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을 보며 동심을 키웠던 세대고, 어린 시절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네극장에서 어머니와 '쥬라기공원'을 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쥬라기월드'는 한번쯤 보고싶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보게 될 21세기형 쥬라기공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좀 씁쓸하다고나 할까. 공룡을 보는 건지 공룡 모양을 한 에어리언을 보는 건지 그것부터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인도미누스 렉스와 T렉스의 다이다이는 마치 공룡판 투견장을 연상시켰다. 결국엔 싸움구경이었던 거다. 수천 년 전 콜로세움에서나 지금의 극장에서나 계속되는 싸움구경. 아무리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소중한 추억 속의 T렉스마저 투견장에 끌려나와 소모되는 건 좀 슬픈 일이 아닌지.

감독으로서의 하정우는 마치 야구를 하는 마이클 조던을 보는 듯 하다. 본인은 디렉팅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지만 얄궂게도 그 능력은 기대 이하인 것 같다. 감독의 능력은 데뷔작으로 판가름 난다고 보는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그렇게 높을 것 같진 않다. 본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대중은 연기하는 하정우, 농구하는 조던을 볼 때 더 행복함을 느낀다.

영화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미장센의 극치.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조커에게 졌다. 왜? 태생적으로 질서가 무질서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배트맨이든 경찰이든, 질서라는 건 정해진 룰이라는 게 있고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질서는 말 그대로 아무런 패턴이 없다.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질서는 무질서에게 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질서란 이성이고 무질서란 반이성(감성, 정념 등 이성에 반하는 개념들)이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질서와 이성을 의미한다면 반대로 조커는 무질서와 반이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배트맨이 칸트를 상징한다면 조커는 니체를 닮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등장은 니체를 인용(엄밀히 말하면 패러디)한 대사로 시작된다. "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ger(원문은 stronger)."

배트맨 트릴로지의 주제가 '이성'이었다면 인터스텔라의 주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반이성'이다. 이성이 죽어있음 혹은 차가운 우주를 의미한다면 반이성은 살아있음 혹은 생명의 온기를 의미한다. 서구 이성사를 해체하고자 했던 니체가 '생生'을 긍정한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 죽어있음과 살아있음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강렬한 영상미(옥수수 밭을 지프차로 질러가버리는)와 함께 등장했던 드론 추격씬에서부터 볼 수 있다. 아무런 의미, 목적 없이 죽은 물체로 하늘을 떠돌던 드론은 끝내 살아있는 인간, 쿠퍼에게 잡히고(굴복하고) 만다. 죽어있는 것들은 절대 살아있는 것을 능가할 수 없으니까(배트맨이 조커를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나사로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생의 의지를 가진 이들보다는 이성에 충실했던(가족이 없기 때문에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반대로 쿠퍼가 임무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생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삶에 대한 의지라는 건 번식력을 의미하는데 그 의지는 때로는 후손의 생을 위해 자기의 생을 희생할 만큼(영화적 표현을 빌리자면 자식을 위해 유령 같은 존재를 자처할 만큼) 강력하다. 사랑의 힘이 모든 차원을 넘나들 만큼 강하고 숭고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작품을 사랑에 대한 영화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건 사랑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살아있음에서부터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완벽한 무엇이 될 수 없다. 사랑, 감정, 의지 등은 때로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드러내곤 하니까.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무질서의 광기를 보여주었듯이 인터스텔라의 만 박사는 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준다. 살고 싶은 의지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킨 것이다. 결국 동료들을 죽이거나 위험에 빠뜨리고 제 자신도 자멸하는 인류사에 남을 개꼬장을 부리고 만다. (이런 관점이라면 왜 만 박사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지 대충 수긍이 가는 것 같기도. 만약 주제가 사랑이었다면 만 박사는 온전히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는 사랑에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사람이이었다. 누구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쿠퍼와 있을 때 만 박사가 중얼거리듯 했던 말은 로봇보다 인간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즉, 만 박사는 기계와 이성, 데이터를 괄시하는 반면 생명과 반이성을 과신했던 자였던 셈.)

여기서 다시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했던 대사가 등장한다.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다. "You complete me." 조커는 알고 있었다. 배트맨이 쉽게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성과 반이성,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사랑의 위대함을 다룬 영화라고 말하지만, 작품에서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 초반부 쿠퍼가 머피의 담임 선생님에게 토로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옥수수만큼이나 아니라 기계(MRI)에도 신경썼다면 쿠퍼의 아내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또 쿠퍼가 블랙홀 내의 다차원 공간에서 머피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로봇 타스의 도움 없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쿠퍼는 타스의 도움을 받으며 그 사랑을 완성시켰고, 타스는 쿠퍼에 의해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쿠퍼가 드론의 부품을 꺼내면서 이 기계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는 말미에 쿠퍼와 타스를 재회시켜준다(집 한 쪽에 처량하게 누워있는 로봇 덩어리가 어찌나 짠하던지). 결론적으로 인터스텔라는 단순하게 사랑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로 대변되는 삶과 죽음, 반이성(감성)과 이성, 의지와 무의지, 불확실성과 확실성을 다룬 영화다.

덧붙이자면, 영화에 야구가 등장한 건 우연한 설정이 아닐 거다. 뉴욕 양키스를 이용한 비유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야구에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관철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야구는 아웃과 세이프처럼 삶과 죽음이 있는 스포츠다. 또 기록의 스포츠라 불릴 만큼 수없이 누적된 데이터가 있지만 늘 그 데이터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이성과 직감 사이의 긴장 속에 있는 스포츠다. 또 타자가 수 개의 루(영화에서의 행성)를 거쳐 홈(지구)으로 돌아오는 어드벤쳐의 게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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