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의 목표는 한국대표팀이 202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벤투를 지켜보면 그가 월드컵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어차피 한국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할 확률은 매우 낮다. 운이 좋아봐야 16강에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는 걸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16강에 진출하든 예선탈락을 하든 외부에서 볼 때 감독의 경력으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남은 계약기간 동안 성적(승률) 관리를 하다가 그것을 경력 삼아서 2022년 월드컵이 끝난 후 더 나은 대표팀이나 클럽팀을 찾아 맡으려는 계획, 그게 바로 벤투의 목표이 아닐까 싶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봐왔던 사람이라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승패에 큰 의미가 없는 평가전 때마다 손흥민을 고집해서 기용하면서 혹사 논란이 일기도 했고, 선수들을 소집해서 모아놓고는 단 한 번도 기용하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특히 평가전에서 6명까지 교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명 정도만을 교체하는 건 참 드문 상황이다. 그가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이게 지금 평가전인지 아니면 월드컵 본선 경기인지 헷갈릴 정도. 그만큼 오랜 시간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월드컵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장기적인 플랜에서 그를 기용했던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평가전에서 득점할 때마다 나오는 벤투의 세레모니를 유심히 보면, 지금 그와 같은 환호가 현 시점의 평가전과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 (토너먼트 결승골에서나 등장할 법한 세레모니다.) 지금은 월드컵을 무려 3년이나 앞둔 시점이다. 지금 중요한 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강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지금 평가전에서의 실점 하나 득점 하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벤투가 한 경기 한 경기 득점하고 이길 때마다 기뻐하고 환호할수록 우리 대표팀의 미래는 점점 초라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상류층의 흑인과 하류층의 백인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영화다. 기존의 영화가 주로 상류층의 백인과 하류층 흑인의 이야기들을 다뤄왔던 것과는 좀 다른 설정이다. 엘리트지만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흑인 뮤지션과 맨하튼의 골목세계에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이태리계 비주류 백인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말해 설정은 참신한 편이지만 이야기의 경로는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디테일한 시대 묘사, 아름다운 미장센, 차분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만으로도 두 시간의 런닝타임이 금방 지나가버리는 영화다. 특히 비고 모텐슨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는 스페인에 사는 덴마크계 미국인인데, 작품 속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태리 출신 이민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은 어디로 가고 두둑하게 배가 나온 중년의 아재 외양과 이태리 출신 미국인 특유의 어눌한 영어발음까지. 폭력의 역사나 이스턴 프라미스에서의 진지한 역할은 많이 봤지만 뻔뻔하고 익살스러운 역할까지도 이렇게 잘 소화해낼 줄은 몰랐다.

‘백색 구원자 서사’로 논란이 일기도 했고, 토니(비고 모텐슨)의 비중이 너무 큰 나머지 돈(마허샬리 알리)에 대한 내용은 제3자의 시선 속에 머물고 말았다는 아쉬운 평도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이니만큼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적당한 톤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비고 모텐슨의 연기 덕분이었고, 그런 점에서 토니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켰던 패럴리 감독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어쨌든 아카데미 상을 받은 만큼 완성도도 높고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있는 괜찮은 영화였다. 메시지라고 해서 단순하게 인종차별에 대해서만 생각해볼 영화는 아니다. 백인과 흑인이라는 큰 축의 대칭점 말고도 이성과 감정, 개인과 집단, 위엄과 폭력 등의 여러 대칭점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어떤 갈등이 일어나고 그것이 어떻게 봉합되는지,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나름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것 같다.

계급론. 나에게는 너무 낯익은 주제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기생충도 설국열차와 마찬가지로 일차원적인 메타포에 가까웠던 것 같다. 기생충에 나오는 아랫동네 반지하 빌라부터 윗동네 대저택까지의 수직적 계층질서는 설국열차에서 봤던 맨 뒤 꼬리칸부터 맨 앞 엔진칸까지의 직선적 도식을 위아래로 세워둔 것과 다를 게 없다. 위쪽에 있는 상류층과 아래쪽에 있는 하층민. 사실 동어반복에 가까운 표현을 메타포라고 하기에는 좀 직접적인 비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봉테일. 큰 줄기에서의 메타포는 (내 기준에서) 약했지만, 디테일은 역시 볼만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바퀴벌레 농담을 하다가 얼마 뒤에 바퀴벌레와 똑같이 테이블 및 그늘에 숨어들어가던 것처럼, 여러 가지 복선들, 그것과 이어지는 비유적 표현들, 보는 이에 따라서 얼마든지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여러 장치들, 그리고 이 모든 걸 엮어내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과 정교한 미장센까지. 더할 나위 없는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황금종려상. 유럽에서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하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품의 완성도고, 다른 하나는 인간 이면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주제의식. 여기서 인간의 본성이란 인간이 꾸며내는 가식과 대비될수록 좋다. (과외 장면에서 pretend란 단어가 등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인 것처럼) 그만큼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깊은 내면의 죄의식, 자괴감 같은 걸 건들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이성, 문명, 성숙함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본인의 뿌리가 야만족으로부터 기원됐다는 역사적인 열등감 그리고 제국주의, 세계대전, 글로벌 무역구조의 가해자라는 자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가식의 가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일수록 자조적인 때로는 자기반성적인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홍상수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처럼) 그런 맥락에서 기생충은 유럽에서 호평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정확히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엔딩. 여기에 대해선 여러 반응이 있지만, 나는 답답하게 끝나는 게 좋았다. 클라이막스가 의외로(?) 뜨거웠던 만큼 다시 차가운 엔딩으로 돌아와서 좋았던 것 같다. 갑자기 해피엔딩 비슷하게 끝이 났다거나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메시지 같은 게 있었다면 지금의 뒷맛은 없었을 것이다. 블랙코미디란 장르에 충실했던 것 같다. 한바탕 코믹한 풍자가 벌어져도 마지막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 그게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에서 시작해서 저 위의 대저택까지 올라갔지만 다시 반지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 그 현실의 무게감이 그대로 답답하게 남을 수 있도록.

'살인의 추억', '괴물'을 본 후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설국열차'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많이 했다. 표현하자면 은유보다는 직유에 가까운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메타포와 나레이티브 모두 너무 쉬운 것 같았다. 너무 쉬운 건 좋은 게 아니다. 쉽다는 건 결론적으로 뻔하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거의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봉준호라는 이름값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봉준호는 박찬욱과는 달리 오롯이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작품을 만들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설국열차'나 '옥자'보다는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의 봉준호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박찬욱이나 김기덕 같은 이들은 복수, 인륜 같은 보편적 인간성을 주제로 다룰 때 큰 임펙트를 주지만, 봉준호의 능력은 한국의 사회상, 시대상을 디테일하면서도 맛깔나게 풀어가는 데 있다. 때문에 굳이 '설국열차'나 '옥자'처럼 다국화(?)를 시도하면서 본인의 재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인류 보편적 주제를 다뤄야만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로마'나 '그린북' 같은 영화들도 어떤 인류의 보편성을 담은 거창한 작품이 아니다. 일정시기의 멕시코와 미국만의 정서를 각각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배경과 분위기를 꼭 경험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60년대의 멕시코나 미국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어떤 배경의 어떤 이야기건 훌륭한 작품은 어느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다. 영화이건 문학이건 그게 바로 드라마(drama, 극)의 힘이기 때문이다.

다국적인 스탭들과 만국공통의 소재(예를 들면 SF 같은)를 다뤄야만 국제적인 호평을 얻는 건 아니다. 오롯이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해도 작품성만 확실하면 해외의 반응은 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아직 확실하게 모르지만 봉준호가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컴백한 느낌이랄까. 마침 칸에서 작품상도 받았고, (송강호는 원래가 봉의 페르소나이지만) 좋아하는 배우인 이선균과 봉준호의 조합도 기대가 된다. 빨리 보고 싶다.

공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능력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일반인은 능력만 있어도 된다. 회사에 고용되어 일을 하든 본인의 가게를 차려 상품을 팔든 본인이 한 만큼 결과물을 만들고 대가를 얻게 된다. 하지만 공무원은 다르다. 공공행정에서는 본인이 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본인의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베푼다면 그만큼 가게를 찾는 손님의 재방문율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관공서를 방문한 민원인에게 아무리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 공무원이 얻게 될 대가는 없다. 이렇듯 상응하는 보상이 없음에도 본인의 직무에 충실해야 하는 게 공무원의 직업적 소명이며, 노력과 보상 사이 비어있는 간극을 메워주는 건 바로 책임감이다.

행정이란 건 대부분 단순한 일이다. (호봉제가 적용되는 하위직급의 업무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큰 고민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법률이나 제도로 정해진 기준을 실상에 적용만 하면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신고나 신청을 받으면 정해진 절차대로 그 일을 처리해주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보다는 절차대로 문제없이 일을 처리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행정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고 능력보다는 책임감이다.