는 생소한 조합이 의외로 괜찮았다. 배우의 동양적인 선과 부채춤의 애달픈 절제미가 잘 어우러졌다. 다만 너무 친절한 편집이 흠이었다. 감독 입장에서야 관객을 염두한 편집이었겠지만 정조의 동작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일히 플래시백 컷들을 넣었던 건 다소 직설적이었다. 무언의 춤사위만 남겨 놓았다면 더 여운이 남는 메타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오점은 역시 문근영이었다. 촉촉한 실눈으로 엔딩을 감상해야 할 시간에 어색한 할머니 분장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작은 웃음소리들이 다른 객석에서도 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닐터. 극적인 애절함을 위해 배우를 바꾸기보다는 분장을 선택한 건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노년 분장까지 염두해두었다면 애초에 문근영 같은 배우를 섭외하진 말았어야지. 문근영이 누군가. 이 나라의 대표 동안 배우지 않나. 아무리 피부를 노화시키고 주름을 만들다 한들 선 자체가 동글동글한 문근영의 얼굴은 누가 봐도 그냥 문근영 그 자체였다(헐리우드의 분장 기술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만큼). 아마 문근영의 노년 분장은 두고 두고 회자될 해프닝이 될 것 같다.

영화 '은교'에서는 69살의 노인 역을 30대 배우(말이 30대지 사실 박해일은 김고은과의 투샷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동안의 외모를 가진 배우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 노배우들이 캐스팅을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도 있었고 연출자 측에서 대중적인 정서를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덕분에 거부감은 덜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잃는 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소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게 핵심적 설정이었기 때문에 영화는 시작부터가 반쪽이 되고 말았다. 은교 역에 대한 캐스팅이 거의 완벽했다는 평가를 염두하면 더욱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섬세한 연출이나 영화적 완성도를 봤을 때 굉장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적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대중의 몫이 되는 거다.

원래 흥행과 재미는 비례관계에 있었다. 영화가 재밌을수록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요즘 극장가를 보면 흥행과 재미가 꼭 비례하는 것 같진 않다. 재미없는데도 흥행에는 성공하는 영화가 나온다. '베테랑'도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작품성이 훌륭한 건 절대 아니고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닌데 천만 관객을 넘긴 것이다. 사실 무더운 8월이면 극장가의 성수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성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개봉작이 많지 않았다. 작년 여름만 해도 '군도', '해적', '명량', '해무' 같은 거액의 투자 작품들이 쏟아졌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경기 불황으로 영화제작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개봉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몇 안되는 작품으로 모든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테랑'이 천만을 넘어선 것도 영화 자체가 괜찮았다기보다는 이런 외적 요인들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봤을 때 '베테랑'은 그냥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다. 형사가 주인공인 클리셰1에 서민과 재벌의 대결이라는 클리셰2와 평면적인 선악 대결이라는 클리셰3이 더해져서 클리셰의 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형사물보다 영화적 표현이 더 맛깔스럽다거나 더 스타일리쉬한 것도 아니다. 맨주먹 다이다이로 그려지는 류승완표 액션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림일 뿐이다. 오락 영화를 두고 작품성이나 세세한 완성도를 따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오락 영화를 기준으로 봐도 관습적인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를 과연 천만 영화라 칭송할 만큼 괜찮은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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