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실정 때문에 김재규에 대한 평가마저 재조명되고 있다.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유신을 중단시켰다는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내가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가 이 사회에 결과만능주의를 심어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의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최후마저 그 결과만능주의의 뒤편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다뤄야 했던 많은 의미들이 죽음이라는 결과에 함몰되었다. 격발의 순간 심판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김재규가 쏜 총알은 박정희에게 면죄부가 되어 박힌 셈이다.

어쩌면 지금의 박근혜를 만든 건 김재규의 총알이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에게 상식적인 사고가 결여된 것도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탓에 (심지어 부채감을 갖고 있었던 탓에) 사람들은 박근혜로 하여금 그의 뒤를 잇게 하였고 박근혜는 당시의 사고방식, 권위의식, 관행 등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으로 부응했다. 결국 과거로만 생각했던 일이 세대를 건너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겪어야 했던 과정, 그러니까 포승줄에 묶여 플래시 세례를 받았던 그 시간은 먼저 박정희에게 주어졌어야 했다. 지금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반성과 평가를 빠트린 대가는 혹독한 현실이 되어 되돌아오고 말았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오해하고 있다네. 그 오해는 애초에 누군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 가는귀를 먹은 예언자 하나가 '하느님은 위무르(humour:유머, 익살)이시다.'라는 말을 '하느님은 아모르(amor:사랑)이시다.'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걸세. 모든 것 속에 웃음이 있다네. 죽음도 예외는 아니지. 나는 내가 소경이 된 것을 하느님의 익살로 받아들인다네. 어떻게 그것을 달리 받아들일 수 있겠나. 세상에 우습지 않은 것은 없네.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어야 하네."

한국을 펜싱강국이나 양궁강국이라 하는 건 마치 세계요리대회에서 한국팀이 라자냐 부문에서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라자냐강국으로 부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세계요리대회에서 라자냐로 경쟁해서 우승을 하든 그라탕으로 경쟁해서 우승을 하든 그것이 나라를 대표할 만한 어떤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라자냐든 그라탕이든 국내에서는 즐겨 해먹는 요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펜싱으로든 양궁으로든(핸드볼이든 사격이든 뭐든)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그게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펜싱이나 양궁을 즐기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취미로 입문하고 싶어도 어딜 찾아가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고 그나마 찾아 가더라도 입시생이 아니란 이유로 문전박대 당할 게 뻔하다. 펜싱이나 양궁을 접할 수 있는 건 4년마다 TV 화면으로 보는 게 전부일 뿐.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인터넷이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믿음이었다. 인터넷이란 공간이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수용하는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좀 다르다.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보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끼리 모이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살롱문화란 것도 생존이란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웠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서나 가능했던 것처럼, 각박해지는 일상에 거추장스러운 토론보다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터. 다만 이런 경향이 심화되다보니 외부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은 부족해지고 점점 극단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

축구계의 상향평준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선수 간 기량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고만고만한 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공간마다 얼마나 많은 선수를 둘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한 공간에 공격수보다 수비수가 많으면 공간이 막혀 공격이 어려워지고 한 공간에 수비수보다 공격수가 많으면 패스할 곳이 많아져 수비가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특정한 공간에서의 수싸움이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수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쉴 새 없이 필요한 위치로 움직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경기가 유리해지거나 불리해지는 건 선수들의 활동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번에 브라질을 이긴 것도 2002년의 성과도 누누히 말하지만 체력 덕분,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