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펜싱강국이나 양궁강국이라 하는 건 마치 세계요리대회에서 한국팀이 라자냐 부문에서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라자냐강국으로 부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세계요리대회에서 라자냐로 경쟁해서 우승을 하든 그라탕으로 경쟁해서 우승을 하든 그것이 나라를 대표할 만한 어떤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라자냐든 그라탕이든 국내에서는 즐겨 해먹는 요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펜싱으로든 양궁으로든(핸드볼이든 사격이든 뭐든)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그게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펜싱이나 양궁을 즐기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취미로 입문하고 싶어도 어딜 찾아가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고 그나마 찾아 가더라도 입시생이 아니란 이유로 문전박대 당할 게 뻔하다. 펜싱이나 양궁을 접할 수 있는 건 4년마다 TV 화면으로 보는 게 전부일 뿐.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인터넷이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믿음이었다. 인터넷이란 공간이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수용하는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좀 다르다.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보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끼리 모이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살롱문화란 것도 생존이란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웠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서나 가능했던 것처럼, 각박해지는 일상에 거추장스러운 토론보다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터. 다만 이런 경향이 심화되다보니 외부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은 부족해지고 점점 극단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

축구계의 상향평준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선수 간 기량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고만고만한 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공간마다 얼마나 많은 선수를 둘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한 공간에 공격수보다 수비수가 많으면 공간이 막혀 공격이 어려워지고 한 공간에 수비수보다 공격수가 많으면 패스할 곳이 많아져 수비가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특정한 공간에서의 수싸움이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수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쉴 새 없이 필요한 위치로 움직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경기가 유리해지거나 불리해지는 건 선수들의 활동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번에 브라질을 이긴 것도 2002년의 성과도 누누히 말하지만 체력 덕분,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지혜로운 솔로몬이자 한심한 글쟁이여,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네! 꼬치꼬치 따지려 들지 말게나! 태어나셨나, 안 태어나셨나? 당연히 태어나셨지, 바보같이 굴지 말라고. 돋보기로 마실 물을 들여다보면 말이지 -이건 어떤 기술자가 말해준 얘긴데-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이 우글우글하다는 거야. 벌레를 보았으니 물을 마실 수가 있나. 물을 못 마시니 목이 타서 죽고 말겠지. 당장 돋보기를 깨부수게, 보스, 그러면 작은 벌레들은 다 사라진다네. 그러면 자네도 목을 축이고 다시 기운이 번쩍 나겠지!"

맥심 화보의 핵심 코드는 비아냥이다. 성범죄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나쁜 남자'란 말의 사전적 의미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인 전문 배우' 김병옥을 모델로 삼고,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의미를 반어적으로 비유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에서 '나쁜'이란 부분이 갖고 있는 이중적이고 모호한 의미들을 꼬집는 것이다. 특히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란 텍스트까지 덧붙이면서 그 비아냥의 의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하정우가 조폭을 연기하면(사실 어떤 범죄자를 연기해도) 사람들은 멋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김병옥이 같은 조폭을 연기할 땐 그렇지 않다. 실제 조폭들이 풍길 것 같은 무서움, 삭막함 같은 걸 느낀다. 그의 인상부터가 실제 조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자들은 김병옥 같은 배우들을 악역으로 쓴다. 그 배역을 미화하기보다는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맥심측이 화보 장면을 미화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하정우 같은 배우를 화보의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정말 악인 같이 악인을 연기했던 김병옥이 모델이었고 친절하게도 그의 영화 이력까지 나열하며 그가 왜 사전적 의미의 나쁜 남자에 걸맞는지까지도 설명해주었다. 이 화보에 필요한 건 멋있는 배우가 아니라 악인이 어울리는 섬뜩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장면을 멋스럽게 다룬다고 해서 그것을 미화하는 건 아니다. '베테랑'의 유아인도 깔끔한 수트핏과 유려한 액션을 선보였다고 해서 개념 없는 재벌을 미화시켰던 건 아니다. 이 화보도 마찬가지다. 잡지 커버에 맞는 화보로서의 미적 퀄리티만을 갖췄을 뿐 김병옥이 연기하는 '나쁜 남자'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면 최대한 멋있지 않아야만 여성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베테랑'에서도 유아인이 밉상이 될수록 결말이 사는 것처럼). 또 그래야만 여성들이 말하는 '나쁜 남자'의 의미에 대해 비아냥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