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은 상대적인 거다. 인도인들에게는 소가, 타잔에게는 치타가, 나오미 왓츠에는 킹콩이, '나홀로 집에' 케빈의 형에게는 타란튤라 거미가, 그 속편에 나오는 비둘기 아줌마에게는 비둘기가, '프리윌리'의 소년에게는 범고래가 각각의 반려동물이 될 거다. 빅뱅의 순간 천지신명의 조물주라도 강림하여 개와 고양이는 인간의 반려동물이라 반포해 놓은 게 아닌 이상, 개나 고양이는 인류의 반려동물이라는 명제는 입증 가능한 과학적 진리도 아니고 어떤 보편적인 당위론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개란 동물은 그냥 돼지나 닭 같은 식용 가축에 불과한 것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 도시의 길고양이는 설치류나 비둘기 같은 존재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논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달리 말해 소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인도인들에게 돌매질을 당해도 개의치 않다는 건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 아주머니를 봤다. 스스로를 캣맘이라고 부르는 이들인데, 좋게 보이진 않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나 권리는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주어지는 것이다. 시쳇말로 공공장소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었다면 그 길고양이들이 싼 똥도 그들이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이야 불편하든 말든 순전히 본인의 만족을 위해 길고양이 밥을 주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에 가깝다. 이들은 고양이를 꺼리는 사람들을 미개한 인간이라고 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미개한 게 아니다. 오히려 고양이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왜 당신은 자기와 같지 않냐'며 손가락질 하는 게 더 미개한 거다.

무상급식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모두 논리가 충분치 않다. 그저 진영논리만 있을 뿐이다. 과연 무상급식이라는 게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상징적인 논점이 될 만큼 유의미한 가치충돌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심상정 의원이 국회 의원정수를 늘리고 세비를 줄이자는 발언을 했다. 역시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의원 숫자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늘리자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원내 비주류의 소신발언이 기득권의 밥그릇 키우기가 되었던 걸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토크빌의 말은 역시 정설이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막연한 반감, 혐오감을 갖고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런 악감정이 그저 배설적인 비난에만 머물러 있을 뿐 유의미한 비판의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의원정수 논쟁이다.

많은 이들은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이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마치 가게 사장이 돈을 아끼기 위해 점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장은 당장 몇 푼 아낄 수 있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을지 몰라도 부족한 점원 수 만큼 가게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친절한 서비스 때문에 가게 손님은 줄어들 것이고 매출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원 위임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투입되는 세비 몇 푼 아끼려다 자칫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킬 수 있다. 의원 숫자가 줄어들수록 대표성이 떨어지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의원 1인당 국정감사 혹은 예산심사의 범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행정부 견제가 제대로 이뤄질리 없고, 부정부패가 판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원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나 권력의 편중이 문제라면, 상식적으로도 의원 숫자를 늘려 그 힘과 권위를 쪼개야 함이 맞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과 임금격차해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그들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자영업 인구는 이미 (포화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만큼) 과잉 유입되어 있다. 제한된 내수시장에서, 그것도 숙박음식점업 같은 뻔한 업종으로만 집적되다보니 수익률이 떨어지고 가계 형편이 악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잉된 자영업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구조조정이 있어야 하며, 최저임금 인상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영업을 위해 임금 인상을 보류해야 한다는 건 "다같이 살자"가 아니라 "다같이 못살자"라고 외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